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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규장각(奎章閣)의 종6품 관직. <ref> 이영춘, "[http://encykorea.aks.ac.kr/Contents/Index?contents_id=E0054484  직각(直閣)]", <html><online style="color:purple">『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sup>online</sup></online></html>, 한국학중앙연구원.</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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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규장각(奎章閣)의 종6품 관직이다. <ref> 이영춘, "[http://encykorea.aks.ac.kr/Contents/Index?contents_id=E0054484  직각(直閣)]", <html><online style="color:purple">『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sup>online</sup></online></html>, 한국학중앙연구원.</ref>
  
 
=='''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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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1월 22일 (수) 21:59 판

직각
(直閣)
대표명칭 직각
한자표기 直閣
유형 제도, 관직


정의

조선 후기 규장각(奎章閣)의 종6품 관직이다. [1]

내용

직무의 위계

1776년(정조 즉위년) 규장각의 창설과 함께 새로 설치된 직제로, 정3품∼종6품의 참상 문관 중에서 1명을 선임하였다. 사관(史官)과 지제교(知製敎)를 당연직으로 겸임하는 조선 후기 청요직 중의 청요직으로, 상관인 제학·직제학 등이 모두 타관서의 중요한 관원으로 본직을 겸직하고 있었기 때문에 규장각의 실질적 책임자였다.[2]

직무의 임무

대교(待敎) 1인과 함께 규장각에 2개뿐인 정규직으로서 역대 국왕의 친필 문헌·서화 및 왕실도서의 관리책임자였다. 그의 임명은 매우 신중하여 반드시 이전에 홍문관직을 역임한 관원들 중에서 규장각의 제학·직제학이 권점(圈點)으로 선출하여 이조로 보내어 임명하도록 하였다. 직각대교는 당대에 가장 명망있는 젊은 문관들 중에서 선임되었고, 또 이를 역임한 자는 그 출세가 보장되기도 하였다. 이 두 직은 여기에 임명되는 자가 다른 직함이 없으면 실직(實職)으로 되고 다른 직함이 있는 경우에는 겸직으로 운영되었다. 이는 실상 직각이나 대교에게 타직을 겸할 수 있게 하는 것이며, 또 타직으로 옮겨간 뒤에도 계속하여 이를 겸직할 수 있게 한 것이다. 교서관(校書館)이 규장각에 병합되어 외각(外閣)으로 편제된 뒤에는 내각의 직각이 외각의 종5품 겸교리직을 당연직으로 겸임하게 되었다.[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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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유함경남북관대소민인등윤음


지식 관계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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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계정보

항목A 항목B 관계 비고
직각 어제 유함경남북관대소민인등윤음 A는 B와 관련이 있다 A edm:isRelatedTo B
직각 규장각 A는 B와 관련이 있다 A edm:isRelatedTo B
대교 규장각 A는 B와 관련이 있다 A edm:isRelatedTo B
직각 대교 A는 B와 관련이 있다 A edm:isRelatedTo B


주석

  1. 이영춘, "직각(直閣)",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online, 한국학중앙연구원.
  2. 이영춘, "직각(直閣)",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online, 한국학중앙연구원.
  3. 이영춘, "직각(直閣)",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online, 한국학중앙연구원.

참고문헌

인용 및 참조

  • 김용덕, 「규장각고(奎章閣考)」.『중앙대학교논문집』2, 중앙대학교, 1957, 223-238쪽.
  • "직각", 두산백과, 『네이버 지식백과』onlin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