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김정호의 대동여지도"의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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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의 배경지식은 어차피 데이터관계망이나 하이퍼 링크로 다 들어가므로. 배경지식보다는 작품 자체! 에 초점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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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1년(철종 12) 고산자(古山子)김정호(金正浩)가 편찬·간행하고 1864년(고종 1)에 재간한 분첩절철식(粉帖折疊式)의 전국 지도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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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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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물 제850-1호. 일반적으로 호칭되는 목판본의『대동여지도』22첩(帖)은 조선 후기의 지리학자 김정호가 1861년에 편찬·간행하고 1864년에 재간한 22첩의 병풍식(또는 절첩식) 전국 지도첩이다. 최근 김정호의 지도 중 이름이 같으면서 내용이 다른 지도첩이 새롭게 조사되었다.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된 필사본의『동여(東輿)』 14첩은 1층에 큰 글씨로 ‘대동여지도(大東輿地圖)’라고 쓰여 있고, 국립중앙도서관에는 필사본의『대동여지도』 18첩이 남아 있기도 하다. 따라서 앞으로는『대동여지도』라는 이름 앞에 ‘목판본 22첩’, ‘필사본 14첩’, ‘필사본 18첩’이란 수식어를 붙여 구분해 주어야 하는 필요성이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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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1년에 간행된 것은 성신여자대학교 박물관과 서울역사박물관의 2본이 각기 보물 850-1호와 보물 850-2호로, 1864년에 간행된 것은 규장각 한국학연구원의 1본이 보물 850-3호로 지정되어 있다. 판목이 숭실대학교 박물관에 1매, 국립중앙박물관에 11매가 남아 있어 일제강점기 이후 이야기되었던 판목소각설은 잘못된 것임이 드러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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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판본『대동여지도』 22첩은 우리나라 전체를 남북 120리 22층으로 나누고 동서 80리 간격으로 19판(版)으로 각 층에 해당하는 지역의 지도를 각각 1권의 책으로 접어서 엮었다. 1첩 한 면의 남북 길이가 약 30㎝이기 때문에 22첩을 모두 연결하면 세로 약 6.6m, 가로 4.0m에 이르는 초대형 조선전도가 된다. 크기 때문에 휴대와 열람에 어려운 단점을 극복하기 위해 전국을 동서와 남북 각각 80리와 120리의 동일 간격으로 나누어 최북단의 1층부터 최남단의 22층까지 22첩으로 분리하여 수록하여 병풍처럼 접고 펼 수 있게 한 것이다. 책으로 제본된 이전 시기의 지도와는 달리 첩을 펼쳐서 상하·좌우로 연결시켜 볼 수 있도록 고안된 지도로서의 특수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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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20본 안팎이 전해지는 것으로 조사되고 있는데, 미국의 밀워키대학교 도서관 등 외국에서도 속속 발굴되고 있어 향후 더 많아질 가능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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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이버 지식백과] 대동여지도 [大東輿地圖]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관계망 데이터베이스'''==
 
=='''관계망 데이터베이스'''==

2016년 12월 27일 (화) 02:01 판

틀:작품정보

작품 살펴보기

김정호대동여지도김태 「김정호의 대동여지도」 1979
이 그림에 대한 정보

maschek를 사용하여 작품내 일차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노드에 링크를 걸어주었습니다

작품소개

‘민족기록화’는 우리 민족사의 주요 사건들을 사실적 화풍으로 그려낸 회화적 형태의 기록물로, 박정희 대통령 집권기인 1967년부터 1979년 사이에 집중적으로 그려진 그림들입니다. 1967년부터 79년 사이에 그려진 106점의 민족기록화를 대상으로 민족기록화 사업은 1967년 4월 민주공화당 의장이었던 김종필의 제안에 의해 박정희 정권시기 문화정책의 일환으로 추진되었습니다.

김정호의 대동여지도김태 화백의 작품으로, 박정희 대통령 재임중인 1979년에 문화정책의 일환으로 그려진 그림이다. 현재 국가기록원 부산기록관에 소장되어 있다.
해당 작품 속 인물은 조선 후기의 실학자 겸 지리학자인 김정호로, 그는 14세기 중엽 왜구가 창궐하자 화약의 필요성을 절감하였고, 수입에 의존하던 화약 제조와 총기 제작의 국산화를 결심했다.


작품 자체의 기사 형식에 대해서 who? 최대섭이/when? 1979년 이라는 시간적 배경 / what? 최무선의 화약공방: 작품의 소재에 대하여 명시/ where? 만약 공간이 드러나 있다면 그 공간을 적어주기/ how? why? 이 그림을 어떤 방식으로, 왜 그렸는지에 대한 정보가 있다면 명시해 주기

1108 교수님 말씀 : 작품 기사 관련하여 어떤 작가가 언제 어떤식으로 어떤의도로 그림을 그렸는지 기재 + 작품 자체에 대한 설명에 충실하게. (예를들어 최무선은, 여기 가운데 사람이 최무선이고, 지금 ??을 만들고 있는 모습이다 등등...)

작품의 배경지식은 어차피 데이터관계망이나 하이퍼 링크로 다 들어가므로. 배경지식보다는 작품 자체! 에 초점을..



1861년(철종 12) 고산자(古山子)김정호(金正浩)가 편찬·간행하고 1864년(고종 1)에 재간한 분첩절철식(粉帖折疊式)의 전국 지도첩.

개설

보물 제850-1호. 일반적으로 호칭되는 목판본의『대동여지도』22첩(帖)은 조선 후기의 지리학자 김정호가 1861년에 편찬·간행하고 1864년에 재간한 22첩의 병풍식(또는 절첩식) 전국 지도첩이다. 최근 김정호의 지도 중 이름이 같으면서 내용이 다른 지도첩이 새롭게 조사되었다.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된 필사본의『동여(東輿)』 14첩은 1층에 큰 글씨로 ‘대동여지도(大東輿地圖)’라고 쓰여 있고, 국립중앙도서관에는 필사본의『대동여지도』 18첩이 남아 있기도 하다. 따라서 앞으로는『대동여지도』라는 이름 앞에 ‘목판본 22첩’, ‘필사본 14첩’, ‘필사본 18첩’이란 수식어를 붙여 구분해 주어야 하는 필요성이 생겼다.

1861년에 간행된 것은 성신여자대학교 박물관과 서울역사박물관의 2본이 각기 보물 850-1호와 보물 850-2호로, 1864년에 간행된 것은 규장각 한국학연구원의 1본이 보물 850-3호로 지정되어 있다. 판목이 숭실대학교 박물관에 1매, 국립중앙박물관에 11매가 남아 있어 일제강점기 이후 이야기되었던 판목소각설은 잘못된 것임이 드러났다.

목판본『대동여지도』 22첩은 우리나라 전체를 남북 120리 22층으로 나누고 동서 80리 간격으로 19판(版)으로 각 층에 해당하는 지역의 지도를 각각 1권의 책으로 접어서 엮었다. 1첩 한 면의 남북 길이가 약 30㎝이기 때문에 22첩을 모두 연결하면 세로 약 6.6m, 가로 4.0m에 이르는 초대형 조선전도가 된다. 크기 때문에 휴대와 열람에 어려운 단점을 극복하기 위해 전국을 동서와 남북 각각 80리와 120리의 동일 간격으로 나누어 최북단의 1층부터 최남단의 22층까지 22첩으로 분리하여 수록하여 병풍처럼 접고 펼 수 있게 한 것이다. 책으로 제본된 이전 시기의 지도와는 달리 첩을 펼쳐서 상하·좌우로 연결시켜 볼 수 있도록 고안된 지도로서의 특수성이 있다.

현재 20본 안팎이 전해지는 것으로 조사되고 있는데, 미국의 밀워키대학교 도서관 등 외국에서도 속속 발굴되고 있어 향후 더 많아질 가능성이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대동여지도 [大東輿地圖]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관계망 데이터베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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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드 및 관계 테이블

노드 관계 노드
최대섭-화포와 화약을 제조하는 최무선 ~에 소장되어 있다 한국학중앙연구원
최대섭 ~을 그렸다 최대섭-화포와 화약을 제조하는 최무선
최대섭-화포와 화약을 제조하는 최무선 ~을 소재로 한다 최무선

관련항목

각주

참고문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