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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사람을 장사지낼 때 수반되는 모든 상례(喪禮)와 죽은 사람의 시신을 처리하는 장례(葬禮)를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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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죽은 사람을 장사지낼 때 수반되는 모든 상례(喪禮)와 죽은 사람의 시신을 처리하는 장례(葬禮)를 말한다.
  
 
=='''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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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실의 상장(喪葬)에 관련된 의식과 산릉(山陵)의 제사, 시호와 책보(冊寶)를 올리는 의식이다. 왕이나 왕비, 왕세자와 왕세자빈이 죽었을 경우 국장(國葬)을 치르게 되는데, 그 장례식에 관련되 일체의 의식과 신위를 종묘에 모시는 부묘(祔廟) 의식 등이 여기에 속한다. 왕과 왕비가 승하하면 5개월장을 치르고, 궁 안에서 3년 상을 치른 뒤 종묘에 신주를 봉안한다.<ref>한영우, 『조선왕조 의궤-국가의례와 그 기록』, 일지사, 2005, 36쪽.</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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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실의 상장(喪葬)에 관련된 의식과 산릉(山陵)의 제사, 시호와 책보(冊寶)를 올리는 의식이다. 왕이나 왕비, 왕세자와 왕세자빈이 죽었을 경우 국장(國葬)을 치르게 되는데, 그 장례식에 관련된 일체의 의식과 신위를 종묘에 모시는 부묘(祔廟) 의식 등이 여기에 속한다. 왕과 왕비가 승하하면 5개월장을 치르고, 궁 안에서 3년 상을 치른 뒤 종묘에 신주를 봉안한다.<ref>한영우, 『조선왕조 의궤-국가의례와 그 기록』, 일지사, 2005, 36쪽.</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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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조오례의|『국조오례의』]]의 [[흉례]]는 국가 또는 왕실의 상례와 장례에 관한 의절을 중점적으로 다루고 있다. 국가나 왕실의 상례 의식은 민간의 상례 의식에 비해 장중하고 복잡하다. 이런 절차는 국가 또는 왕실의 권위를 상징한다. 국가 또는 왕실의 상례의식 중 민간의 상례의식과 다른 것을 예로 들면, 국휼고명을 비롯하여 계령(鷄令)·사위(嗣位)·반교서(頒敎書)·고부청시청승습(告訃請諡請承襲)·의정부솔백관진향의(議政府率百官進香儀)·청시종묘의(請諡宗廟儀)·상시책보의(上諡冊寶儀) 등이 있다. 그 밖에는 민간의 상례 의식과 비슷하여 대부(大夫)와 사서인(士庶人)의 상례는 [[초종|초종(初終)]]에서 [[담|담(禫)]]까지 모두 38개항의 의절이 있다. 고려 말 이래 준행되어 온 [[주자가례|『가례』]]에 수록된 내용과 거의 같다. [[상례]]라 하면 민간의 상례와 장례에 관한 의례를 의미하는 데 반해, [[흉례]]는 민간의 상례와 장례에 관한 의례는 물론 국가 또는 왕실의 상례와 장례에 관한 의절을 포함하는 넓은 의미의 국가 규범적 예전(禮典)의 성격을 지닌다고 할 수 있다.<ref>"[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525482&cid=46649&categoryId=46649 상례]", 한국민족문화대백과, <html><online style="color:purple">『네이버 지식백과』<sup>online</sup></online></html>, 네이버.</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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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규순, 「傳統 喪禮에서의 復과 復衣에 나타난 多面的 성격」, 『한국학논총』 V.34, 국민대학교 한국학연구소, 2010.
 
* 최규순, 「傳統 喪禮에서의 復과 復衣에 나타난 多面的 성격」, 『한국학논총』 V.34, 국민대학교 한국학연구소, 2010.
 
* 최진덕, 「『주자가례』와 죽음의 유학적 이해」, 『정신문화연구』 제23권 제3호, 한국정신문화연구원, 2000.
 
* 최진덕, 「『주자가례』와 죽음의 유학적 이해」, 『정신문화연구』 제23권 제3호, 한국정신문화연구원,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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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1월 3일 (금) 00:10 기준 최신판

흉례
(凶禮)
대표명칭 흉례
한자표기 凶禮
유형 의례
관련개념 상례



정의

조선시대, 죽은 사람을 장사지낼 때 수반되는 모든 상례(喪禮)와 죽은 사람의 시신을 처리하는 장례(葬禮)를 말한다.

내용

왕실의 상장(喪葬)에 관련된 의식과 산릉(山陵)의 제사, 시호와 책보(冊寶)를 올리는 의식이다. 왕이나 왕비, 왕세자와 왕세자빈이 죽었을 경우 국장(國葬)을 치르게 되는데, 그 장례식에 관련된 일체의 의식과 신위를 종묘에 모시는 부묘(祔廟) 의식 등이 여기에 속한다. 왕과 왕비가 승하하면 5개월장을 치르고, 궁 안에서 3년 상을 치른 뒤 종묘에 신주를 봉안한다.[1] 『국조오례의』흉례는 국가 또는 왕실의 상례와 장례에 관한 의절을 중점적으로 다루고 있다. 국가나 왕실의 상례 의식은 민간의 상례 의식에 비해 장중하고 복잡하다. 이런 절차는 국가 또는 왕실의 권위를 상징한다. 국가 또는 왕실의 상례의식 중 민간의 상례의식과 다른 것을 예로 들면, 국휼고명을 비롯하여 계령(鷄令)·사위(嗣位)·반교서(頒敎書)·고부청시청승습(告訃請諡請承襲)·의정부솔백관진향의(議政府率百官進香儀)·청시종묘의(請諡宗廟儀)·상시책보의(上諡冊寶儀) 등이 있다. 그 밖에는 민간의 상례 의식과 비슷하여 대부(大夫)와 사서인(士庶人)의 상례는 초종(初終)에서 담(禫)까지 모두 38개항의 의절이 있다. 고려 말 이래 준행되어 온 『가례』에 수록된 내용과 거의 같다. 상례라 하면 민간의 상례와 장례에 관한 의례를 의미하는 데 반해, 흉례는 민간의 상례와 장례에 관한 의례는 물론 국가 또는 왕실의 상례와 장례에 관한 의절을 포함하는 넓은 의미의 국가 규범적 예전(禮典)의 성격을 지닌다고 할 수 있다.[2]

지식 관계망

관계정보

항목A 항목B 관계 비고
숙종국장도감의궤 흉례 A는 B를 기록하였다 A ekc:documents B
인현왕후의궤 흉례 A는 B를 기록하였다 A ekc:documents B
경종국장도감의궤 흉례 A는 B를 기록하였다 A ekc:documents B
선의왕후국장도감의궤 흉례 A는 B를 기록하였다 A ekc:documents B
정조국장도감의궤 흉례 A는 B를 기록하였다 A ekc:documents B
효의왕후국장도감의궤 흉례 A는 B를 기록하였다 A ekc:documents B
순조국장도감의궤 흉례 A는 B를 기록하였다 A ekc:documents B
명성황후국장도감의궤 흉례 A는 B를 기록하였다 A ekc:documents B
단의빈예장도감의궤 흉례 A는 B를 기록하였다 A ekc:documents B
의소세손예장도감의궤 흉례 A는 B를 기록하였다 A ekc:documents B
국장도감 흉례 A는 B를 담당하였다 A ekc:hasWife B
예장도감 흉례 A는 B를 담당하였다 A ekc:hasWife B
백관 흉례 A는 B를 참여하였다 A ekc:participates B

주석

  1. 한영우, 『조선왕조 의궤-국가의례와 그 기록』, 일지사, 2005, 36쪽.
  2. "상례", 한국민족문화대백과, 『네이버 지식백과』online, 네이버.

참고문헌

인용 및 참조

  • 『국조오례의(國朝五禮儀)』
  •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
  • 『주자가례(朱子家禮)』
  • 이현진, 「영조대 왕실 喪葬禮의 정비와 『國朝喪禮補編』」, 『韓國思想史學』 37, 한국사상사학회, 2011.
  • 이현진, 「정조 초 영조의 國葬 절차와 의미」, 『泰東古典硏究』 27, 한림대학교 태동고전연구소, 2011.
  • 이현진, 『왕의 죽음, 정조의 국장』, 글항아리, 2015.
  • 이현진, 『조선왕실의 상장례』, 신구문화사, 2017.
  • 임민혁, 「조선초기 『國朝五禮儀』 흉례의 구조와 의례적 성격」, 『역사와 실학』 50 , 2013.
  • 鄭鐘秀, 『朝鮮初期 喪葬儀禮 硏究』, 중앙대학교 박사학위논문, 1994.
  • 최규순, 「傳統 喪禮에서의 復과 復衣에 나타난 多面的 성격」, 『한국학논총』 V.34, 국민대학교 한국학연구소, 2010.
  • 최진덕, 「『주자가례』와 죽음의 유학적 이해」, 『정신문화연구』 제23권 제3호, 한국정신문화연구원, 2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