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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효 진영(고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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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효 진영(고잔지)
김하영, "가을맞이 불교 전시회 ‘풍성’", 『불교신문』online, 작성일: 2010년 10월 15일.
한자명칭 元曉 眞影
작가 미상
제작시기 무로마치 시대
소장처 교토국립박물관
유형 진영
크기(세로×가로) 102.1×52.6cm


정의

신라시대의 고승 원효(617년~ 686)의 모습을 그린 진영이다.

내용

진영의 제작 및 보관

통일신라 시대의 고승 원효의 상은 입적 후 아들인 설총이 소상(塑像)을 만들어 봉안한 뒤로 주로 소상으로 만들어져 각 사찰에 봉안되었다. 이후 고려시대에 들어서 화상이 제작되기 시작했는데, 의천의 건의로 화쟁국사(和諍國師)라는 시호가 추증되면서 활발히 제작되기 시작했다. 1096년 현화사에서는 원효를 비롯한 해동 육도상을 모셨고 이규보의 『소성거사영찬』이라는 글은 머리에 두건을 쓴 거사 모습의 원효 그림을 보고 쓴 것이다. 원효진영은 부안의 원효방, 상주 백련사 등에도 모셔졌음이 고려시대의 기록에 남아있다.[1]
이 <원효 진영>은 일본 교토 고산사(高山寺)에 소장되어 있던 작품으로 현재는 교토국립박물관에 기탁되어 있다. 현존하는 원효 진영 가운데 가장 오래된 작품으로 추정되며 이모본으로 보인다.[2]일본의 화승이 조선에 와서 베껴간 것인지 우리나라의 화가가 그린 것인지 확실치 않지만 초상화의 양식이 일본풍이 아닌 우리나라의 초상 양식을 따르고 있어 원본을 충실하게 이모한 것으로 보인다. 족자 뒤 쪽에는 대승정 유증(宥證)이 1761년 보수했다는 기록이 있다.
교토 고산사의 <원효 진영>은 비록 일본 무로자치 시대의 이모본으로 전해지지만 남아있는 가장 오래된 원효진영으로서 고식의 풍모를 보이며 그 필치나 묘사에서도 도식적인 부분이 적은 뛰어난 작품이다.

진영에 묘사된 모습

<원효 진영>은 우안칠분면가사를 입은 모습의 좌상으로 그려졌다. 두 손은 가지런히 모아서 배꼽 부분에 대고 있으며 신발은 답대 위에 두고 높은 의자 위에서 가부좌를 하고 있다. 의자의 비단보에는 연화원문이 대칭으로 그려졌으며 그 바탕에는 연화문, 당초문이 표현되었다. 장삼가사는 전체적으로 색을 칠하고 가볍게 양감을 주었고 얼굴은 갈색의 선묘로 그려졌다.[3]
원효의 얼굴에는 콧수염과 턱수염, 구레나룻이 표현되어 있고 머리카락도 짧지만 남아있는 모습으로 원효의 세속적인 특징을 강조하고 있다. 이러한 요소는 후대의 원효 진영에도 계속 이어져 나타난다.

지식 관계망

관계정보

항목A 항목B 관계 비고
원효 진영(고잔지) 진영 A는 B에 해당한다 A dcterms:type B
원효 진영(고잔지) 원효 A는 B를 묘사하였다 A ekc:depicts B
원효 진영(고잔지) 교토 고산사 A는 B에 봉안되어 있었다 A ekc:formerLocation B
원효 진영(고잔지) 교토국립박물관 A는 B에 소장되어 있다 A edm:currentLocation B
우안칠분면 원효 진영(고잔지) A는 B와 관련이 있다 A edm:isRelatedTo B
가사 원효 진영(고잔지) A는 B에 나타난다 A ekc:isShownOn B
장삼 원효 진영(고잔지) A는 B에 나타난다 A ekc:isShownOn B

시간정보

시간정보 내용

공간정보

위도 경도 내용
35.060593 135.678517 원효 진영(고잔지)교토 고산사에 소장되어 있다.

시각자료

갤러리

주석

  1. 국립경주박물관, 『원효대사』, 국립경주박물관, 2010, 98쪽.
  2. 유홍준, "국내 첫 공개된 일본 고산사 소장 원효·의상", 『중앙일보』online, 작성일: 2009년 9월 27일.
  3. 김범수, 「교토 고산사소장 원효화상 진영의 현상모사」, 『원불교사상과 종교문화』, 원광대학교 원불교사상연구원, 2011, 270~271쪽.
  4. 김하영, "가을맞이 불교 전시회 ‘풍성’", 『불교신문』online, 작성일: 2010년 10월 15일.

참고문헌

더 읽을거리

  1. 단행본
    • 문명대, 『한국의 불화』, 열화당, 1977.
    • 김형우, 『고승 진영』, 대원사, 19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