Draft 유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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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유교
집필자 신현덕
인물/기관/단체 성균관, 공자, 소수림왕
장소/공간 성균관, 향교, 서원
개념용어 석전, 오륜, 관례, 계례, 당파, 오복제도, 성년의 날



원고

성균관에 따르면 “유교는 바로 인간의 관계 속에서 윤리 도덕을 기초로 한 철학이고 종교”이며 “근본 사상은 인(仁)”이다. 공자의 말씀을 종합해 보면 “인은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다. 나아가 유교의 사랑이란 “단계적으로 사랑을 베풀어 모든 인류에게까지 확산시키는 것”이라고 한다. 또 유학의 근본 윤리는 오륜(五倫)인데 “부모와 자식 사이의 친함(父子有親)”, “임금과 신하 사이의 의리(君臣有義)”, “남편과 아내 사이의 분별(夫婦有別)”, “어른과 어린이 사이의 질서(長幼有序)”, “친구와 친구 사이의 믿음(朋友有信)”을 뜻한다. 모두 인간관계의 중요성을 강조한 말이다. 유교의 교리는 일상의 생활과 행위에서 드러난다고 하며 ‘예’가 가장 중요한 것으로 간주된다. 유교의 예경(禮經)으로 불리는 것 중 중요한 세 가지가 『주례』·『의례』·『예기』이다. 모두 한국인이 일상의 일이라고 생각하는 예의를 다룬다.

한국에 유교가 전래된 정확한 연대는 기록이 없으나 일반적으로 고조선시대에 들어온 것으로 보고 있다. 고구려에서는 유교가 이미 자리 잡은 것으로 기록에 전한다. 고구려는 유교에 근거를 두고 사서를 편찬하고, 교육기관인 태학(372 소수림왕 2년)을 설치했으며, 경전을 실생활에 활용했다. 유교는 계속해 신라 고려 조선으로 이어지며 발전했다. 다만 유교를 종교로써 믿기보다는 인간이 지켜야할 근본소양, 통치의 근본, 학문의 기초 등으로 인식하는 경우가 더 많았다. 그 같은 상황은 지금도 같다.

이는 한국 정부의 통계로 잘 드러난다. 한국에서 유교를 믿는다고 답한 종교인 수는 7만6천명에 가까울 뿐이다. 하지만 한국인의 실생활에서는 공자의 가르침에 따르는 경우가 어느 종교인 수보다도 많다. 그중 한국인 사이에서 가장 자주 이야기 되는 것이 도덕과 예의이다.

이는 유교가 종교의 개념보다는 일반 실생활속의 의례의 의미로 더 널리 사용된다는 것을 뜻한다. 대표적인 것이 관혼상제(冠婚喪祭)이다. 대부분의 한국인은 관혼상제가 종교 활동이라기보다는 생활이라고 생각한다.

관혼상제(冠婚喪祭)에서도 상례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해 왔다. 상례에는 상주가 특별한 복장을 착용하는 상복제도가 있다. 흔히 오복제도라고 부르는 격식은 촌수의 가깝고, 멀고에 따라 복식의 형태와 복식을 갖추는 기간이 각각 달랐다. 오죽하면 조선에서는 상복을 입는 격식과 기간을 얼마로 해야 하느냐를 두고 의견이 달라지자 정치세력이 갈라지기도 했다. 그만큼 한국인의 의식 속에서 상례는 중요한 의미를 갖는 것이었다.

지금도 이 복식제도의 전통이 일부 가문에서는 옛 제도대로 이어지고 있으며, 유교뿐만 아니라 각 집안의 각종 종교와 절도에 접목하여 각각 다르게 행하고 있다. 한국 속담에 ‘남의 제사에 감 놓아라 배 놓아라 한다’는 것이 있다. 남의 일에 공연히 간섭하고 나섬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로, 그 만큼 상례의 모든 것이 집집마다 다 다르니 참견하지 말라는 의미이다.

이 기간 상주는 먹는 음식도 평소와 달라야했다. 상주는 부모를 돌아가시게 만든 죄인이라고 생각하고, 그에 걸맞은 행동으로 좋은 음식과 고기를 먹을 수 없었다. 조선왕조실록에 보면 신하들이 상중인 임금에게 고기를 먹지 않는 기간을 단축하라고 상소하고, 임금이 신하인 상주에게 상례에 따르지 말고 일찍 고기를 먹으라고 권(명령)하는 경우가 자주 있었다.

인간이 태어나서 어른이 되는 데도 법도가 있다. 관례(남)와 계례(여)를 지나야 어른이 된다. 관례가 행해지는 날 남자는 여자처럼 길게 땋아 내렸던 머리를 올려서 상투를 틀며, 관을 쓴다. 남자 나이 15살부터 20살 사이에 정월달 중에서 날을 받아서 한다. 계례가 행해지는 날 여자는 댕기 맺던 머리를 올려 쪽을 찌고 비녀를 꽂았다. 현재는 매년 5월 셋째 월요일에 그 해 만 19살이 되는 성년을 대상으로 ‘성년의 날’ 행사를 연다.

이 날은 나이가 그 정도에 이르렀다는 것이 아니라 “어른으로서의 책임과 의무를 일깨운다는 책성인지예(責成人之禮)”에 있었다. 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를 실천해야 한다는 뜻으로, 그에 합당한 몸가짐과 행동을 해야 한다는 어른들의 가르침이었다.

유교의 큰 행사로 문묘에서 공부자(孔子)에게 제사를 지내는 의식을 석전이라 하는데 매년 2월과 8월 두 차례 거행된다. 석전대제는 중국이나 일본에도 남아 있지 않는, 우리나라에만 남아 있는, 예로부터 전해오는 악기와 제기를 사용한다. 석전대제 때는 문묘제례악을 연주하고 팔일무를 춘다. 국가 중요무형문화재 제85호로 지정되었다. 성균관은 선비학당, 한림원, 석전교육원, 예절학교를 운영하고 있으며, 지방에는 서원과 향교가 있다.

출처 및 관련자료

출처

성균관, 무형문화재 제85호, 통계청

관련자료

연구원 검토

검토의견
이 글에서 관혼상제 중 관례, 상례, 제례에 대해서는 언급되고 있으나, 혼례가 빠져있다. 밑 줄 친 부분 ‘지금도 …(중략)…의미이다’ 부분을 삭제하고 혼례에 대해 간략하게 설명하면 좋을 것 같다.
- 성균관이 어떤 기관인지에 대해 간략하게 설명을 덧붙였으면 합니다.

- 성균관 OO에 따르면 ~~ : 해당 문구가 적혀있는 문헌을 정확하게 알려주었으면 합니다. 또한 출처 OO에 대한 설명도 해주었으면 합니다.
- 고조선 시대라고 하면 그 시기상 범주가 너무 넓지 않을까요? 유교가 고조선시대에 들어온 것으로 주장하는 학자의 근거를 구체적으로 제시하였으면 합니다.
- 한국에서 유교를 믿는다고 답한 종교인 수는 7만6천명에 가까울 뿐이다. → 한국에서 종교로서 유교를 믿는다고 답한 사람은 7만 6천명으로 전 인구의 O%에 불과하다.
- 관혼상제가 무엇인지 간단하게 설명해주어야 이후 상제에 대한 설명을 이해할 수 있을 듯합니다. 그리고 상제를 특히 중시 여겼던 이유도 유교 교리 등과 연결하여 설명해주세요.
- 관혼상제에 대한 내용은 좀 줄여도 되겠습니다. 특히 상제의 내용 중 상복과 음식에 대해서는 요약 정리해도 될 듯합니다.
- 과거 여성의 계례는 혼인하는 날 시행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따라서 여염집 여성이 혼인하지 않고 머리를 올리는 경우는 없었다고 알고 있는데 확인해서 서술해주세요.
- 이날은 나이가 그 정도에 이르렀다는 것이 아니라 “어른으로서의 책임과 의무를 일깨운다는 책성인지예(責成人之禮)”에 있었다. → ‘성년의 날(관례?)’의 의미는 나이가 그 정도에 이르렀다는 것이 아니라 “어른으로서의 책임과 의무를 일깨운다는 책성인지례(責成人之禮)”에 있(었)다.
- 관례를 노블레스 오블리주 실천과 연결시킬 수 있을까요? 노블레스 오블리주는 "귀족성은 의무를 갖는다"를 의미로, 주로 사회지도층에 대한 사회에 대한 책임과 도덕성, 보통 부와 권력, 명성은 사회에 대한 책임과 함께 해야 한다는 의미로 쓰입니다.
- 유교의 통치이념인 덕치, 인정, 군왕의 도리 등을 설명에 넣었으면 합니다.
- 유교의 가장 중요한 용어인 인의예지신에 대해서도 설명하였으면.
- 한국의 유교 사상(철학)의 발전 정도와 그 깊이, 특정 유학자에 대한 언급, 타국으로의 사상 전파 등을 설명하면 좋겠습니다.

- 다른 동아시아 국가와는 다른 한국 유교만의 특징이 없을까요? 이에 대해 서술했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