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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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섭 (토론 | 기여) 사용자의 2017년 8월 7일 (월) 00:51 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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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서
(韻書)
대표명칭 운서
한자표기 韻書
유형 개념용어
관련개념 운학(韻學)



정의

한시(漢詩)를 지을시, 서로 압운(押韻: 일종의 rhyme) 할 수 있는 한자들을 기준으로 삼아, 분류하여 적어놓은 발음사전이다.

내용

운학(韻學)에서 운서으로

본래 운서는 중국의 한자 발음에 대한 연구를 써놓은 서책으로, 중국의 운학(韻學)에 대해서 간단하게 살펴볼 필요가 있다. 중국의 운학이 발달하기 시작한 것은 6세기 중반으로 중국의 남북조시대인데, 주로 남조에서 많이 이루어졌다. 예로부터 중국에서는 자음(字音)을 성모(聲母)와 운모(韻母)로 나누어서 고찰하는 방법이 발달하였으며, 남조사람들은 음율에 민감하여 인도음운학의 영향을 받아 자음의 사성(四聲)을 구분하게 되었다. 이런 연구 결과들을, 한자들의 운별(韻別)로 분류하여 서책에 정리하였고, 이런 종류의 서책들을 운서라 불리게 된 것이다. [1]

중국에서 편찬된운서

중국에서 등장한 운서 중 제일 먼저 등장한 것은『절운(切韻)』으로 수나라 시기 601년에 편찬되었다. 그 후 400년 후『광운(廣韻)』이 북송시기 1008년에 편찬되었으며, 그 뒤를 이어 『예부운략(禮部韻略)』이 1037년에 편찬되었다. 그리고 남송에서 원시기에는『임자신간예부운략(壬子新刊禮部韻略)』(1252), 『고금운회(古今韻會)』(1292·1297년에 古今韻會擧要로 개편), 『중원음운(中原音韻)』(1324), 등 3 책이 완성되었다. 명나라 시기에는 『홍무정운(洪武正韻)』(1375) 이 만들어졌다. [2]

중국에서 한반도로 넘어간 운서

옛날부터 우리나라는 중국과 빈번하게 접촉을 하였음으로 운서가 한반도로 넘어갔다는 것은 당연한 사실이나 정확한 시간은 현재까지도 밝혀내지 못하고 있다. 한가지 확실한 사실은 고려 중기부터 한시와 한문이 일반적인 문인들의 학문적 소양이었으니, 운서의 위상도 매우 높아지게 되었다. 이 당시 들어온 운서는 북송시기 널리 알려진 예부운략이다. 고려시대 이후에 전해진 운서는 평수본(平水本) 이라는 금나라 왕문욱(王文郁)의 『평수신간운략(平水新刊韻略)』(1229년 편찬)이 있다. [3]

한국의 독자적인 운서 서적

운서은 본래 목적이 중국의 발음을 표기하는 것임으로, 기본적으로 한국의 음성과는 다르다. 그 뿐만 아니라 전래된 운서의 발음 또한 한국 국어의 어음(語音)으로 동화가 되어서 중국의 본토 운음과 달라질 수 밖에 없었다. 그리하여 우리나라는 조선초기에 들어서면서 우리 한자음에 부합할 수 있는 운서을 제작하기에 이른다. 그 결과 만들어진 운서는 바로 동국정운이다. 동국정운의 큰 특징은 훈민정음이라는 표음문자로 한자음을 표시한 운서라는 것이다. 동국정운 이후로 만들어진 운서는, 1455년(단종 3)에 편찬된 홍무정운역훈이 있으며 1517년에는 사성통해라는 운서가 편찬되었다. 1747년에는 박성원화동정음통석운고(華東正音通釋韻考) 저술하였으며, 1751년 정약용규장전운(奎章全韻)을 편찬하였다. [4]

지식 관계망

관계정보

시간정보

공간정보

시각자료

갤러리

주석

  1. 운학 민족백과
  2. 운서 민족백과
  3. 운서 민족백과
  4. 운서 민족백과

참고문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