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상화로 읽는 노론과 소론의 분화"의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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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내용==
  
====학봉 김성일 가문 소장 고문헌의 자료적 가치와 의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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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당과 산당 : 김육과 김집====
학봉(鶴峰) [[김성일|김성일(金誠一)]]은 서애(西厓) [[유성룡|유성룡(柳成龍)]], 한강(寒岡) [[정구|정구(鄭逑)]], 월천(月川) [[조목|조목(趙穆)]]과 함께 퇴계(退溪) [[이황|이황(李滉)]]의 대표적인 제자 가운데 한 명으로 언급된다. 성리학에 조예가 깊었던 [[김성일]]은 퇴계를 종장으로 하는 영남학파의 중심을 담당하였으며, 그로부터 이어진 퇴계의 학맥은 경당(敬堂) [[장흥효|장흥효(張興孝)]], 석계(石溪) [[이시명|이시명(李時明)]], 갈암(葛庵) [[이현일|이현일(李玄逸)]], 밀암(密庵) [[이재|이재(李裁)]], 대산(大山) [[이상정|이상정(李象靖)]], 손재(損齋) [[남한조|남한조(南漢朝)]], 정재(定齊) [[류치명|류치명(柳致明)]]을 거쳐 김성일의 11대손인 서산(西山) [[김흥락|김흥락(金興洛)]]에 까지 연결되었다. 이와 같이 조선 중기에서 후기에 이르기까지 안동을 중심으로 한 영남학파의 줄기를 잇는 역할을 하였던 탓에 그가 속한 [[의성 김씨]] 가문은 [[유성룡]]의 [[풍산 류씨]] 가문과 함께 영남을 대표하는 사대부 가문으로서 조선왕조를 거쳐 현대에 이르기까지 종가의 전통과 문화를 훌륭히 계승해 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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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nt color="red">2016 장서각 특별전 <한글, 소통과 배려의 문자>에 전시된 5편의 [[의성김씨 학봉종택]] 소장 고문헌들 또한 그러한 의성 김씨 학봉 종가의 문화적 일면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근거에 해당한다.</font> ☞ 자기 논리에 자신이 없을 때 강변하기 위해 쓰는 표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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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봉 김성일이 아내 안동권씨에게 보낸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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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론의 중심 : 송시열과 권상하====
전시 자료 중 '''[[학봉 김성일이 아내 안동권씨에게 보낸 편지]]'''는 [[진주전투|임진왜란]]이라는 큰 난리 가운데서도 위정자로서의 본분을 잊지 않고 한편으로는 집에 있을 아내를 걱정하는 따뜻한 가장으로서의 김성일의 일면을 보여준다. 경상우도관찰사라는 높은 직위에 있었음에도 사사로운 감정으로 자신의 가문에 곡식을 보내지 않고 그에 대해 아내에게 당부하는 김성일의 모습을 통해 공직자로서의 참다운 자세를 상기해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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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봉 행장 언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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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론의 중심 : 윤증과 박세당====
전시 자료 중 '''[[학봉 행장 언해]]'''는 김성일의 7대손인 [[김주국]]이 다섯째 딸을 위해 1617년 10월 한강(寒岡) [[정구|정구(鄭逑)]]에 의해 지어진 [[학봉행장]] 한문본을 한글로 다시 옮긴 것이다. 선조의 훌륭한 삶을 본받아 딸이 부끄럼없이 살아가기를 바라는 아버지의 모습을 엿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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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국의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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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론과 소론의 대립1 : 경신환국(1680)====
'''[[김주국의 편지]]'''는 아들 [[김광찬]]이 일찍 죽고 혼자가 된 며느리 [[진성이씨|진성이씨(眞城李氏)]]에게 [[김주국]]이 보낸 편지로서, 불행한 상황에 처한 며느리를 다독이는 한편 종가의 며느리로서 집안을 잘 보전해나갈 것에 대한 당부를 서술하고 있다. 아들의 죽음이라는 초유의 상황을 맞이한 개인이 스스로의 슬픔을 억누르고 며느리의 안위를 걱정하면서 동시에 가문의 전통을 보전하고자 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자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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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광찬·김주국의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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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론과 소론의 대립2 : 가례원류시말(1715)====
'''[[김광찬·김주국의 편지]]'''는 죽음을 예감하고 아내 [[진성이씨]]에게 당부의 이야기를 남긴 [[김광찬]]의 애틋한 마음과, 그의 죽음 이후 며느리의 슬픔을 다독이고자 한 시아버지 [[김주국]]의 따뜻한 목소리가 동시에 기록되어 있는 자료이다. 대산(大山) [[이상정|이상정(李象靖)]]의 제자로서 영민하다고 일컬어졌던 [[김광찬]]을 떠나보내며, 안타까워하고 아파했을 아버지와 아내의 모습을 그려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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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초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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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론과 소론의 대립3 : 회니시비(1716)====
'''[[여자초학]]'''은 [[김광찬]]의 아들 [[김종수]]가 그의 맏딸을 위해 여성으로서 지켜야 할 마음과 몸가짐을 강조하고자 한글로 쓴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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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봉종택 소장 자료들의 내용상 특징과 의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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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론과 소론 계열에 얽힌 반남 박씨와 파평 윤씨와 은진 송씨의 혼맥===
5편의 [[의성김씨 학봉종택]] 소장 고문헌들은 모두 사대부 가문의 후손으로서 가져야 할 올바른 자세와 윤리적 태도를 강조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학봉 [[김성일]]이라는 큰 인물을 위시하여 그의 후손들인 [[김주국]], [[김광찬]], [[김종수]] 또한 사대부 가문의 일원으로서 올바르게 살아가고자 한 삶의 철학을 몸소 견지하였음을 알 수 있는 것이다. 5편의 고문헌에 담긴 내용 외에도 현재 [[의성김씨 학봉종택]]에서 소장하고 있는 [[학봉 안경|학봉이 썼던 안경]], [[학봉 패도|학봉이 차고 다녔던 칼]], [[학봉 유서통|선조 임금으로부터 학봉이 받았던 유서를 보관했던 통]] 등의 유물들을 살펴봄으로써 조선 중기를 살았던 유학자로서의 [[김성일]]의 삶을 되돌아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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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 관계망==
 
==지식 관계망==

2017년 9월 21일 (목) 16:50 판

개요

조선 중기 임진왜란을 거치면서 동인은 북인과 남인으로 갈라졌다. 한동안 광해군 정권하 북인의 기세에 눌려 웅크려 지내던 서인은 인조반정을 계기로 북인을 몰아내고 권력을 쥔 채 남인을 견제한다. 그리고 동인이 북인과 남인으로 갈라진 것처럼 서인 또한 오래가지 않아 경신환국, 회니시비, 가례원류시말 등의 사건을 통해 노론과 소론으로 나누어진다. 당시 그러한 사건의 중심에 있었던 인물들이 송시열, 윤증, 권상하, 박세당, 박세채, 남구만, 김석주 등의 인물들이며, 그들이 곧 당시 노론과 소론의 영수들에 해당한다.

내용

한당과 산당 : 김육과 김집

노론의 중심 : 송시열과 권상하

소론의 중심 : 윤증과 박세당

노론과 소론의 대립1 : 경신환국(1680)

노론과 소론의 대립2 : 가례원류시말(1715)

노론과 소론의 대립3 : 회니시비(1716)

=노론과 소론 계열에 얽힌 반남 박씨와 파평 윤씨와 은진 송씨의 혼맥

지식 관계망

중심요소

문맥요소

관계정보

항목A 항목B 관계 비고
초상화로 읽는 노론과 소론의 분화 학봉 김성일이 아내 안동권씨에게 보낸 편지 A는 B를 포함하는 기획기사이다
초상화로 읽는 노론과 소론의 분화 학봉 행장 언해 A는 B를 포함하는 기획기사이다
초상화로 읽는 노론과 소론의 분화 김주국의 편지 A는 B를 포함하는 기획기사이다
초상화로 읽는 노론과 소론의 분화 김광찬·김주국의 편지 A는 B를 포함하는 기획기사이다
초상화로 읽는 노론과 소론의 분화 여자초학 A는 B를 포함하는 기획기사이다

시간정보

시간 내용
1592년 학봉 김성일이 아내 안동권씨에게 보낸 편지가 작성되었다.
1765년 김주국의 편지가 작성되었다.
1765년-1767년 김광찬·김주국의 편지가 작성되었다.
1770년 학봉 행장 언해가 작성되었다.
1797년 여자초학이 작성되었다.

공간정보

위도 경도 내용
36.609771 128.669643 초상화로 읽는 노론과 소론의 분화은 의성김씨 학봉종택과 관련이 있다.

시각자료

가상현실


가상 현실 - 전체 화면 보기

영상

『안동 학봉 김성일 종가: 의리와 충절의 400년』 저자 이해영 인터뷰(게시일: 2015.05.28.)

주석


참고 자료

더 읽을 거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