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중기록화관 개관

"원삼"의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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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정의'''==
조선시대 대표적인 여성 [[소례복]]의 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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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실의 [[황후]], [[황태자비]], [[왕비]], [[내명부]], [[외명부]]가 국가 행사에 참여할 때 착용하거나 일반 백성들은 [[혼례]]에 착용한 옷이다.<ref>任賢珠, 「朝鮮時代 圓衫의 由來와 變遷過程 硏究」, 경원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011, 8쪽.</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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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내용'''==
===복식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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깃이 서로 마주하는 대금형(對衿形)의 맞깃 혹은 배자깃으로 불리는 깃이 달려있어 앞자락이 겹치지 않는다. 길이는 뒷길이 앞길보다 긴 전단후장(前短後長)이 대부분이며, 바닥까지 이르는 긴 포의 형태이다. 겨드랑이 아래로 길게 트임이 있고 섶과 무가 없다. 두리소매 형태의 넓은 소매가 달렸고, 소매 끝에는 색동과 백색의 한삼(汗衫)을 연결한다. 여밈 방식은 고름이나 매듭단추가 달렸고, 길이가 매우 긴 별도의 [[대|대(帶)]]를 둘러 착용한다. 여성이 착용한 [[단령|단령(團領)]]에서 맞깃형태로 변하였다. 조선 후기에 [[황후]]는 황원삼(黃圓衫), [[왕비]]는 홍원삼(紅圓衫), [[공주]]와 반가 여인들은 녹원삼(綠圓衫)으로 신분에 따라 색을 구별 하였다.  
===착용신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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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실의 [[황후]], [[황태자비]], [[왕비]], [[왕세자빈]], [[왕세손빈]], 내외명부에서 일반 백성까지 착용하였다. 조선 후기에 [[황후]]는 황원삼(黃圓衫), [[왕비]]는 홍원삼(紅圓衫), [[공주]]와 반가 여인들은 녹원삼(綠圓衫)으로 신분에 따라 색을 구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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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16세기 단령형 원삼(여성 단령)은 품이 대체로 넉넉하거나 크게 제작해 남성 [[단령]]은 품이 대부분 50~70cm인 반면, 이 시기의 [[원삼]]은 여자의 옷임에도 불구하고 80~102cm까지 품이 매우 넓은 유물 존재한다. 한삼이 달렸거나 달았던 흔적이 발견되고, 이시기 출토 유물의 절반 가량에 [[흉배]]가 부착되어 있고, [[대대(왕실여성)]]가 역시 함께 출토되었다. 17세기 초중반은 [[단령]] 형태의 [[원삼]](여성 단령)이 [[원삼]]으로 변하는 과정중에 있던 시기로, [[단령]]과 [[원삼]]의 특징을 동시에 지닌 형태가 나타나기도 한다. 소매모양에 변화가 생겨 소매 끝에 색동이 처음 등장했고, 홑옷이며, 깃이 둥근 [[단령]] 깃에서 점점 마주보는 깃으로 변화되었다. [[대(왕실여성)]]가 같이 출토되었고, [[흉배]]가 부착된 형태가 감소하였다.<ref>任賢珠, 「朝鮮時代 圓衫의 由來와 變遷過程 硏究」, 경원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011, 51~99쪽.</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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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세기 후반~19세기 깃 모양이 마주보는 대금형의 [[원삼]] 깃으로 변화하였다. 두 줄 색동과 한삼이 달리고, 밑단이 [[당의]]의 곡선과 같은 형태로 변화면서, 앞이 짧고 뒤가 긴 전단후장(前短後長)이 대부분이다. 19~20세기의 [[원삼]]은 [[왕비의 대례복]]이자 반가 및 서민들의 [[혼례]]에 착용한 복식으로 나뉜다. [[왕세자빈]]이나 [[공주]], [[외명부]]와 같은 높은 신분에서는 녹색 [[원삼]]을 입고 의례에 참석했다. 1897년 [[대한제국]] 선포 후에는 [[왕비]]가 [[황후]]가 되면서 황색 [[원삼]]을 입도록 하고, [[황태자비]]는 홍색 [[원삼]]을 그 이하의 신분에서는 녹색 [[원삼]]을 입도록 하였다. 일반 백성의 혼례용 [[원삼]]은 왕실 복식에 기원을 두고 있지만 금장식이 없이 소매에 색동의 수가 많으며 직선미가 돋보이는 단순한 형태가 되었다. 궁중 [[원삼]]은 앞이 짧고 뒤가 긴 형태로 길이가 매우 긴 특징을 보이며, 민가의 [[원삼]]은 길이가 짧은 편이다.  궁중 [[원삼]]은 소매가 매우 넓고 길며 두 줄의 색동과 한삼이 달리는 반면, 민가의 [[원삼]]은 색동의 수가 정해진 양식이 없이 많이 부착 되었다. [[원삼]]의 옆선과 도련의 형태가 점차 직선형으로 변화 하였다. 겹원삼이 정착, 흑색 원삼만 홑으로 구성 되었다. 민가 원삼의 특징으로 길과는 다른 색의 깃과 고름을 달았다.<ref>任賢珠, 「朝鮮時代 圓衫의 由來와 變遷過程 硏究」, 경원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011, 99~160쪽.</ref>
  
===착용상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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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 관계망'''==
[[황후]], [[황태자비]], [[왕비]], [[왕세자빈]], [[왕세손빈]][[대례복]]으로 착용 하였다. [[사대부]], 서민은 [[혼례복]]으로 착용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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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계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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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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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정보===
깃이 서로 마주하는 대금형(對衿形)의 맞깃 혹은 배자깃으로 불리는 깃이 달려있어 앞자락이 겹치지 않는다. 길이는 뒷길이 앞길보다 긴 전단후장(前短後長)이 대부분이며, 바닥까지 이르는 긴 포의 형태이다. 겨드랑이 아래로 길게 트임이 있고 섶과 무가 없다. 두리소매 형태의 넓은 소매가 달렸고, 소매 끝에는 색동과 백색의 [[한삼|한삼(汗衫)]]을 연결한다. 여밈 방식은 고름이나 매듭단추가 달렸고, 길이가 매우 긴 별도의 [[대|대(帶)]]를 둘러 착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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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정보===
  
===시대별 형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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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각자료'''==
'''15~16세기 단령형 원삼(여성 단령)'''<ref>任賢珠, 「朝鮮時代 圓衫의 由來와 變遷過程 硏究」, 경원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011, 51~85쪽.</ref>
+
===갤러리===
품이 대체로 넉넉하거나 크게 제작해 남성 [[단령]]은 품이 대부분 50~70cm인 반면, 이 시기의 [[원삼]]은 여자의 옷임에도 불구하고 80~102cm까지 품이 매우 넓은 유물 존재한다. 남아 있는 유물에는 소매모양이 직배래의 통수 형태로 한삼이 달렸거나 달았던 흔적이 발견되었는데, 이는 [[한삼]]을 달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이처럼 남성 [[단령]]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특징으로, 이것이 예복이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또한 이시기 출토 유물의 절반 가량에 [[흉배]]가 부착되어 있다. [[대|대대(大帶)]]가 역시 함께 출토되었는데, 도련에 선단이 둘러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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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순흥안씨 단령.jpg|순흥안씨 단령형 원삼<ref>단국대 석주선기념박물관 소장, 『해남윤씨 귤정공파 광주출토 유물』, 74쪽.</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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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순흥안씨 단령.jpg|순흥안씨 단령형 원삼<ref>단국대 석주선기념박물관, 『해남윤씨 귤정공파 광주출토 유물』, 단국대학교 출판부, 2009, 74쪽.</ref>
파일:장기정씨 단령.jpg|장기정씨 단령형 원삼<ref>안동대학교박물관 소장, 『조선시대 여인의 멋과 차림새』, 81쪽.</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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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장기정씨 단령.jpg|장기정씨 단령형 원삼<ref>안동대학교박물관 소장, 『조선시대 여인의 멋과 차림새』, 단국대학교 출판부, 2005, 81쪽.</ref>
파일:무연고 단령.jpg|용인 영덕동 무연고 분묘 단령형 원삼<ref>안동대학교박물관 소장, 『龍仁 靈德洞 遺蹟-용인흥덕 택지개발사업부지내 문화유적 시‧발굴조사보고서』, 427쪽.</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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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동래정씨 원삼.jpg|김확 배위 동래정씨(1567~1631)묘 출토 원삼<ref>경기도박물관 소장, 『김확 합장묘 출토복식』, 경기도박물관, 2007, 336쪽.</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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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세기 초중반의 원삼'''<ref>任賢珠, 「朝鮮時代 圓衫의 由來와 變遷過程 硏究」, 경원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011, 85~99쪽.</ref>
 
117세기 전반은 변화가 많았던 시기이다. [[단령형 원삼]](여성 [[단령]])이 전형적인 원삼으로 변하는 과정중에 있던 시기이며,  단령과 원삼의 특징을 동시에 지닌 형태가 나타나기도 했다. 도련의 모양이 직선에서 곡선으로 바뀌었고, 소매모양에 변화가 생기며 소매 끝에 색동이 처음 등장했다. 앞길에만 [[무]]가 있으며 뒷길은 [[무]]가 없이 안단을 둘러 원삼의 도련과 같은 형태로의 전환이 시작 되었다.또한 홑옷이며, 깃이 교임의 단령 깃에서 점점 둥근 깃의 대금형 깃으로의 변화가 시작 되었다. [[원삼]]의 대와 유사한 [[대]]가 출토되었고, [[흉배]]가 부착된 형태가 감소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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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동래정씨 원삼.jpg|김확 배위 동래정씨(1567~1631)묘 출토 원삼<ref>경기도박물관 소장, 『김확 합장묘 출토복식』, 336쪽.</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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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세기 후반~19세기 초반의 원삼'''<ref>任賢珠, 「朝鮮時代 圓衫의 由來와 變遷過程 硏究」, 경원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011, 99~120쪽.</ref>
 
깃 모양이 대금형의 [[원삼]] 깃으로 변화 하였다. 예외가 있지만 두리소매가 등장하며 두 줄 색동과 [[한삼]]이 달린 형태로 변해가는 추세 였다. 도련선이 당의의 곡선과 같은 형태로 변화 하였고, 전단후장(前短後長, 앞이 짧고 뒤가 긴 형태)의 강화 되었다. 겹으로 만든 [[원삼]]이 등장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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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이단하 원삼.JPG|이단하 부인 원삼<br />중요민속문화재  제4호<ref>『문화재대관-중요민속자료 2』, 125쪽.</ref>
 
파일:이단하 원삼-뒤.JPG|이단하 부인 원삼<br />중요민속문화재  제4호<ref>『문화재대관-중요민속자료 2』, 126쪽.</ref>
 
파일:해평윤씨 원삼.JPG|이형보 배위 해평윤씨 원삼<ref>단국대학교 석주선기념박물관 소장, 『해평윤씨 출토복식』, 34쪽.</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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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0세기 원삼'''<ref>任賢珠, 「朝鮮時代 圓衫의 由來와 變遷過程 硏究」, 경원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011, 121~160쪽.</ref>
 
조선 후기로 가면서 원삼은 궁중 여성의 [[대례복]]이자 반가 및 서민들의 [[혼례복]]으로 형태적인 이분화를 이루며 착용 되었다. [[『가례도감의궤』]]에 의하면 [[왕비]] 원삼은 없고 [[왕세자빈]]과 [[왕세손비]]의 녹색 [[원삼]]이 있으며, 실제로 [[왕자비]]나 [[공주]], [[외명부]]와 같은 높은 신분에서는 녹색 [[원삼]]을 예복으로 입었다. 1897년 대한제국 선포 후에는 [[왕비]]를 [[황후]]로 격상시켜 부르며 황색 [[원삼]]을 입도록 하고, [[황태자비]]는 홍색 원삼을 그 이하의 신분에서는 녹색 원삼을 입도록 하였다. 민가의 혼례용 [[원삼]]은 왕실 복식에 기원을 두고 있으며, 직금과 금박으로 장식한 궁중원삼과 달리, 민가에서는 금장식이 배제되었다. 대신 소매에 색동의 수가 많아지며 직선미가 돋보이는 단순한 형태가 되었다. 궁중 [[원삼]]은 앞이 짧고 뒤가 긴 형태로 길이가 매우 긴 특징을 보이며, 민가의 [[원삼]]은 길이가 짧은 편이다.  궁중 [[원삼]]은 소매가 매우 넓고 길며 두 줄의 색동과 한삼이 달리는 반면, 민가의 [[원삼]]은 색동의 수가 정해진 양식이 없이 많이 부착 되었다.
 
[[원삼]]의 옆선과 도련의 형태가 점차 직선형으로 변화 하였다. 겹원삼이 정착, 흑색 원삼만 홑으로 구성 되었다. 민가 원삼의 특징으로 길과는 다른 색의 깃과 고름을 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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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이단하 원삼.JPG|이단하 부인 원삼<br />중요민속문화재  제4호<ref>문화재청, 『문화재대관-중요민속자료 2』, 문화재청, 2006, 125쪽.</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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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이단하 원삼-뒤.JPG|이단하 부인 원삼<br />중요민속문화재  제4호<ref>문화재청, 『문화재대관-중요민속자료 2』, 문화재청, 2006, 126쪽.</ref>
 
파일:동궁비 원삼.JPG|동궁비 홍원삼(앞면)<br />중요민속문화재  제48호<ref>세종대학교박물관 소장, [http://www.cha.go.kr/korea/heritage/search/Culresult_Db_View.jsp?mc=NS_04_03_01&VdkVgwKey=18,00480000,11 문화재청)</ref>
 
파일:동궁비 원삼.JPG|동궁비 홍원삼(앞면)<br />중요민속문화재  제48호<ref>세종대학교박물관 소장, [http://www.cha.go.kr/korea/heritage/search/Culresult_Db_View.jsp?mc=NS_04_03_01&VdkVgwKey=18,00480000,11 문화재청)</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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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동궁비 원삼-뒤.JPG|동궁비 홍원삼(뒷면)<br />중요민속문화재  제48호<ref>세종대학교박물관 소장, [http://www.cha.go.kr/korea/heritage/search/Culresult_Db_View.jsp?mc=NS_04_03_01&VdkVgwKey=18,00480000,11 문화재청)</ref>
 
파일:전 황후 황원삼.JPG|전 황후 황원삼(앞면)<br />중요민속문화재  제49호<ref>세종대학교박물관 소장, [http://www.cha.go.kr/korea/heritage/search/Culresult_Db_View.jsp?mc=NS_04_03_01&VdkVgwKey=18,00490000,11 문화재청)</ref>
 
파일:전 황후 황원삼.JPG|전 황후 황원삼(앞면)<br />중요민속문화재  제49호<ref>세종대학교박물관 소장, [http://www.cha.go.kr/korea/heritage/search/Culresult_Db_View.jsp?mc=NS_04_03_01&VdkVgwKey=18,00490000,11 문화재청)</ref>
 
파일:전 황후 황원삼-뒤.JPG|전 황후 황원삼(뒷면)<br />중요민속문화재  제49호<ref>세종대학교박물관 소장, [http://www.cha.go.kr/korea/heritage/search/Culresult_Db_View.jsp?mc=NS_04_03_01&VdkVgwKey=18,00490000,11 문화재청)</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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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서민 원삼.JPG|서민이 혼례시 착용한 원삼(조선)<ref>국립민속박물관(http://www.nfm.go.kr/) 소장.</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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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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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상===
'''유래'''
 
여성이 착용한 [[단령|단령(團領)]]에서 맞깃형태로 변하였다.
 
  
=='''관련항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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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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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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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용 및 참조===
 
* [[눌재집|『눌재집(訥齋集)』]]
 
* [[눌재집|『눌재집(訥齋集)』]]
 
* [[미암집|『미암집(眉巖集)』]]
 
* [[미암집|『미암집(眉巖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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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周錫保, 『中國古代服飾史』, 中國戲劇出版社, 1991.
 
* 周錫保, 『中國古代服飾史』, 中國戲劇出版社, 1991.
  
=='''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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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읽을거리===
<referenc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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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용한 정보===
  
 
[[분류:궁중기록화]] [[분류:복식]]
 
[[분류:궁중기록화]] [[분류:복식]]

2017년 9월 12일 (화) 18:36 판


원삼
(圓衫)
이단하 원삼.JPG
대표명칭 원삼
한자표기 圓衫
이칭별칭 단삼(團衫), 대의(大衣)
구분 의복
착용신분 왕실, 궁중, 평민
착용성별 여성



정의

왕실의 황후, 황태자비, 왕비, 내명부, 외명부가 국가 행사에 참여할 때 착용하거나 일반 백성들은 혼례에 착용한 옷이다.[1]


내용

깃이 서로 마주하는 대금형(對衿形)의 맞깃 혹은 배자깃으로 불리는 깃이 달려있어 앞자락이 겹치지 않는다. 길이는 뒷길이 앞길보다 긴 전단후장(前短後長)이 대부분이며, 바닥까지 이르는 긴 포의 형태이다. 겨드랑이 아래로 길게 트임이 있고 섶과 무가 없다. 두리소매 형태의 넓은 소매가 달렸고, 소매 끝에는 색동과 백색의 한삼(汗衫)을 연결한다. 여밈 방식은 고름이나 매듭단추가 달렸고, 길이가 매우 긴 별도의 대(帶)를 둘러 착용한다. 여성이 착용한 단령(團領)에서 맞깃형태로 변하였다. 조선 후기에 황후는 황원삼(黃圓衫), 왕비는 홍원삼(紅圓衫), 공주와 반가 여인들은 녹원삼(綠圓衫)으로 신분에 따라 색을 구별 하였다.

15~16세기 단령형 원삼(여성 단령)은 품이 대체로 넉넉하거나 크게 제작해 남성 단령은 품이 대부분 50~70cm인 반면, 이 시기의 원삼은 여자의 옷임에도 불구하고 80~102cm까지 품이 매우 넓은 유물 존재한다. 한삼이 달렸거나 달았던 흔적이 발견되고, 이시기 출토 유물의 절반 가량에 흉배가 부착되어 있고, 대대(왕실여성)가 역시 함께 출토되었다. 17세기 초중반은 단령 형태의 원삼(여성 단령)이 원삼으로 변하는 과정중에 있던 시기로, 단령원삼의 특징을 동시에 지닌 형태가 나타나기도 한다. 소매모양에 변화가 생겨 소매 끝에 색동이 처음 등장했고, 홑옷이며, 깃이 둥근 단령 깃에서 점점 마주보는 깃으로 변화되었다. 대(왕실여성)가 같이 출토되었고, 흉배가 부착된 형태가 감소하였다.[2]

17세기 후반~19세기 깃 모양이 마주보는 대금형의 원삼 깃으로 변화하였다. 두 줄 색동과 한삼이 달리고, 밑단이 당의의 곡선과 같은 형태로 변화면서, 앞이 짧고 뒤가 긴 전단후장(前短後長)이 대부분이다. 19~20세기의 원삼왕비의 대례복이자 반가 및 서민들의 혼례에 착용한 복식으로 나뉜다. 왕세자빈이나 공주, 외명부와 같은 높은 신분에서는 녹색 원삼을 입고 의례에 참석했다. 1897년 대한제국 선포 후에는 왕비황후가 되면서 황색 원삼을 입도록 하고, 황태자비는 홍색 원삼을 그 이하의 신분에서는 녹색 원삼을 입도록 하였다. 일반 백성의 혼례용 원삼은 왕실 복식에 기원을 두고 있지만 금장식이 없이 소매에 색동의 수가 많으며 직선미가 돋보이는 단순한 형태가 되었다. 궁중 원삼은 앞이 짧고 뒤가 긴 형태로 길이가 매우 긴 특징을 보이며, 민가의 원삼은 길이가 짧은 편이다. 궁중 원삼은 소매가 매우 넓고 길며 두 줄의 색동과 한삼이 달리는 반면, 민가의 원삼은 색동의 수가 정해진 양식이 없이 많이 부착 되었다. 원삼의 옆선과 도련의 형태가 점차 직선형으로 변화 하였다. 겹원삼이 정착, 흑색 원삼만 홑으로 구성 되었다. 민가 원삼의 특징으로 길과는 다른 색의 깃과 고름을 달았다.[3]

지식 관계망

관계정보

항목A 항목B 관계 비고
황후 원삼 A는 B를 착용하였다 A ekc:wears B
황태자비 원삼 A는 B를 착용하였다 A ekc:wears B
왕비 원삼 A는 B를 착용하였다 A ekc:wears B
왕세자비 원삼 A는 B를 착용하였다 A ekc:wears B
내명부 원삼 A는 B를 착용하였다 A ekc:wears B
외명부 원삼 A는 B를 착용하였다 A ekc:wears B
일반 백성 원삼 A는 B를 착용하였다 A ekc:wears B
원삼 어여머리 A는 B와 같이 착용하였다 A ekc:goesWith B

시간정보

공간정보

시각자료

갤러리

영상

주석

  1. 任賢珠, 「朝鮮時代 圓衫의 由來와 變遷過程 硏究」, 경원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011, 8쪽.
  2. 任賢珠, 「朝鮮時代 圓衫의 由來와 變遷過程 硏究」, 경원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011, 51~99쪽.
  3. 任賢珠, 「朝鮮時代 圓衫의 由來와 變遷過程 硏究」, 경원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011, 99~160쪽.
  4. 단국대 석주선기념박물관, 『해남윤씨 귤정공파 광주출토 유물』, 단국대학교 출판부, 2009, 74쪽.
  5. 안동대학교박물관 소장, 『조선시대 여인의 멋과 차림새』, 단국대학교 출판부, 2005, 81쪽.
  6. 경기도박물관 소장, 『김확 합장묘 출토복식』, 경기도박물관, 2007, 336쪽.
  7. 문화재청, 『문화재대관-중요민속자료 2』, 문화재청, 2006, 125쪽.
  8. 문화재청, 『문화재대관-중요민속자료 2』, 문화재청, 2006, 126쪽.
  9. 세종대학교박물관 소장, [http://www.cha.go.kr/korea/heritage/search/Culresult_Db_View.jsp?mc=NS_04_03_01&VdkVgwKey=18,00480000,11 문화재청)
  10. 세종대학교박물관 소장, [http://www.cha.go.kr/korea/heritage/search/Culresult_Db_View.jsp?mc=NS_04_03_01&VdkVgwKey=18,00480000,11 문화재청)
  11. 세종대학교박물관 소장, [http://www.cha.go.kr/korea/heritage/search/Culresult_Db_View.jsp?mc=NS_04_03_01&VdkVgwKey=18,00490000,11 문화재청)
  12. 세종대학교박물관 소장, [http://www.cha.go.kr/korea/heritage/search/Culresult_Db_View.jsp?mc=NS_04_03_01&VdkVgwKey=18,00490000,11 문화재청)
  13. 국립민속박물관(http://www.nfm.go.kr/) 소장.

참고문헌

인용 및 참조

  • 『눌재집(訥齋集)』
  • 『미암집(眉巖集)』
  • 『사례편람(四禮便覽)』
  • 『상변통고(常變通攷)』
  • 朴東媛, 「圓衫에 관한 연구」, 이화여자대학교 석사학위논문, 1976.
  • 송미경, 「조선시대 여성 단령(團領)에 관한 연구-출토복식을 중심으로-」, 『服飾』, 52권 8호, 한국복식학회, 2002.
  • 李眞英, 「金仁淑 韓國 圓衫의 由來 糾明을 위한 形態的 考察」, 『服飾』, 18권, 한국복식학회, 1992.
  • 이태옥, 김혜영, 조우현 「안동김씨묘 출토 조선후기 원삼의 특징」, 『한국의상디자인학회지』, 7권 2호, 한국의상디자인학회, 2005.
  • 任賢珠, 「朝鮮時代 圓衫의 由來와 變遷過程 硏究」, 경원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011.
  • 전정희, 박현정, 「靑色 圓衫에 관한 연구」, 한복문화학회, 한복문화 제2권, 1999.
  • 周錫保, 『中國古代服飾史』, 中國戲劇出版社, 1991.

더 읽을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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