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산비명"의 두 판 사이의 차이

Encyves Wiki
이동: 둘러보기, 검색
(새 문서: {{문헌정보 |사진= |사진출처= |대표명칭= 사산비명 |한자표기= 四山碑銘 |영문명칭= |이칭= |유형= 비문 |저자= 최치원(崔致遠) |역...)
 
32번째 줄: 32번째 줄:
  
 
=='''내용'''==
 
=='''내용'''==
네 편의 비문은 ① 충청남도 보령시 성주면 성주리 성주사 터에 있는 숭엄산성주사대낭혜화상백월보광탑비명(崇嚴山聖住寺大朗慧和尙白月葆光塔碑銘: 국보 제8호), ② 경상남도 하동군 화개면 운수리 쌍계사 경내에 있는 지리산쌍계사진감선사대공령탑비명(智異山雙溪寺眞鑑禪師大空靈碑銘: 국보 제47호), ③ 경상북도 경주시 외동면 말방리 대숭복사에 있었던 초월산대숭복사비명(初月山大崇福寺碑銘), ④ 경상북도 문경시 가은면 원북리 봉암사 경내에 있는 희양산봉암사지증대사적조탑비명(曦陽山鳳巖寺智證大師寂照塔碑銘: 보물 제138호)가리키며, 위의 네 군데 산 이름을 취하여 일반적으로 ‘사산비명’이라 일컫는다.
+
네 편의 비문은 각각 [[보령 성주사지|보령 성주사지(保寧 聖住寺址)]]에 있는 [[보령 성주사지 낭혜화상탑비|낭혜화상탑비(朗慧和尙塔碑)]]의 비문, [[하덩 쌍계사|하동 쌍계사(河東 雙磎寺)]] 경내에 있는 [[하동 쌍계사 진감선사탑비|진감선사탑비(眞鑑禪師塔碑)]]의 비문, 경주 초월산에 위치한 [[경주 숭복사지|숭복사지(嵩福寺址)]]에 있던 [[경주 숭복사지 대숭복사비|대숭복사비(大嵩福寺碑)]]의 비문, [[문경 봉암사| 문경 봉암사(聞慶 鳳巖寺)]] 경내에 있는 [[문경 봉암사 지증대사탑비|지증대사탑비(智證大師塔碑)]]의 비문을 가리키며, 위의 네 군데 산 이름을 취하여 일반적으로 ‘사산비명(四山碑銘)’이라 일컫는다.<ref>이도학, "[http://encykorea.aks.ac.kr/Contents/Index?contents_id=E0025685 사산비명]", <html><online style="color:purple">『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sup>online</sup></online></html>, 한국학중앙연구원.</ref>
  
네 비 모두 왕명에 의해 찬술되었으며, [[최치원]]이 당나라에서 귀국한 뒤로부터 은거하기 이전에 걸쳐 찬술되었다. 현재 대숭복사비를 제외한 세 비가 비교적 양호한 상태로 보전되어 있으며, 임진왜란 때 절과 함께 파괴된 것으로 알려진 대숭복사비는 1931년 이후 그 잔편(殘片)이 몇 차례 발굴되었다.
+
네 비 모두 왕명에 의해 찬술되었으며, [[최치원]]이 당나라에서 귀국한 뒤로부터 은거하기 이전에 걸쳐 찬술되었다. 현재 [[경주 숭복사지 대숭복사비|대숭복사비]]를 제외한 세 비가 비교적 양호한 상태로 보전되어 있으며, [[임진왜란]] 때 절과 함께 파괴된 것으로 알려진 [[경주 숭복사지 대숭복사비|대숭복사비]]는 1931년 이후 그 잔편(殘片)이 몇 차례 발굴되었다.
진감선사비와 대숭복사비는 최치원이 직접 글씨까지 썼으며, 대낭혜화상비는 화상의 종제(從弟)인 최인연(崔仁渷, 뒤에 崔彦撝로 개명)이, 지증대사비는 분황사(芬皇寺) 승려 혜강(慧江)이 썼다. 『사산비명』은 우리나라 금석문의 신기원을 여는 웅문거편(雄文巨篇)으로서, 화려한 수사(修辭)에다 함축미와 전아(典雅)함을 잘 갖추고 있다.[민백]
+
[[하동 쌍계사 진감선사탑비|진감선사탑비]]와 [[경주 숭복사지 대숭복사비|대숭복사비]]는 [[최치원]]이 직접 글씨까지 썼으며, [[보령 성주사지 낭혜화상탑비|낭혜화상탑비]]는 [[최언위|최언위(崔彦撝)]]가, [[문경 봉암사 지증대사탑비|지증대사탑비]]는 [[경주 분황사|분황사(芬皇寺)]] 승려 [[혜강|혜강(慧江)]]이 썼다.<ref>이도학, "[http://encykorea.aks.ac.kr/Contents/Index?contents_id=E0025685 사산비명]", <html><online style="color:purple">『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sup>online</sup></online></html>, 한국학중앙연구원.</ref>
 +
 
 +
네 편의 비문 모두 사륙변려문(四六騈儷文)이라는 문체로 기록되어 있어서 읽기 어렵다. 내용이 쉽지 않아 예로부터 많은 해설서가 나왔는데, [[조선 광해군|광해군]] 때 철면노인(鐵面老人)이 『사산비명』이란 이름으로 낸 주석서는 현존하는 최고의 해설서이자 가장 정확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ref>"[https://www.doopedia.co.kr/doopedia/master/master.do?_method=view&MAS_IDX=101013000870991 사산비명]", <html><online style="color:purple">『두산백과』<sup>online</sup></online></html>.</ref>
  
4개의 비문 모두 사륙변려문(四六騈儷文)이라는 문체로 기록되어 있어서 읽기 어렵다. 내용이 쉽지 않아 예로부터 많은 해설서가 나왔는데, 광해군 때 철면노인(鐵面老人)이 『사산비명』이란 이름으로 낸 주석서는 현존하는 최고의 해설서이자 가장 정확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두산]
 
 
=='''지식관계망'''==
 
=='''지식관계망'''==
 
 
 
===관련항목===
 
===관련항목===
 
{|class="wikitable sortable" style="background:white; text-align: center; width:100%;"
 
{|class="wikitable sortable" style="background:white; text-align: center; width:100%;"
47번째 줄: 46번째 줄:
 
|}
 
|}
  
=='''시각자료'''==
 
 
===가상현실===
 
 
===갤러리===
 
 
===영상===
 
  
 
=='''주석'''==
 
=='''주석'''==
59번째 줄: 51번째 줄:
  
 
=='''참고문헌'''==
 
=='''참고문헌'''==
 +
* 이도학, "[http://encykorea.aks.ac.kr/Contents/Index?contents_id=E0025685 사산비명]", <html><online style="color:purple">『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sup>online</sup></online></html>, 한국학중앙연구원.
 +
* "[https://www.doopedia.co.kr/doopedia/master/master.do?_method=view&MAS_IDX=101013000870991 사산비명]", <html><online style="color:purple">『두산백과』<sup>online</sup></online></html>.
  
 
+
[[분류:불교 사찰의 승탑비문]] [[분류:승탑/검토요청!]]
[[분류:불교 사찰의 승탑비문]]
 

2017년 10월 16일 (월) 15:24 판

사산비명(四山碑銘)
대표명칭 사산비명
한자표기 四山碑銘
유형 비문
저자 최치원(崔致遠)
편자 최치원(崔致遠)
시대 통일신라



정의

통일신라 말에 최치원(崔致遠, 857-?)이 지은 비문 중, 가치가 높은 4개의 비문을 뽑아 엮어 만든 책.

내용

네 편의 비문은 각각 보령 성주사지(保寧 聖住寺址)에 있는 낭혜화상탑비(朗慧和尙塔碑)의 비문, 하동 쌍계사(河東 雙磎寺) 경내에 있는 진감선사탑비(眞鑑禪師塔碑)의 비문, 경주 초월산에 위치한 숭복사지(嵩福寺址)에 있던 대숭복사비(大嵩福寺碑)의 비문, 문경 봉암사(聞慶 鳳巖寺) 경내에 있는 지증대사탑비(智證大師塔碑)의 비문을 가리키며, 위의 네 군데 산 이름을 취하여 일반적으로 ‘사산비명(四山碑銘)’이라 일컫는다.[1]

네 비 모두 왕명에 의해 찬술되었으며, 최치원이 당나라에서 귀국한 뒤로부터 은거하기 이전에 걸쳐 찬술되었다. 현재 대숭복사비를 제외한 세 비가 비교적 양호한 상태로 보전되어 있으며, 임진왜란 때 절과 함께 파괴된 것으로 알려진 대숭복사비는 1931년 이후 그 잔편(殘片)이 몇 차례 발굴되었다. 진감선사탑비대숭복사비최치원이 직접 글씨까지 썼으며, 낭혜화상탑비최언위(崔彦撝)가, 지증대사탑비분황사(芬皇寺) 승려 혜강(慧江)이 썼다.[2]

네 편의 비문 모두 사륙변려문(四六騈儷文)이라는 문체로 기록되어 있어서 읽기 어렵다. 내용이 쉽지 않아 예로부터 많은 해설서가 나왔는데, 광해군 때 철면노인(鐵面老人)이 『사산비명』이란 이름으로 낸 주석서는 현존하는 최고의 해설서이자 가장 정확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3]

지식관계망

관련항목

항목A 항목B 관계 비고


주석

  1. 이도학, "사산비명",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online, 한국학중앙연구원.
  2. 이도학, "사산비명",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online, 한국학중앙연구원.
  3. "사산비명", 『두산백과』online.

참고문헌

  • 이도학, "사산비명",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online, 한국학중앙연구원.
  • "사산비명", 『두산백과』onlin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