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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방광원각수다라요의경』은 풀이하면 ′크고, 방정하고 광대한 원각(圓覺)을 설명함이 모든 불타다라 중에서 으뜸이 되는 경′이라는 뜻이다. 줄여서 『원각경』, 『대방광원각경』, 『원각수다라요의경』, 『원각요의경』이라고도 한다. <ref>[https://www.museum.go.kr/site/main/relic/search/view?relicId=2443 국립중앙박물관 : 원각경]</ref>
 
『대방광원각수다라요의경』은 풀이하면 ′크고, 방정하고 광대한 원각(圓覺)을 설명함이 모든 불타다라 중에서 으뜸이 되는 경′이라는 뜻이다. 줄여서 『원각경』, 『대방광원각경』, 『원각수다라요의경』, 『원각요의경』이라고도 한다. <ref>[https://www.museum.go.kr/site/main/relic/search/view?relicId=2443 국립중앙박물관 : 원각경]</ref>
 
『대방광원각수다라요의경』이 한반도로 전해진 정확한 시기는 알 수 없지만 신라시대 승려인 혜거(惠居)가 『대방광원각수다라요의경』을 강의했다는 내용이 그의 전기에 실려 있는 것으로 보아 신라시대에는 이미 전해져왔던 것으로 보인다. 그 후 고려시대부터 본격적으로 간행이 시작되었다. 조선조에는 억불정책으로 불경이 간행되지 않았다가 [[세조]] 연간(1455~1468) 간경도감의 설치를 기점으로 조선 후기까지 꾸준히 간행되었다.  
 
『대방광원각수다라요의경』이 한반도로 전해진 정확한 시기는 알 수 없지만 신라시대 승려인 혜거(惠居)가 『대방광원각수다라요의경』을 강의했다는 내용이 그의 전기에 실려 있는 것으로 보아 신라시대에는 이미 전해져왔던 것으로 보인다. 그 후 고려시대부터 본격적으로 간행이 시작되었다. 조선조에는 억불정책으로 불경이 간행되지 않았다가 [[세조]] 연간(1455~1468) 간경도감의 설치를 기점으로 조선 후기까지 꾸준히 간행되었다.  
현재 남아있는 『대방광원각수다라요의경』은 크게 네 가지 계통으로 나눌 수 있는데  1462년 [[교정도감]] 번각본, 1464년 함허특봉 주석본 및 번각본, 1465년 『대방광원각수다라요의경』 언해본 및 번각본으로 나눌 수 있다. 이 자료는 세조 11년 [[원각사]]를 준공하면서 10층 석탑의 1층에 봉인하기 위해 간행한 것이다.<ref>김미경, 『『圓覺經』 版本의 系統과 書誌的 特徵에 관한 硏究』, 한성대학교, 2010</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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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남아있는 『대방광원각수다라요의경』은 크게 네 가지 계통으로 나눌 수 있는데  1462년 [[교정도감]] 번각본, 1464년 함허특봉 주석본 및 번각본, 1465년 『대방광원각수다라요의경』 언해본 및 번각본으로 나눌 수 있다. 이 자료는 1465년 [[원각사]]를 준공하면서 10층 석탑의 1층에 봉인하기 위해 간행한 것이다.<ref>김미경, 『『圓覺經』 版本의 系統과 書誌的 特徵에 관한 硏究』, 한성대학교, 2010</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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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4월 1일 (토) 20:08 판

대방광원각수다라요의경
한자명칭 大方廣圓覺修多羅了義經
영문명칭 Sutra of Perfect Enlightenment
간행시기 1465년(세조11)경
소장처 장서각
청구기호 C4-139A
문화재지정사항 보물 제1514호
유형 고서
크기(세로×가로) 27.3×18.2㎝
판본 금속활자본(을유자)
수량 1책
표기문자 한자, 한글



정의

당나라 불타다라(佛陀多羅)가 한역(漢譯)하고 종밀宗密이 풀이한 원각묘심(圓覺妙心)의 수행 방법을 설명한 불교 경전이다.

내용

당나라 불타다라(佛陀多羅)가 한역(漢譯)하고 종밀宗密이 풀이한 원각묘심(圓覺妙心)의 수행 방법을 설명한 불교 경전이다. 대방광원각경, 원각 수다라요의경, 원각요의경, 원각경, 요의경 등으로 불리기도 한다. 고려 우왕 대에 원각경이 간행되었으나, 본 경전은 1465년(세조 11) 원각사를 준공한 시점에 간행된 것이다. 이 경전은 고려 시대부터 널리 유통되었는데, 특히 장서각 소장본은 간경도감의 국역본을 저본으로 삼아 경문과 주석의 한글 구결 부분만 편집해 인출한 금속활자본이다. 여기 사용된 활자는 을유년(1465)에 주조한 을유자(乙酉字)로, 이 활자는 불경을 간행할 목적으로 주조되었다. 조선이 불교 억제책을 시행했으므로 을유자는 더 이상 사용되지 못하였다. 이후 갑진자(甲辰字)를 주조할 당시 을유자를 녹여 재사용했다고 한다. 이로 인해 을유자로 간행된 자료가 희귀한 실정이며, 장서각 소장본은 국어학 및 서지학 연구에 있어 중요한 자료적 가치를 지닌다.[1]


부연설명

『대방광원각수다라요의경』은 풀이하면 ′크고, 방정하고 광대한 원각(圓覺)을 설명함이 모든 불타다라 중에서 으뜸이 되는 경′이라는 뜻이다. 줄여서 『원각경』, 『대방광원각경』, 『원각수다라요의경』, 『원각요의경』이라고도 한다. [2] 『대방광원각수다라요의경』이 한반도로 전해진 정확한 시기는 알 수 없지만 신라시대 승려인 혜거(惠居)가 『대방광원각수다라요의경』을 강의했다는 내용이 그의 전기에 실려 있는 것으로 보아 신라시대에는 이미 전해져왔던 것으로 보인다. 그 후 고려시대부터 본격적으로 간행이 시작되었다. 조선조에는 억불정책으로 불경이 간행되지 않았다가 세조 연간(1455~1468) 간경도감의 설치를 기점으로 조선 후기까지 꾸준히 간행되었다. 현재 남아있는 『대방광원각수다라요의경』은 크게 네 가지 계통으로 나눌 수 있는데 1462년 교정도감 번각본, 1464년 함허특봉 주석본 및 번각본, 1465년 『대방광원각수다라요의경』 언해본 및 번각본으로 나눌 수 있다. 이 자료는 1465년 원각사를 준공하면서 10층 석탑의 1층에 봉인하기 위해 간행한 것이다.[3]


관련항목

항목A 항목B 관계 비고
불타다라 대방광원각수다라요의경 언해 A는 B를 저술했다
종밀 대방광원각수다라요의경 언해 A는 B를 저술했다
대방광원각수다라요의경 언해 을유자 A는 B를 사용했다
세조 대방광원각수다라요의경 언해 A는 B의 편찬을 명했다
대방광원각수다라요의경 언해 원각사 A는 B에 포함된다
간경도감 대방광원각수다라요의경 언해 A는 B를 저술했다

시간정보

시간 내용
1465년 세조의 명으로 대방광원각수다라요의경 언해이 간행되었다

공간정보

위도 경도 내용
127.054364 37.392258 대방광원각수다라요의경 언해은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에 소장되어있다.

참고문헌

주석

  1.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한글 - 소통과 배려의 문자』, 한국학중앙연구원 출판부, 2016.06.28, 35쪽. 해설문 속의 각종 링크 정보는 기록유산스토리사업팀에서 추가.
  2. 국립중앙박물관 : 원각경
  3. 김미경, 『『圓覺經』 版本의 系統과 書誌的 特徵에 관한 硏究』, 한성대학교, 20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