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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중일 문화유산에 묘사된 장보고 얼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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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중일 문화유산에 묘사된 장보고 얼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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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보고]]의 얼굴 모습은 한중일마다 다르게 묘사되어 있다.<br/>
 
[[장보고]]의 얼굴 모습은 한중일마다 다르게 묘사되어 있다.<br/>
일본의 경우, 교토 동쪽 시가현에 위치한 [[온조지|온조지(園城寺)]]에 일본 국보로 지정된 '[[신라명신상|신라명신상(新羅明神像)]]'이 안치되어 있다. [[신라명신상]]은 [[온조지]]의 수호신으로, 858년 당 유학을 마친 승려 [[엔친|엔친(圓珍)]]이 귀국할 때 배 안에 신라명신이 나타나 엔친의 호법신이 되어주겠다고 하였다. 그 모습을 명신상으로 조각하여 [[온조지]]의 수호신으로 삼아 경내의 신라선신당에 안치한 것으로 알려져있다.<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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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경우, 교토 동쪽 시가현에 위치한 [[온조지|온조지(園城寺)]] [[신라선신당|신라선신당(新羅善神堂)]]에 일본 국보로 지정된 '[[신라명신상|신라명신상(新羅明神像)]]'이 안치되어 있다. [[신라명신상]]은 높이 78cm의 노송나무 조각상으로 [[온조지]]의 수호신이다. 858년 당 유학을 마친 승려 [[엔친|엔친(圓珍)]]이 귀국할 때 배 안에 신라명신이 나타나 [[엔친]]의 호법신이 되어주겠다고 하였고, [[엔친]]은 그 모습을 명신상으로 조각하였다고 한다.<ref>"858년...조각하였다고 한다." : "[http://encykorea.aks.ac.kr/Contents/Index?contents_id=E0073554 신라명신]", <html><online style="color:purple">『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sup>online</sup></online></html>, 한국학중앙연구원.</ref><br/>
그러나 일각에서는 엔친이 당나라에서 유학을 마치고 일본 귀국길에 동해에서 풍랑을 만났는데 장보고대사의 도움으로 목숨을 건졌고, 이후 엔친은 지금의 시가(滋賀)현에 미이데라를 건립한 후 신라 선신당(善神堂)과 신라 명신상을 만들었다. 일본에서는 엔친과 장보고 선단의 인연으로 당시에 만들어 진 신라 명신상이 장보고대사의 생전 모습 그대로 재현했다고 보고 있다. 일본 국보로 지정된 장보고대사의 얼굴 모습은 갑옷 차림이 아니며, 턱이 길고 콧수염과 턱수염이 없는 것이 특징이다. 눈썹은 반달모양에 귀는 큰 편이며 입술은 두텁고 입은 크지 않게 그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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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일각에서는 일본 귀국길에 동해에서 풍랑을 만난 [[엔친]]을 [[장보고]]가 도와주었고, 그 인연으로 [[엔친]]이 [[온조지]]에 [[신라선신당]]을 세우고, [[장보고]]의 생전 모습을 그대로 재현하여 [[신라명신상]]을 만들었다고 보고있다. [[신라명신상]]으로 조각된 [[장보고]]의 얼굴 모습은 갑옷 차림이 아니며, 턱이 길고 콧수염과 턱수염이 없는 것이 특징이다. 눈썹은 반달모양에 귀는 큰 편이며 입술은 두텁고 입은 크지 않게 조각되어 있다.<ref>"일본 귀국길에...조각되어 있다." : 완도신문, "[http://www.wando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193492 장보고대사 얼굴, "한·일·중 어떤 것이 맞나요?"]", 『완도신문』, 작성일: 2013년 05월 01일.</ref>
 
 
 
 
런 점으로 미뤄 온조지 신라명신상은 일단 장보고를 중심으로 한 신라 해상세력이 모셨던 해상신일 가능성이 있지만
 
신라명신상은 노송나무를 조각했으며 높이는 78㎝다. 소설가 최인호는 소설 ‘해신’(海神)에서 이를 두고 장보고라는 의견을 펼친 바 있다. 학계 일각에서도 ‘신라명신=장보고’설이 제기된다.
 
http://news.mk.co.kr/newsRead.php?year=2016&no=775072
 
 
 
온조지 경내에 소재하는 신라선신당(국보)에 신라명신상(국보)을 안치하고 있다. 노송나무를 조각한 신라명신상이며 높이 78센티미터이다.
 
9세기에도 신라의 영향력이 여전히 컸다는 것을 말해 준다.
 
 
 
 
 
 
 
 
 
 
 
 
 
  
 
중국 산둥성 룽청시 스다오진 장보고기념관에 있는 장보고대사 영정은 갑옷차림에 왼손에 칼을 들고 있다. 얼굴 모양과 턱은 일본 명신상과 같이 길다.
 
중국 산둥성 룽청시 스다오진 장보고기념관에 있는 장보고대사 영정은 갑옷차림에 왼손에 칼을 들고 있다. 얼굴 모양과 턱은 일본 명신상과 같이 길다.
 
http://www.wando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193492
 
http://www.wando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1934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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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8월 21일 (월) 15:48 판

장보고 표준영정
한자명칭 張保臯 標準影幀
작가 이종상
제작시기 1979년
소장처 국립현대미술관
유형 표준영정
크기(세로×가로) 116.5 x 91cm


정의

신라의 명장 장보고(張保皐, 미상-846년)의 모습을 그린 국가표준영정.

내용

장보고 표준영정 제작

장보고 표준영정은 1979년 일랑 이종상 화백에 의해 그려진 작품으로, 가로 116.5cm, 세로 91cm의 규모이다. 현재 국립현대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다.

한중일 문화유산에 묘사된 장보고 얼굴

장보고의 얼굴 모습은 한중일마다 다르게 묘사되어 있다.
일본의 경우, 교토 동쪽 시가현에 위치한 온조지(園城寺) 신라선신당(新羅善神堂)에 일본 국보로 지정된 '신라명신상(新羅明神像)'이 안치되어 있다. 신라명신상은 높이 78cm의 노송나무 조각상으로 온조지의 수호신이다. 858년 당 유학을 마친 승려 엔친(圓珍)이 귀국할 때 배 안에 신라명신이 나타나 엔친의 호법신이 되어주겠다고 하였고, 엔친은 그 모습을 명신상으로 조각하였다고 한다.[1]
그러나 일각에서는 일본 귀국길에 동해에서 풍랑을 만난 엔친장보고가 도와주었고, 그 인연으로 엔친온조지신라선신당을 세우고, 장보고의 생전 모습을 그대로 재현하여 신라명신상을 만들었다고 보고있다. 신라명신상으로 조각된 장보고의 얼굴 모습은 갑옷 차림이 아니며, 턱이 길고 콧수염과 턱수염이 없는 것이 특징이다. 눈썹은 반달모양에 귀는 큰 편이며 입술은 두텁고 입은 크지 않게 조각되어 있다.[2]

중국 산둥성 룽청시 스다오진 장보고기념관에 있는 장보고대사 영정은 갑옷차림에 왼손에 칼을 들고 있다. 얼굴 모양과 턱은 일본 명신상과 같이 길다. http://www.wando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193492

표준영정에 묘사된 장보고의 모습

장보고 영정은 갑주와 투구를 착용하고 있는 상반신만 그린 반신상으로, 하단 처리가 근대 사진처럼 그라데이션 처리되어 있다.[6]

지식 관계망

관계정보

항목A 항목B 관계 비고
강감찬 표준영정(1974) 표준영정 A는 B에 해당한다
강감찬 표준영정(1974) 강감찬 A는 B를 묘사하였다
강감찬 표준영정(1974) 낙성대 A는 B에 소장되어 있다
장보고 표준영정 이종상 A는 B에 의해 그려졌다 1979년
강감찬 표준영정(1974) 금광복 A는 B에 의해 모작되었다
강감찬 표준영정(1974) 강감찬 표준영정 도난사건 A는 B와 관련이 있다

시간정보

시간정보 내용
1974년 강감찬 표준영정(1974)표준영정으로 지정되었다.

시각자료

갤러리

주석

  1. "858년...조각하였다고 한다." : "신라명신",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online, 한국학중앙연구원.
  2. "일본 귀국길에...조각되어 있다." : 완도신문, "장보고대사 얼굴, "한·일·중 어떤 것이 맞나요?"", 『완도신문』, 작성일: 2013년 05월 01일.
  3. 배한철, "배한철의 한국초상화 톺아보기 : 日사찰에 모셔진 신라명신상은 해상왕 장보고일까, 『조갑제닷컴』, 2006년 11월 07일.
  4. 배한철, "배한철의 한국초상화 톺아보기 : 日사찰에 모셔진 신라명신상은 해상왕 장보고일까, 『조갑제닷컴』, 2006년 11월 07일.
  5. "석도의 적산에서-최종금", 『유피트레킹여행사』online, (주)유피트레킹.
  6. 이영미, 「한국표준영정연구 -제도의 제정과 변천과정을 중심으로」, 홍익대학교 대학원 석사학위논문, 2015, 106쪽.
  7. 배한철, "배한철의 한국초상화 톺아보기 : 日사찰에 모셔진 신라명신상은 해상왕 장보고일까, 『조갑제닷컴』, 2006년 11월 07일.
  8. 배한철, "배한철의 한국초상화 톺아보기 : 日사찰에 모셔진 신라명신상은 해상왕 장보고일까, 『조갑제닷컴』, 2006년 11월 07일.
  9. "석도의 적산에서-최종금", 『유피트레킹여행사』online, (주)유피트레킹.

참고문헌

  1. 기사
  2. 논문
    • 이영미, 「한국표준영정연구 -제도의 제정과 변천과정을 중심으로」, 홍익대학교 대학원 석사학위논문, 2015년.
  3. 웹 자원

더 읽을거리

  • 전시도록
    • 문화체육부, 『표준영정도록-역사를 빛낸 선현』, 문화체육부, 1993.
    • 문화체육부, 『표준영정도록-역사를 빛낸 선현』, 문화체육부, 1999.
    • 이천시립월전미술관, 『월전의 붓끝, 한국화 100년의 역사』, 이천시립월전미술관, 2012.
  • 단행본
    • 장우성, 『월전회고록-화단풍상칠십년』, 미술문화, 2003.
  • 논문
    • 조인수, 「월전 장우성의 초상화」, 『제2회 월전학술포럼』발표자료집, 월전학술포럼, 2014, 1-12쪽.


임금 어진의 경우, 기사 제목에 어진이라는 명칭을 그대로 반영 고승 진영의 경우, 기사 제목에 진영이라는 명칭을 그대로 반영 공신 초상의 경우, 기사 제목에 도상이라는 명칭을 그대로 반영 현대에 제작된 표준영정의 경우, 기사 제목에 표준영정이라는 명칭을 그대로 반영 기타 사항의 경우, 기사 제목에 초상이라는 명칭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