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탑비문 작업노트

충주 청룡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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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한샘 (토론 | 기여) 사용자의 2017년 3월 31일 (금) 13:44 판 (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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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주 청룡사지
(靑龍寺址)
대표명칭 충주 청룡사지
한자 靑龍寺址
주소 충청북도 충주시 소태면 오량리 561-1
경내문화재 충주 청룡사지 보각국사탑(忠州靑龍寺址普覺國師塔), 충주 청룡사지 보각국사탑비(忠州靑龍寺址普覺國師塔碑), 충주 청룡사지 보각국사탑 앞 사자석등(忠州靑龍寺址普覺國師塔―獅子石燈), 충주 청룡사지 석종형승탑(忠州靑龍寺址石鐘形僧塔)



정의

충청북도 충주시 소태면 오량동에 있는 고려시대 절터.[1]

내용

고려말 청계산 중턱에 작은 암자가 있던 것을 이태조의 사부 보각국사가 은거하므로, 태조가 대사찰을 세우도록 했다 한다. 지금은 폐허가 되고 부근에는 보각국사의 부도탑인 정혜원융탑석등, 정혜원융탑비 등이 남아 있다. 정혜원융탑보각국사의 사리를 모셔놓은 탑으로 국사가 세상을 떠나자, 태조가 왕명으로 탑을 짓게 하여 권근이 비문을 짓고 탑명을 정혜원융(定慧圓融)이라 하였다. 무너져 있던 것을 1968년 복원하였으며, 석등은 보각국사의 명복을 빌기 위해 만들어진 것으로 조선시대 석등의 기본형인 평면정사각형이다. 아래부분에 한마리 사자의 모습이 매우 힘차게 표현되어 있어 사자석등이라고 부른다. 경기도 양주의 회암사지 쌍사자석등과 더불어 조선시대 사자석등의 대표적인 작품이다. 정혜원융탑비보각국사를 기리기 위한 비로 고려 우왕 9년에 국사가 되어 73세에 입적한 사실과 보각국사의 덕과 지혜를 기린다는 내용으로 되어 있다.

청룡사지에 전하는 전설[2] 소태면 오량리에 청계산이라는 이름난 산이 있다. 조선조 말엽 민씨네가 득세를 할 때 청룡사 윗자리에 명당이 있다 하여 민씨네가 이곳으로 이장을 하였다. 그런데 풍수설에 따르면 명당자리 부근에 절이 있으면 좋지 않다는 것이다. 그래서 절을 없애기로 했다. 당시 이곳에는 허씨들이 살고 있었다. 이들의 세력이 컸고 사찰의 운영권도 그들이 쥐고 있었기 때문에 절을 없애는 일이 쉽지 않았다. 그래서 민씨 가에서는 비밀리에 사람을 사서 절에다 불을 지르기에 이르렀다. 그 때 이 절 지붕에서 살 던 큰 뱀이 내려와 불을 지른 사람의 앞을 가로 막으니 한 사람은 놀라 자빠져 피를 토하며 죽고, 또 한 사람은 발이 떨어지지 않아 불에 타 죽고 말았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그 절 위에 쓴 민씨 산소에 벌초를 하러 오는 사람까지도 오기만하면 생명을 잃고 갔기에 산소도 묵모이로 옮겼다고 한다.

청룡사지 경내 문화유산의 조성

건립시기 문화유산 특징
조선 태조 1-2년(1392-1393) 충주 청룡사지 보각국사탑 앞 사자석등(忠州靑龍寺址普覺國師塔―獅子石燈)
조선 태조 3년(1394) 충주 청룡사지 보각국사탑(忠州靑龍寺址普覺國師塔)
조선 태조 3년(1394) 충주 청룡사지 보각국사탑비(忠州靑龍寺址普覺國師塔碑)

가상현실

관련항목

항목A 항목B 관계 비고

시간정보

시간정보 내용

참고문헌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문화재대관』1 국보 1(한국문화재보호협회, 대학당, 1986)
대한민국 구석구석, 한국관광공사
대한민국 구석구석, 한국관광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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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석

  1. "청룡사지", 『향토문화전자대전』, 한국학중앙연구원. 2017년 3월 31일 확인.
  2. "청룡사지",『대한민국 구석구석』, 한국관광공사. 2017년 3월 31일 확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