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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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생(金生)
대표명칭 김생
한자표기 金生
영문명칭 Kim Saeng
생몰년 711-?
이칭 구(玖)
지서(知瑞)
시대 신라
성격 서예가



정의

신라시대의 서예가.

내용

개요

김생은 신라 통일기 명필(名筆)로 서성(書聖)으로도 불린다. 자(字)는 지서(知瑞)이며 별명은 김구(金玖)라고 전하나 정확하지 않다.[1]

삼국사기(三國史記)』권48 열전 제8 김생조에 의하면, "김생은 부모가 한미(寒微: 사람의 형편이 구차하고 신분이 변변하지 못함)하여 가계를 알 수 없다. 어려서부터 글씨를 잘 썼는데 나이 팔십이 넘도록 글씨에 몰두하여 예서(隷書), 행서(行書)초서(草書)가 모두 입신(入神)의 경지였다."고 한다.[2] 김생의 글씨로 전하는 작품이 모두 사찰 또는 불교와 관련한 점으로 보아 부처를 좋아해 장가를 들지 않았다(好佛不娶)는 말로 김생의 생을 짐작할 뿐이다.[3]

고려 숙종 때 학사(學士) 홍관(洪灌)이 송나라 변경(汴京)에서 한림대조 양구(楊球)와 이혁(李革)에게 김생의 행초서 1권을 보이자, 양구와 이혁이 왕희지(王羲之)의 글씨라고 감탄했을 정도로 명필로 전해진다.[4]

Quote-left.png 숭녕(崇寧) 연간에 학사(學士) 홍관(洪灌이 진봉사(進奉使)를 따라 송(宋)나라에 들어가 변경(汴京)에 묵었는데, 그때 한림(翰林) 대조(待詔) 양구(楊球)와 이혁(李革)이 황제의 칙명을 받들고 숙소에 왔다. 그림 족자에 글씨를 썼는데, 홍관이 김생의 행서와 초서 한 권을 그들에게 보여 주었다. 두 사람이 크게 놀라 “오늘 왕우군(王右軍: 왕희지)이 손수 쓴 글씨를 보게 될 줄 몰랐다.”라고 말하였다. 홍관이 “아니오. 이것은 신라 사람 김생이 쓴 것이오.”라고 말하였다. 두 사람은 웃으면서 “천하에 우군을 제외하고 어찌 신묘한 글씨가 이와 같을 수 있겠소?”라고 말하였다. 홍관이 여러 번 말하여도 끝내 믿지 않았다. Quote-right.png
출처: 『삼국사기(三國史記)』권48 열전 제8 김생조. 온라인 참조: "송의 학자들이 왕희지의 글씨라고 믿다", 삼국사기, 『한국사데이터베이스』online, 국사편찬위원회.


충주에서는 오현(五賢)의 한 사람으로 추대하여 우륵문화제 때 추모제를 지내며, 1996년에는 '김생 연구회'가 조직되어 김생의 서예를 연구·전승하기 위해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5]

신품사현

신품사현은 신라와 고려 시대의 대표적인 서예가 네 명을 이르는 말로, 이규보(李奎報)의 『동국이상국집(東國李相國集)』에서 비롯되었다. 이규보는 신라의 김생, 고려의 탄연(坦然), 최우(崔瑀), 유신(柳伸)의 글씨를 신품(神品)이라고 평하며, 이들 네 사람을 '신품사현(神品四賢)'이라고 불렀다.[6]

특히 이규보는 김생을 신품제일(神品第一)로 평한다.[7]

Quote-left.png 아침 이슬이 맺히고 저녁 연기가 일어나며 성낸 교룡이 뛰고 신령스러운 봉황이 난다. 김생과 왕 희지는 몸은 비록 다르나 솜씨는 같았다. 마음과 손이 서로 응한 것은 천연의 신비가 붙은 것이다. 신기하고 기이하여 말로 전하기 어렵도다. Quote-right.png
출처: "동국 제현(東國諸賢)의 글씨를 평론한 데 대한 서", 동국이상국후집 제11권 서(序), 『한국고전종합DB』online, 한국고전번역원.


봉화 태자사 낭공대사탑비

조선시대에는 이미 김생의 진적(眞蹟:실제의 유적)이 귀해져 이광사(李匡師)의 『원교서결(圓嶠書訣)』에서 그의 진적 전혀 남지 않았다고 할 정도였다. 김생의 진면목을 살필 수 있는 필적으로는 봉화 태자사 낭공대사탑비(奉化 太子寺 朗空大師塔碑)가 있다.[8] 이 비의 비문 글씨는 954년(광종 5)에 승려 단목(端目)이 김생의 행서(行書)를 집자(集字)한 것으로, 통일신라와 고려시대에 유행한 왕희지, 구양순 류의 단정하고 미려한 글씨와 달리 활동적인 운필(運筆)로 서가(書家)의 개성을 잘 표출시키고 있다.[9]

이 탑비의 측면에는 1509년(중종 4)에 영천군수 이항(李沆)이 탑비를 태자사지에서 영천의 자민루(字民樓)로 옮겨 온 사실이 박눌(朴訥)의 글씨로 새겨져 있다.[10]

Quote-left.png 내가 어릴 때 김생(金生)의 필적(筆蹟)을 비해당집[11]고첩(匪懈堂集古帖)에서 얻어보니, 그 필법(筆法)이 마치 용이 날뛰고 호랑이가 누워있는 것과 같아서, 그 기세(氣勢)를 보고 크게 좋아하였다. 그러나 세상에 전함이 많지 않음을 한탄하여 오던 중 근래(近來)에 영주(榮州)의 이웃인 봉화현(奉化縣)에 김생(金生) 글씨의 비석이 홀로 고사(古寺)의 유허(遺墟)에 남아 있다는 말을 듣게 되었다. 나는 이와 같은 희세(希世)의 보배가 초망지간(草莽之間)에 매몰되어 있으나 수호하는 사람이 없어 야우((野牛)의 뿔에 부딪쳐 상하거나, 목동들의 불장난 등이 모두 염려되었다. 그리하여 군인(郡人)인 전참봉(前叅奉) 권현손(權賢孫)과 공모(共謀)하여 자민루(字民樓) 아래에 이전하여 안치하고 사방(四方)으로 난함(欄檻)을 둘러 출입을 통제하였다. 탁본(托本)하는 사람이 아니면 누구도 출입을 금하였으니, 함부로 만져 손상이 생길까 두려웠기 때문이다. 이로 말미암아 김생(金生)의 필적(筆蹟)이 세상에 널리 전해지게 되었다. 그 후 선비들이 앞을 다투어 감상하러 찾아 들었다. Quote-right.png
출처: 임세권 저, 이우태 편저, 「태자사 낭공대사 백월서운탑비」, 『한국금석문집성 17 : 고려1 비문1』, 한국국학진흥원, 2014, 37쪽. 온라인 참조: "한국금석문집성 17 : 고려1 비문1", 『KRpia - 한국의 지식콘텐츠』online, 누리미디어.


지식 관계망

  • 봉화 태자사 낭공대사탑비와 낭공대사 행적 지식관계망

관계정보

항목A 항목B 관계 비고
삼국사기 김생 A는 B를 기록하였다
동국이상국집 김생 A는 B를 기록하였다
동국이상국집 이규보 A는 B가 저술하였다
신품사현 김생 A는 B를 포함한다
봉화 태자사 낭공대사탑비 김생 A는 B와 관련이 있다
공주 마곡사 대웅보전 김생 A는 B가 편액을 썼다
충주 김생사지 김생 A는 B가 창건하였다

시각자료

가상현실

갤러리

영상

주석

  1. 서동형, "해동서성 김생 선생의 유물유적", 『디지털충주문화대전』online, 한국학중앙연구원.
  2. 박은순, "김생",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online, 한국학중앙연구원.
  3. 박상일, "김생", 『디지털음성문화대전』online, 한국학중앙연구원.
  4. 김현길, "김생", 『디지털충주문화대전』online, 한국학중앙연구원.
  5. 서동형, "해동서성 김생 선생의 유물유적", 『디지털충주문화대전』online, 한국학중앙연구원.
  6. "신품사현", 두산백과, 『네이버 지식백과』online.
  7. 김현길, "김생", 『디지털충주문화대전』online, 한국학중앙연구원.
  8. 박은순, "김생",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online, 한국학중앙연구원.
  9. 임세권 저, 이우태 편저, 「태자사 낭공대사 백월서운탑비」, 『한국금석문집성 17 : 고려1 비문1』, 한국국학진흥원, 2014, 21-22쪽. 온라인 참조: "한국금석문집성 17 : 고려1 비문1", 『KRpia - 한국의 지식콘텐츠』online, 누리미디어.
  10. 김응현, "봉화 태자사 낭공대사탑비",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online, 한국학중앙연구원.
  11. 안평대군의 문집.
  12. "예술의전당 서예박물관 우리나라 서예 법 세운 '김생 특별전'", 『아주경제』, 2011년 12월 25일.
  13. 이동국, "서예로 찾은 우리 미학(17) 태자사낭공대사백월서운탑비 (上)", 『경향신문』, 2014년 1월 24일.
  14. 이동국, "서예로 찾은 우리 미학(17) 태자사낭공대사백월서운탑비 (下)", 『경향신문』, 2014년 2월 7일.

참고문헌

  • 김현길, "김생", 『디지털충주문화대전』online, 한국학중앙연구원.
  • 박맹흠, 「김생의 태자사낭공대사백월서운탑비 서풍 연구」, 원광대학교 동양학대학원 석사학위논문, 2010.
  • 박상일, "김생", 『디지털음성문화대전』online, 한국학중앙연구원.
  • 박은순, "김생",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online, 한국학중앙연구원.
  • 서동형, "해동서성 김생 선생의 유물유적", 『디지털충주문화대전』online, 한국학중앙연구원.
  • 이미경, 「김생 서예 연구」, 『서예학연구』 Vol.12, 한국서예학회, 2008, 5-37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