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의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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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의위
(忠義衛)
대표명칭 충의위
한자표기 忠義衛
유형 군대


정의

조선시대 중앙군으로서 오위(五衛)충좌위(忠佐衛)에 소속되었던 양반 특수 병종(兵種)이다. [1]

내용

기관의 특수한 성격

1418년(세종 즉위년) 개국(開國)·정사(定社)·좌명(佐命)의 3공신 자손들이 주로 소속되도록 만들어진 특수층에 대한 일종의 우대 기관이었다. 나중에는 공신 자손의 적자(嫡子)·적손(嫡孫)만이 아니라 중자(衆子)·중손(衆孫)도 들 수 있게 되었다. 시간이 경과하면서 뒤에 범위가 더욱 넓어져 공신 자손으로 적자손(嫡子孫)이 없을 경우에는 첩자손(妾子孫)이라도 여기에 포함될 수 있게 하였다.[2]

기관의 존재 목적

충의위는 위의 공신 자손들이 18세가 되면 아무 시취(試取)의 관문도 거치지 않고 입속되어 군사적 실력과는 거의 관련 없이 입직근무(入直勤務)를 하도록 되어 있었다. 자원(自願)하면 60세까지는 계속 입번(入番)하면서 왕의 측근을 호위할 수 있었다. 그러나 실제로는 일정 기간 복무한 다음 다른 관직으로 거관(去官)하는 것이 주목적이었다. 따라서, 명목은 근위(近衛)이나 무예의 실력이 없어서 도리어 실제 수가(隨駕) 등에는 그 기능을 다하지 못하였다. 왕이 수렵할 때에는 몰이꾼 노릇을 하는 데 불과하고, 왕도 친히 산 위에 올라가는데 충의위는 산기슭(山麓)에 머물러 있을 정도였다.[3]

기관 존재의 의의

『경국대전』에 의하면 충의위의 정액(定額)은 규정되어 있지 않고 장번복무(長番服務)를 하는데, 이들을 위해 종4품 이하의 체아직(遞兒職) 53과(窠)가 마련되어 있었다. 거관은 종4품으로 되어 있으나 계속 복무하고자 하는 자는 정3품에서 그치도록 되어 있고, 보(保)는 없었다. 이들은 군대 복무를 한다기보다는 관료 체제 안에서 관리로서의 진출을 위한 이전 단계에 머물러 있는 셈이었다. 공신 자손이라는 특권 때문에 군역에 복무하는 것이 사실상 관료로의 진출을 의미하였던 것이다.[4]

지식 관계망

관계정보

항목A 항목B 관계 비고
충의위 송시열 분재 편지 A는 B와 관련이 있다 A edm:isRelatedTo B
오위 충자위 A는 B를 포함한다 A dcterms:hasPart B
충자위 충의위 A는 B를 포함한다 A dcterms:hasPart B
경국대전 충의위 A는 B를 언급하였다 A ekc:mentions B

주석

  1. 민현구, "충의위(忠義衛)",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online, 한국학중앙연구원.
  2. 민현구, "충의위(忠義衛)",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online, 한국학중앙연구원.
  3. 민현구, "충의위(忠義衛)",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online, 한국학중앙연구원.
  4. 민현구, "충의위(忠義衛)",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online, 한국학중앙연구원.

참고문헌

인용 및 참조

  • 단행본
    • 민현구, 『조선초기(朝鮮初期)의 군사제도(軍事制度)와 정치(政治)』, 한국연구원, 1983.
    • 천관우, 『근세조선사(近世朝鮮史) 연구(硏究)』 일조각, 1979.
    • 차문섭, 『조선시대(朝鮮時代) 군제(軍制) 연구(硏究)』, 단국대학교출판부, 1973.
  • 논문
    • 차문섭, 「선초(鮮初)의 충의(忠義)·충찬(忠贊)·충순위(忠順衛)에 대하여」, 『사학연구』19, 한국사학회, 1967.
    • 천관우, 「조선초기(朝鮮初期) 오위(五衛)의 병종(兵種)」,『사학연구』18, 한국사학회, 1964.
  • 웹자원
    • "충의위", 두산백과, 『네이버 지식백과』online.
    • "충의위", 한국고전용어사전, 『네이버 지식백과』onlin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