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선"의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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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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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시대의 승과(僧科)에는 불교 자체에 [[교종|교종(敎宗)]]과 [[선종|선종(禪宗)]]의 두 갈래가 있었던 만큼 교종선(敎宗選)과 선종선(禪宗選) 두 종류가 있었다. 교종선은 [[교종]]의 도회소(都會所)인 개성의 [[개성 왕륜사|왕륜사(王輪寺)]]에서, 선종선은 [[선종]]의 도회소인 개성의 [[개성 광명사|광명사(廣明寺)]]에서 각각 실시하였다.<ref>한국고전용어사전 편찬위원회, 『한국고전용어사전』, 세종대왕기념사업회, 2001. 온라인 참조: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81713&cid=41826&categoryId=41826 공부선]", 한국고전용어사전, <html><online style="color:purple">『네이버 지식백과』<sup>online</sup></online></html>.</ref> 공부선에 대한 기록은 고려사 권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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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성 광명사|개경 광명사(廣明寺)]]에서 국사(國師) [[나옹|혜근(慧勤)]]이 [[고려 공민왕|공민왕]]을 모시고, 양종(兩宗)의 승려를 모아 그들이 스스로 체득한 것을 시험하였다. 나옹록(懶翁錄)에 따르면, 1370년([[고려 공민왕|공민왕]] 19) 경술 9월 10일에 [[고려 공민왕|공민왕]]이 승려 [[나옹|혜근]]을 서울로 불러들였고 16일에는 왕이 직접 [[개성 광명사|광명사(廣明寺)]]로 나아가 [[나옹|혜근]]이 주맹(主盟)이 되어 [[오교양종|양종오교(兩宗五敎)]]의 모든 승려를 모아 그들의 공부를 시험하였는데, 그것을 공부선이라 하여 임금이 친히 나가 보았다고 하였다.<ref>"[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1063345&cid=40942&categoryId=31543 공부선]", 두산백과, <html><online style="color:purple">『네이버 지식백과』<sup>online</sup></online></html>.</ref>
 
 
[[개성 광명사|개경 광명사(廣明寺)]]에서 국사(國師) [[나옹|혜근(慧勤)]]이 [[고려 공민왕|공민왕]]을 모시고, 양종(兩宗)의 승려를 모아 그들이 스스로 체득한 것을 시험하였다. 나옹록(懶翁錄)에 따르면, 1370년([[고려 공민왕|공민왕]] 19) 경술 9월 10일에 [[고려 공민왕|공민왕]]이 승려 [[나옹|혜근]]을 서울로 불러들였고 16일에는 왕이 직접 [[개성 광명사|광명사(廣明寺)]]로 나아가 [[나옹|혜근]]이 주맹(主盟)이 되어 [[오교양종|양종오교(兩宗五敎)]]의 모든 승려를 모아 그들의 공부를 시험하였는데, 그것을 공부선이라 하여 임금이 친히 나가 보았다고 하였다.<ref></ref>
 
  
 
=='''시각자료'''==
 
=='''시각자료'''==

2017년 7월 21일 (금) 21:35 판

공부선
(功夫選)
대표명칭 공부선
한자표기 功夫選



정의

고려 공민왕 때 승려에게 실시한 시험.[1]

내용

개경 광명사(廣明寺)에서 국사(國師) 혜근(慧勤)공민왕을 모시고, 양종(兩宗)의 승려를 모아 그들이 스스로 체득한 것을 시험하였다. 나옹록(懶翁錄)에 따르면, 1370년(공민왕 19) 경술 9월 10일에 공민왕이 승려 혜근을 서울로 불러들였고 16일에는 왕이 직접 광명사(廣明寺)로 나아가 혜근이 주맹(主盟)이 되어 양종오교(兩宗五敎)의 모든 승려를 모아 그들의 공부를 시험하였는데, 그것을 공부선이라 하여 임금이 친히 나가 보았다고 하였다.[2]

시각자료

주석

  1. "공부선", 두산백과, 『네이버 지식백과』online.
  2. "공부선", 두산백과, 『네이버 지식백과』online.

참고문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