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봉 패도"의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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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김성일과 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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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유산 유물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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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물유적정보
|사진= 학봉패도.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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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한글팀_학봉_패도_01_학봉패도1.jpg
|사진출처= [http://hakbong.org/ 사단법인 학봉선생기념사업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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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인물= [[김성일]]
==정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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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단체= [[의성 김씨]]
학봉 [[김성일]]이 차고 다닌 칼로 '釖曾當百萬帥(작은 칼로도 백만의 군사를 대적한다)'라는 글귀가 새겨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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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장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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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물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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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유물유적= [[의성김씨 학봉종택]] <br/> [[학봉 행장 언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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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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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봉 [[김성일]]이 차고 다니던 칼이다.
  
==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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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학봉 [[김성일]]이 차고 다닌 칼이다. 조선시대에 칼집이 있는 작은 칼을 차고 다니는 것은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이었다. 이런 칼을 장도(粧刀)라고 불렀다. 주머니 속에 넣고 다닌다고 하여 낭도(囊刀), 허리 춤에 차고 다닌다고 하여 패도(佩刀)라고도 불렀다. <ref>박종군,「韓國刀劒에 關한 硏究 : 粧刀를 中心으로」, 동국대학교 대학원 석사학위논문, 1989, 5-7쪽.</ref>
+
===유학자의 칼===
여성들이 장식용, 호신용으로 들고 다닌 '은장도'도 '장도'의 한 종류이다. 여성들뿐 만 아니라 유학자(남성)들도 칼을 차고 다녔다. 이는 유학자들에게 칼이 ''와 '절개'를 의미했기 때문이다. 또 본인의 철학이나 좌우명 등을 칼에 새기기도 하였는데, 이는 그 글귀의 뜻을 항상 마음에 새기며 스스로에게 경고하는, 자기 수양의 의미였다. 학봉 김성일의 패도에는 '釖曾當百萬帥(작은 칼로도 백만의 군사를 대적한다)'라는 글귀가 새겨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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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도(粧刀)는 칼집이 있는 작은 칼을 말한다. 주머니 속에 넣고 다닌다고 하여 낭도(囊刀), 허리춤에 차고 다닌다고 하여 패도(佩刀)라고도 불렀다. <ref>박종군,「韓國刀劒에 關한 硏究 : 粧刀를 中心으로」, 동국대학교 대학원 석사학위논문, 1989, 5-7쪽.</ref> 여성들이 장식용, 호신용으로 들고 다닌 '은장도'도 이름에 있듯이 '장도'의 한 종류이다. 조선시대 선비들이 장도를 찬 것 역시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이었다. 이는 유학자들에게 칼은 '의리'와 '절개'를 상징했기 때문이다. 또 본인의 철학이나 좌우명 등을 칼에 새기기도 하였는데, 이는 그 글귀의 뜻을 항상 마음에 새기며 스스로에게 경고하는, 자기 수양의 의미였다. 학봉 [[김성일]]의 패도에도 '釖曾當百萬帥(작은 칼로도 백만의 군사를 대적한다)'라는 글귀가 새겨져 있다.
  
김성일의 [[학봉 행장 언해|학봉행장]]에서 보면 김성일이 자녀들에게 검을 나누어 주면서 "너희들은 내가 검을 나누어주는 뜻을 알겠는가. 모름지기 이 검으로 의(義)와 리(利)의 빗장을 깨뜨려서 취하고 버릴 것을 구별하기 바란다"라고 했다는 일화가 있다. 공부를 하다 본심을 잃고 욕심에 빠지지 않기 위해 의(義)와 리(利)를 엄격히 구별하고 의(義)를 취하라 말한 것이다. 또 김성일은 『[[학봉일고]]』의 「[http://db.itkc.or.kr/itkcdb/text/nodeViewIframe.jsp?bizName=MK&seojiId=kc_mk_m002&gunchaId=hv001&muncheId=01&finId=301 연릉(延陵)의 칼]」에서 검을 혼란스러운 세상에서 악한 자들을 징계할 수 있는 의리의 상징으로 묘사한다. 『[[학봉일고]]』의 「[http://db.itkc.or.kr/itkcdb/text/nodeViewIframe.jsp?bizName=MK&seojiId=kc_mk_m002&gunchaId=hv001&muncheId=01&finId=306 풍성(蘴城)의 칼]」에서도 검은 간사한 자를 베어 충성을 드러낼 수 있는 도구, 의리에서 맞지 않는 행동을 하는 자들을 처단하는 수단으로 묘사한다. 『[[학봉집]]』의 「[http://db.itkc.or.kr/itkcdb/text/nodeViewIframe.jsp?bizName=MK&seojiId=kc_mk_m002&gunchaId=av001&muncheId=01&finId=040 칼의 노래]」에서는 '칼의 노래'를 부르는 삶이 험난하다고 묘사하고 있다. 이는 의(義)를 실현해나가는 삶이 쉽지 않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처럼 학봉 김성일에게 검은 '의(義)'의 상징이자 의(義)와 리(利)를 구별해주는 기준이 되는 것으로 항상 몸의 곁에 두어 경계로 삼아야하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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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일과 칼===
<ref>민희주, 「鶴峯 金誠一과 谿谷 張維의 劍소재 詩稿」, 동국대학교 대학원 석사학위논문, 2010,  24-30쪽.</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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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일]]의 [[학봉 행장 언해]]에 [[김성일]]이 자녀들에게 검을 나누어 주면서 "너희들은 내가 검을 나누어주는 뜻을 알겠는가. 모름지기 이 검으로 의(義)와 리(利)의 빗장을 깨뜨려서 취하고 버릴 것을 구별하기 바란다"라고 했다는 일화가 있다. 공부를 하다 본심을 잃고 욕심에 빠지지 않기 위해 의(義)와 리(利)를 엄격히 구별하고 의(義)를 취하라 말한 것이다. 또 [[김성일]]은 『[[학봉일고]]』에 실린 「[http://db.itkc.or.kr/itkcdb/text/nodeViewIframe.jsp?bizName=MK&seojiId=kc_mk_m002&gunchaId=hv001&muncheId=01&finId=301 연릉(延陵)의 칼]」에서 검을 혼란스러운 세상에서 악한 자들을 징계할 수 있는 의리의 상징으로 묘사한다. 『[[학봉일고]]』에 있는 「[http://db.itkc.or.kr/itkcdb/text/nodeViewIframe.jsp?bizName=MK&seojiId=kc_mk_m002&gunchaId=hv001&muncheId=01&finId=306 풍성(蘴城)의 칼]」에서도 검은 간사한 자를 베어 충성을 드러낼 수 있는 도구, 의리에서 맞지 않는 행동을 하는 자들을 처단하는 수단으로 묘사한다. 『[[학봉집]]』에 수록된 「[http://db.itkc.or.kr/itkcdb/text/nodeViewIframe.jsp?bizName=MK&seojiId=kc_mk_m002&gunchaId=av001&muncheId=01&finId=040 칼의 노래]」에서는 '칼의 노래'를 부르는 삶이 험난하다고 말하고 있다. 이는 의(義)를 실현해나가는 삶이 쉽지 않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처럼 학봉 김성일에게 검은 '의(義)'의 상징이자 의(義)와 리(利)를 구별해주는 기준이 되는 것으로 항상 몸가까이 두어 경계로 삼아야 하는 것이었다.<ref>민희주, 「鶴峯 金誠一과 谿谷 張維의 劍소재 詩稿」, 동국대학교 대학원 석사학위논문, 2010,  24-30쪽.</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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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명 조식의 경의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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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봉 [[김성일]]과 같이 검을 몸에 지니고 다니며 경계했던 것으로 유명한 학자로 남명 [[조식]]이 있다. [[조식]]은 '경의검(敬義劍)'이란 검과 '성성자(惺惺子)'라는 방울을 항상 가지고 다녔다. 검에는 '내명자경(內明者敬) 외단자의(外斷者義)'라는 글귀를 새겼는데 '안으로 깨우치는 경(敬), 밖으로 결단있게 행동하는 의(義)'라는 의미이다.<ref>최재목, 「칼과 방울의 은유 ― 동아시아사상사에서 남명 조식 읽기 시론(試論)」, 『남명학연구논총』21, 남명학연구원, 2016, 109쪽.</ref> 성성자는 스스로 경계하며 깨어있겠다는 성성(惺惺)의 뜻이 담긴 이름이다. 검을 몸에 차고 다니며 자신의 의지를 다지고 스스로를 경계하는 거울로 삼았다. 몸을 움직일 때마다 울리는 방울소리 또한 검과 같이 스스로를 경계하는 도구로 삼았다.<ref>"[http://www.yeongnam.com/mnews/newsview.do?mode=newsView&newskey=20140217.010310759560001 남명 조식의 칼과 방울]", 『영남일보』, 작성일: 2014년 2월 17일.</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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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봉 김성일과 같이 검을 몸에 지니고 다니며 경계했던 것으로 유명한 학자가 또 있다. 바로 남명 [[조식]]이다. 조식은 '경의검(敬義劍)'이란 검과 '성성자(惺惺子)'라는 방울을 항상 가지고 다녔다. 검에는 '내명자경(內明者敬) 외단자의(外斷者義)'라는 글귀를 새겼는데 '안으로 깨우치는 경(敬), 밖으로 결단있게 행동하는 의(義)'라는 의미이다.<ref>최재목, 「 칼과 방울의 은유 -동아시아사상사에서 남명 조식 읽기 시론(試論)」, 『남명학연구논총』21, 남명학연구원, 2016, 109쪽.</ref> 성성자는 스스로 경계하며 깨어있겠다는 성성(惺惺)의 뜻이 담긴 이름이다. 검을 몸에 차고 다니며 자신의 의지를 다지고 스스로를 경계하는 거울로 삼았다. 몸을 움직일때마다 울리는 방울소리 또한 검과 같이 스스로를 경계하는 도구로 삼았다.<ref>"[http://www.yeongnam.com/mnews/newsview.do?mode=newsView&newskey=20140217.010310759560001 남명 조식의 칼과 방울]", 『영남일보』, 2014년 2월 17일.</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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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 관계망'''==
이렇든 조선의 선비들에게 검은 스스로를 경계하고, 자신의 신념을 다잡는, 경계의 거울이자 수양의 도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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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학봉 김성일가의 한글 고문서 지식관계망
 
 
==시각자료==
 
===영상===
 
*'''문화유산채널 : 선비의 칼 낙죽장도(게시일: 2015.1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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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TN 뉴스 : 국보급 '조선 선비의 칼' 첫 발견(게시일: 2014.1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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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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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ferenc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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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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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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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주==
 
<references/>
 
 
[[분류:한글고문서]]
 
[[분류:한글고문서]]
[[분류:이혜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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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문화유산]]

2017년 11월 24일 (금) 22:39 기준 최신판

학봉 패도
(鶴峰 佩刀)
기록유산스토리자원 개발팀 자체 촬영
대표명칭 학봉 패도
한자표기 鶴峰 佩刀
시대 16세기 후반
소장처 의성김씨 학봉종택
수량 1개
관련인물 김성일
관련단체 의성 김씨
관련유물유적 의성김씨 학봉종택
학봉 행장 언해


정의

학봉 김성일이 차고 다니던 칼이다.

내용

유학자의 칼

장도(粧刀)는 칼집이 있는 작은 칼을 말한다. 주머니 속에 넣고 다닌다고 하여 낭도(囊刀), 허리춤에 차고 다닌다고 하여 패도(佩刀)라고도 불렀다. [1] 여성들이 장식용, 호신용으로 들고 다닌 '은장도'도 이름에 있듯이 '장도'의 한 종류이다. 조선시대 선비들이 장도를 찬 것 역시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이었다. 이는 유학자들에게 칼은 '의리'와 '절개'를 상징했기 때문이다. 또 본인의 철학이나 좌우명 등을 칼에 새기기도 하였는데, 이는 그 글귀의 뜻을 항상 마음에 새기며 스스로에게 경고하는, 자기 수양의 의미였다. 학봉 김성일의 패도에도 '釖曾當百萬帥(작은 칼로도 백만의 군사를 대적한다)'라는 글귀가 새겨져 있다.

김성일과 칼

김성일학봉 행장 언해김성일이 자녀들에게 검을 나누어 주면서 "너희들은 내가 검을 나누어주는 뜻을 알겠는가. 모름지기 이 검으로 의(義)와 리(利)의 빗장을 깨뜨려서 취하고 버릴 것을 구별하기 바란다"라고 했다는 일화가 있다. 공부를 하다 본심을 잃고 욕심에 빠지지 않기 위해 의(義)와 리(利)를 엄격히 구별하고 의(義)를 취하라 말한 것이다. 또 김성일은 『학봉일고』에 실린 「연릉(延陵)의 칼」에서 검을 혼란스러운 세상에서 악한 자들을 징계할 수 있는 의리의 상징으로 묘사한다. 『학봉일고』에 있는 「풍성(蘴城)의 칼」에서도 검은 간사한 자를 베어 충성을 드러낼 수 있는 도구, 의리에서 맞지 않는 행동을 하는 자들을 처단하는 수단으로 묘사한다. 『학봉집』에 수록된 「칼의 노래」에서는 '칼의 노래'를 부르는 삶이 험난하다고 말하고 있다. 이는 의(義)를 실현해나가는 삶이 쉽지 않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처럼 학봉 김성일에게 검은 '의(義)'의 상징이자 의(義)와 리(利)를 구별해주는 기준이 되는 것으로 항상 몸가까이 두어 경계로 삼아야 하는 것이었다.[2]

연계 자원 보러 가기
학봉 김성일 종가 고문헌을 통해 살펴보는 조선 사대부의 삶


지식 관계망

  • 학봉 김성일가의 한글 고문서 지식관계망

관계정보

항목A 항목B 관계 비고
김성일 학봉 패도 A는 B와 관련이 있다 A edm:isRelatedTo B
학봉 패도 의성김씨 학봉종택 A는 B에 소장되었다 A edm:currentLocation B
학봉 패도 검(패도) A의 유형은 B이다 A dcterms:type B
조식 검(패도) A는 B와 관련이 있다 A edm:isRelatedTo B
연릉의 칼 검(패도) A는 B를 언급하였다 A ekc:mentions B
풍성의 칼 검(패도) A는 B를 언급하였다 A ekc:mentions B
칼의 노래 검(패도) A는 B를 언급하였다 A ekc:mentions B
연릉의 칼 김성일 A는 B에 의해 저술되었다 A dcterms:creator B
풍성의 칼 김성일 A는 B에 의해 저술되었다 A dcterms:creator B
칼의 노래 김성일 A는 B에 의해 저술되었다 A dcterms:creator B
학봉 행장 언해 검(패도) A는 B를 언급하였다 A ekc:mentions B

시간정보

시간정보 내용
16세기 후반 김성일학봉 패도를 사용하였다.

공간정보

위도 경도 내용
36.609771 128.669643 의성김씨 학봉종택학봉 패도가 소장되어 있다

시각자료

갤러리

영상

  • 문화유산채널 : 선비의 칼 낙죽장도(게시일: 2015.11.09.)

  • YTN 뉴스 : 국보급 '조선 선비의 칼' 첫 발견(게시일: 2014.10.19.)

주석

  1. 박종군,「韓國刀劒에 關한 硏究 : 粧刀를 中心으로」, 동국대학교 대학원 석사학위논문, 1989, 5-7쪽.
  2. 민희주, 「鶴峯 金誠一과 谿谷 張維의 劍소재 詩稿」, 동국대학교 대학원 석사학위논문, 2010, 24-30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