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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항복|백사 이항복(李恒福, 1556-1618)]]이 1598년([[조선 선조|선조]] 31년)에 [[정응태 무고사건|정응태(丁應泰)의 무고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파견된 사신으로서 명(明)에 다녀오면서, 사행(使行)의 여정에서 지었던 한시와 동행들과 수창(酬唱)한 한시(漢詩) 등을 모아서 기록한 『조천록(朝天錄)』의 문학세계와 문학사적 의의에 대하여 고찰하는 것을 그 목적으로 한다.<ref>이성형, 「白沙 李恒福의 「朝天錄」 硏究」, 『한자한문교육』17권0호, 한국한자한문교육학회, 2006.</ref>
 
[[이항복|백사 이항복(李恒福, 1556-1618)]]이 1598년([[조선 선조|선조]] 31년)에 [[정응태 무고사건|정응태(丁應泰)의 무고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파견된 사신으로서 명(明)에 다녀오면서, 사행(使行)의 여정에서 지었던 한시와 동행들과 수창(酬唱)한 한시(漢詩) 등을 모아서 기록한 『조천록(朝天錄)』의 문학세계와 문학사적 의의에 대하여 고찰하는 것을 그 목적으로 한다.<ref>이성형, 「白沙 李恒福의 「朝天錄」 硏究」, 『한자한문교육』17권0호, 한국한자한문교육학회, 2006.</ref>
조천록 같은 사행록(使行錄)은 공적인 사신의 명 완수를 위한 목적을 수반한 여행기록이기 때문에, 일반 기행문과는 그 성격이 다른 경향을 보인다. 하지만 사신을 선발할 때 뛰어난 문사가 사신의 일행으로 포함되는 것이 일반적인 관례였는데, 공자(孔子)도 언급할 정도로 사신의 문학적 소양은 외교에서는 매우 중요한 수단이 되었으며, 작품의 수준은 그 국가의 문화수준을 가늠하는 척도가 되기도 하였다. 사신으로 선발될 사람에게는 사행의 지침서 역할을 하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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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천록 같은 사행록(使行錄)은 공적인 사신의 명 완수를 위한 목적을 수반한 여행기록이기 때문에, 일반 기행문과는 그 성격이 다른 경향을 보인다. 하지만 사신을 선발할 때 뛰어난 문사가 사신의 일행으로 포함되는 것이 일반적인 관례였는데, 공자(孔子)도 언급할 정도로 사신의 문학적 소양은 외교에서는 매우 중요한 수단이 되었으며, 작품의 수준은 그 국가의 문화수준을 가늠하는 척도가 되기도 하였다. 사신으로 선발될 사람에게는 사행의 지침서 역할을 하기도 하였다.<ref>이성형, 「白沙 李恒福의 「朝天錄」 硏究」, 『한자한문교육』17권0호, 한국한자한문교육학회, 2006.</ref>
 
 
 
 
  
 
명나라에 다녀올 때는 천자를 뵙고 온 기록이라는 뜻으로 조천록이란 이름을 많이 썼다.  
 
명나라에 다녀올 때는 천자를 뵙고 온 기록이라는 뜻으로 조천록이란 이름을 많이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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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개월 정도의 중국 사행기록이다.
 
6개월 정도의 중국 사행기록이다.
 
<ref>緣田, "[http://blog.daum.net/lrrock5050/330 조천록 상(上) 기문(記聞) ]", <html><online style="color:purple">『Daum 블로그』<sup>online</sup></online></html>.</ref>
 
<ref>緣田, "[http://blog.daum.net/lrrock5050/330 조천록 상(上) 기문(記聞) ]", <html><online style="color:purple">『Daum 블로그』<sup>online</sup></online></html>.</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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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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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ferenc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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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0월 26일 (목) 16:41 판

조천록(朝天錄)
대표명칭 조천록
한자표기 朝天錄
저자 이항복(李恒福)
간행시기 1629년
시대 조선시대



정의

내용

백사 이항복(李恒福, 1556-1618)이 1598년(선조 31년)에 정응태(丁應泰)의 무고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파견된 사신으로서 명(明)에 다녀오면서, 사행(使行)의 여정에서 지었던 한시와 동행들과 수창(酬唱)한 한시(漢詩) 등을 모아서 기록한 『조천록(朝天錄)』의 문학세계와 문학사적 의의에 대하여 고찰하는 것을 그 목적으로 한다.[1] 조천록 같은 사행록(使行錄)은 공적인 사신의 명 완수를 위한 목적을 수반한 여행기록이기 때문에, 일반 기행문과는 그 성격이 다른 경향을 보인다. 하지만 사신을 선발할 때 뛰어난 문사가 사신의 일행으로 포함되는 것이 일반적인 관례였는데, 공자(孔子)도 언급할 정도로 사신의 문학적 소양은 외교에서는 매우 중요한 수단이 되었으며, 작품의 수준은 그 국가의 문화수준을 가늠하는 척도가 되기도 하였다. 사신으로 선발될 사람에게는 사행의 지침서 역할을 하기도 하였다.[2]

명나라에 다녀올 때는 천자를 뵙고 온 기록이라는 뜻으로 조천록이란 이름을 많이 썼다. 조천록은 백사 이항복이 1598년 정응태의 무고사건을 해결하기 위하여 파견된 사신으로 북경에 다녀오면서 남긴 기록이다. 날짜별로 정리가 되어있으며, 한시와 산문이 섞여 있다. 주로 보고 들은 것을 서술하였으며, 필요에 따라 일기의 형식으로 적었고, 시로 일기를 대신한 부분도 있다.

이 조천록은 1629년 간행이 되어 많은 사람들에게 읽혔으며, 문집인 백사집에는 별집 제5-6권에 실려 있다. 6개월 정도의 중국 사행기록이다. [3]

지식관계망

관련항목

항목A 항목B 관계 비고
조천록 이항복 A는 B가 저술하였다 A dcterms:creator B
조천록 정응태 무고사건 A는 B와 관련이 있다 A edm:isRelatedTo B

주석

  1. 이성형, 「白沙 李恒福의 「朝天錄」 硏究」, 『한자한문교육』17권0호, 한국한자한문교육학회, 2006.
  2. 이성형, 「白沙 李恒福의 「朝天錄」 硏究」, 『한자한문교육』17권0호, 한국한자한문교육학회, 2006.
  3. 緣田, "조천록 상(上) 기문(記聞) ", 『Daum 블로그』online.

참고문헌

  • 이성형, 「白沙 李恒福의 「朝天錄」 硏究」, 『한자한문교육』17권0호, 한국한자한문교육학회, 2006.
  • 緣田, "조천록 상(上) 기문(記聞) ", 『Daum 블로그』onlin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