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통일대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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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통일대전(高麗統一大殿)

고려통일대전의 설립은 남북분단의 비원을 극복하기 위한 통일동산 조성계획의 일환 으로 고려의 웅혼한 후삼국통일의지를 되살리고자 하는데 목적이 있다. (국가중심)

2) 라말려초의 사성제도에 따라 각문중의 숭조목종의 미풍양속을 오늘에 되살려 이를 진작 계승하는데 중점을 둔다. (문중중심)

3) 그러므로 오직 고려왕건태조의 위대한 통일의지를 기본정신으로 계승할 뿐 고려태묘 나 과거회귀식 관념에서 일체 탈피한다.

제1장 총 칙

제1조(목적) 본회 정관 제3조(목적)에 의거 고려역사 선양을 위한 고려통일대전의 관리 운영과 고려의 성왕, 충신, 공신, 절신, 현인등의 배향 및 봉안에 필요한 제도적 절차 등을 정하고자 함에 있다.

제2조(위치) 고려통일대전은 경기도 파주시 탄현면 필승로 330-102(탄현면 성동리 684번 지) 일원으로 한다.

제3조(시설) 대전의 규모 및 각 시설은 별지1과 같다.

제4조(정각명칭) 각 정각의 명칭은 다음과 같이 한다.

 1. 대전(정전) : 고려대전으로 한다.
 2. 충신각 및 공신각 : 각각 제전각 및 영정각으로 한다.
 3. 수복방 : 전사청으로 한다.

제2장 배 향

제5조(배향자격) ① 고려대전에 봉안할 수 있는 배향위는 다음 각호의 인물로 한다.

 1. 고려시대 인물로 각 역사와 고증 문헌에 그 공훈과 업적이 혁혁히 기록 보전된 인물
 2. 비록 공식 문헌에는 기록되어 있지 않으나 족보•문지등 제반사항으로 보안 신빙성 
   있는 인물 

② 제1항 각호의 인물을 각 문중에서 배향신청 절차에 따라 추앙된 인물을 심사하여 배향 인물로 선정한다.

③ 배향 안치가 완료된 후 추가로 봉안하는 배향위는 공훈 환관 고하를 불문하고 사

전 계획된 순서외 잔여 봉안처에 배향한다. 단, 특별한 사정이 있을시에는 본회 이사 회의 의결로 봉안 위치를 조정할 수 있다.

제6조(배향위 봉안) ① 고려대전의 배향은 다음 각호와 같이 봉안한다.

1. 왕건 태조외 고려 역대 왕 33위를 봉안한다. 단, 하단 좌우에 33대 왕 위패를 소목 으로 나열 봉안한다.

2. 문중의 배향위 배열은 고려대전내 좌우편의 제단에 배열 봉안하되 연대순-가나다 (문중)순-세계순으로 하며 문중별 소목식으로 좌우순으로 봉안한다. 단, 연대순은 문중 배향위중 선조배향위를 기준으로 정한다.

② 고려대전 대제 봉안문은 현대적 어법으로 대중이 알기 쉽게 작성한다.

제7조(봉안 신청) ① 씨족 대표는 제5조에 적합한 선조에 대하여 배향위 및 전시물 게시 신청을 할 수 있다.

② 신청은 별첨 서식1, 2호에 의하며, 소정의 절차를 거쳐 본회의 승인을 얻은 후에 봉안할 수 있다.

제8조(배향위 심사) ① 제7조의 신청이 있을 경우 각종 자료를 토대로 총재단의 심의를 거쳐 결정하되, 필요한 경우 심사기구를 구성하여 심의 결정한다.

② 제1항의 규정에 의한 심사기구는 다음과 같이 구성하여 심사를 실시한다.

 1. 심사기구는 심사위원장 1명을 포함하여 5명 내외로 구성한다.
 2. 심사위원은 사학전공 교수 및 본회 위원으로 구성한다.
 3. 심사기구에서는 배향인물의 배향 적합성 여부를 결정한다.
 4. 심사기구는 심사 완료와 동시에 자동 해산한다.

③ 제7조의 신청이 승인된 경우에 당해 씨족(문중) 종회에서는 다음 각호의 등록비를 납부한 후 봉안할 수 있다.

  1. 배향위 등록 : 금 이천만원
  2. 전시물 게시 : 금 오백만원

③ 제1항 및 제2항의 결정 결과에 대하여는 이사회 및 총회에 보고한다.

제9조(배향위패) ① 위패의 재질 및 문안은 다음 각호와 같이 한다.

 1. 위패는 밤나무 원목판으로 하며 독(함)은 검은 옷칠과 내부는 붉은 색으로 한다.
 2. 규격은 제단 규격에 합당할 수 있는 규격으로 한다.
 3. 위패문은 아래의 순으로 하며 17자 이내로 기재한다.
    가. 최고 환관명
    나. 작위, 시호, 아호 중 택일
    다. 관향
    라. 성명
    마. 선생

② 배향 적법절차에 의하여 봉안된 배향위패는 임의로 개독, 개조, 이동, 수리, 수정, 철회 등을 할 수 없다.

⓷ 제2항의 행위를 하고자 할시는 본회 이사회의 의결로 조치한다. 단, 해당 씨족의 총회 의사록에 의하여 심의할 수 있다.

제3장 시설물 관리

제10조(일반인 출입) ① 대전의 안전관리를 위하여 원칙적으로 평시에는 관계자외의 출입 을 허용하지 않는다. 다만, 다음의 경우에는 출입을 허용한다.

 1. 대제 및 행사를 하는 기간동안 일반인에 대한 대전 시설물의 출입
 2. 씨족의 대전 참관 신청이 있거나, 일반인의 출입이 필요하다고 인정하여 사전 승인을 받은 경우
 ② 총재는 개방 허용에 따른 시설물 안전을 위하여 필요한 조치를 취하여야 한다.

제11조(출입의 제한) 총재는 대제 또는 행사시 다음 각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사람 에게는 출입을 제한하거나 퇴장을 명할 수 있다.

 1. 술에 취한 사람
 2. 개인의 영리성 행위를 하려는 사람
 3. 다른 사람에게 위협이 되거나 위해를 가할 우려가 있는 사람
 4. 그밖에 안전과 질서유지를 위하여 필요하다고 인정하는 사람

제12조(관리인) 총재는 상시 시설물 관리를 위하여 관리인을 둘 수 있다.


고려통일대전 위패봉안문 대광내의령 정민공 서필선생 봉안문 (高麗統一大殿 位牌奉安文 大匡內議令 貞敏公 徐弼先生 奉安文)

오호(嗚呼) 선생(先生)이시여! 이천인(이천서씨(利川人)으로 신라(新羅) 아간(阿干) 서신일(徐神逸)의 아들이로다. 천성(天性)이 청렴(淸廉)하여 학문(學問)을 좋아하고 기개(氣槪)가 과단(果斷)하고 문장(文章)이 수려(秀麗)하였도다. 일찍이 명필(名筆)로서 등용(登用)되어 문서(文書)를 초(草)하는 미관(微官)으로 진출하여 대광내의령(大匡內議令)에 이르렀도다. 광종이 금주기(金酒器)를 하사(下賜)하니 신(臣)이 금주기를 쓰면 임금은 장차(將次) 무엇을 쓰시나이까 하고 받지 아니하니, 경(卿)은 능(能)히 보물(寶物)로써 보물을 삼지 아니하니 짐(朕)은 마땅히 경(卿)의 말로써 보물을 삼으리라 하였도다. 또 선생(先生)은 공(功)을 가려 상(賞)을 줄 것과 투화(投化)한 한인(漢人)들에게 신료(臣僚)의 집과 딸들을 빼앗는 것을 극간(極諫)하여 중지(中止)케 하였도다. 정치(情致)에는 이황(理荒)이 있고 사업(事業)에는 선악(善惡)이 있음이라. 선정(善政)의 전형(典型)으로 제왕(帝王)의 이상(理想)이 이에 나타나 있으니, 선생(先生)의 헌책(獻策)은 오직 조강국체(朝綱國體)의 기초(基礎)를 다졌다고 말하리로다. 마침내 선생(先生)은 향년(享年) 六十五세에 졸(卒)하시니 정민(貞敏)이라 시호(諡號)하고 누증(累贈)하여 삼중대광내의령(三重大匡內議令)이 되었도다. 오호(嗚呼) 위대(偉大)하신 선생(先生)이시어! 성두(星斗)가 신(神)을 하강(下降)시켜 이 땅에 태어나게 하시니, 죽음을 따라 그 령명(令名)은 오히려 없어지지 않는도다. 조정(朝廷)은 선생(先生)의 덕(德)을 흠모(欽慕)하여 광종묘정(光宗廟庭)에 배향(配享)하였으나, 사직(社稷)이 바뀜에 미쳐 영대(靈臺)가 해무리를 고(告)함에 이르렀도다. 태묘(太廟)의 사전(祀典)에 힘입지 않는다면 누가 마땅히 그 령명(令名)을 후세(後世)에 전(傳)하리요? 이제 의(義)를 숭상(崇尙)하는 제사(諸士)의 의론(議論)이 제발(齊發)하여 저 익연(翼然)한 대전(大殿)을 통일동산(統一東山)에 세웠도다. 천만성예(千萬姓裔)는 의리(義理)를 같이하여 이에 헌성(獻誠)하고 정부기관(政府機關)은 취지(趣旨)에 찬동(贊同)하여 이에 보조(補助)하도다. 조두(俎豆)는 고법(古法)을 쫓고, 행사(行祀)는 태묘(太廟)에 준(準)하도다. 드디어 고려선양회(高麗宣揚會) 유사(有司)는 정결(淨潔)히 예제(禮齊)를 갖추어 감(敢)히 존령(尊靈)을 치국실(治國室)에 봉안(奉安)하나이다. 바라옵건대 영령(英靈)이시여! 이에 강림(降臨)하사 평안(平安)하소서.

고려통일대전 위패봉안문 태보내사령 장위공 서희선생 봉안문 (高麗統一大殿 位牌奉安文 太保內史令 章威公 徐熙先生 奉安文)

명호(鳴呼), 선생(先生)은 이천인(이천서씨(利川人)이니 대광내의령(大匡內議令) 정민공(貞敏公) 서필(徐弼)의 아들이로다. 성품(性稟)이 엄격(嚴格)하고 기개(氣槪)가 과단(果斷)하였도다. 일찍이 갑과(甲科)에 등제(登第)하여 광평원외랑(廣評員外郞)을 초수(超綬)하고 누진(累進)하여 내의시랑(內議寺郞)이 되었도다. 광종(光宗) 때 사명(使命)을 받들어 송(宋)에 갔다가 용의(容儀) 법도(法度)에 맞으니 송태차(宋太且)가 가상(嘉尙)히 여겨 검교병부상서(檢校兵部尙書)를 제수(除授)하였도다. 거란(契丹)이 내침(來侵)함에 선생(先生)이 중군사(中軍使)가 되어 봉산(蓬山)으로 출격(出擊)하였는데 소손녕(蕭遜寧)이 항복(降服)을 재촉(再促)함에 성종(成宗)은 서경(西京) 이북(以北)을 양도(讓渡)하려고 하였도다. 선생(先生)은 그것이 양계(良計)가 아님을 강력(强力)히 주장하고 적(敵)과 교섭(交涉)할 사신(使臣)을 자원(自願)하여 적진(敵陣)에 나아갔도다. 소손녕(蕭遜寧)은 고구려(高句麗) 땅이 자기네 땅임을 주장(主張)하고 우리와 접경(接境)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송(宋)과 수교(修交)하는 고로 오늘의 출병(出兵)이 이에 연유(緣由)함이라 하니, 선생(先生)은 말하기를 우리나라는 곧 고구려(高句麗)의 구지(舊地)이므로 국호(國號)를 고려(高麗)라 칭(稱)하고 평양(平壤)에 도읍(都邑)하였으니 만일 지계(地界)를 논(論)한다면 귀국(貴國)의 동경(東京)은 다 우리 경내(境內)에 있거늘 어찌 침식(侵蝕)이라 하는가? 수교(修交)의 불통(不通)은 여진(女眞) 때문이라. 만일 그 사이에 도거(盜據)한 여진(女眞)을 쫓고 우리 구지(舊地)를 돌리어 성보(城堡)를 쌓고 도로(道路)를 통(通)하게 하면 감(敢)히 수빙(修騁)하지 않으리오 하였도다. 소손녕(蕭遜寧)은 그 강개(慷慨)한 사기(辭氣)에 감복(感服)하여 드디어 거란(契丹)이 이에 응(應)하여 물러났도다. 이후(以後) 여진(女眞)을 격퇴(擊退)하고 장흥(長興)·귀비(歸匕)·곽주(郭州)·구주(龜州)·안의(安義)·흥화(興化)·선주(宣州)·맹주(孟州) 등지(等地)에 성을 쌓아 국토(國土)를 확장(擴張)하니, 성종(成宗)은 그 공업(功業)이 가상(嘉尙)하여 태보내사령(太保內史令)을 제수(除授)하였도다. 아아! 선생(先生)은 오직 담판(談判)으로 거란(契丹)의 대병(大兵)을 물리쳤으니, 실(實)로 국가(國家)의 존망(存亡)에 이만한 대공(大功)을 세우신 분이 선생(先生)을 빼놓고 또 누가 있으리오. 그 은혜(恩惠)는 바다와 같이 깊고, 그 유덕(遺德)은 태산(泰山)과 같이 높으시도다. 이에 유사(有司)는 고례(古禮)를 좇아 감(敢)히 존영(尊靈)을 호국실(護國室)에 봉안(奉安)하나이다. 바라옵건대 영령(英靈)이시어 이에 강림(降任)하사 봉안(奉安)을 누리소서.

고려통일대전 위패봉안문 삼중대광 내사령 원숙공 서눌선생 봉안문 (高麗統一大殿 位牌奉安文 三重大匡 內史令 元肅公 徐訥先生 奉安文)

오호(嗚呼)! 선생(先生)은 이천인(이천서씨(利川人)으로 태보내사령(太保內史令) 장위공(章威公) 희(熙)의 아들이요 내의령(內議令) 정민공(貞敏公) 필(弼)의 손자(孫子)로다. 성종(成宗) 때 갑과(甲科)에 발탁(拔擢)되어 목(穆)·현(顯)·덕(德)·정(靖)·4조(朝)를 역임(歷任)하시니, 조강국례(朝綱國禮)에 보우(保佑)한 공(功)이 실(實)로 많았도다. 현종조(顯宗朝)에 누천(累遷)하여 국자제주지리부사(國子祭酒知吏部事)가 되었는데 왕(王)이 선생(先生)의 딸을 들이어 비(妃)를 삼았도다. 곧이어 문하시랑동내사문하평장사판상서사부사(門下侍郞同內史門下平章事判尙書史部事)에 오르시고, 덕종조(德宗朝)에 검교태사(檢校太師)를 가(加)하여 문하시랑(門下侍郞)에 승진(昇進)하였도다. 정종시(靖宗時)에 판도병마사(判都兵馬使)를 역임(歷任)하였더니 왕년(往年)에 거란(契丹)이 압록강(鴨綠江), 동편(東便)에 성보(城堡)를 가축(加築)하고, 이제 다시 화친(和親)코자 하였도다. 이에 선생(先生)은 사신(使臣)으로 하여금 표(表)를 부쳐 먼저 그 성보(城堡)를 파(罷)할 것을 청(請)하게 하였도다. 병(病)이 위독(危篤)하자 임금이 삼중대광(三重大匡) 내사령(內史令)을 가(加)하고, 그 자손(子孫)에게 영업전(營業田)을 하사(下賜)하였도다. 급졸(及卒)에 왕(王)이 애도(哀悼)하고 간경(簡敬)이라 증시(贈諡)하였다가 뒤에 정종조정(靖宗朝廷)에 배향(配享)하고 원숙(元肅)이라 개시(改諡)하였도다. 삼대(三代)가 나란히 재상(宰相)에 오르고 시호(諡號)와 묘식(廟食)이 또한 그와 같으니, 그 가문(家門)의 영광(榮光)은 별빛처럼 빛나고, 그 영명(令名)과 훈업(勳業)은 천추(千秋)에 유전(遺傳)하는도다. 이제 의(義)를 숭상(崇尙)하는 제사(諸士)의 의논(議論)이 제발(齊發)하여, 수년(數年)만에 통일(統一)동산에 터를 잡아 고려통일대전(高麗統一大殿)을 장엄(莊嚴)하게 세웠도다. 천만성예(千萬姓裔)는 이에 헌성(獻誠)하고, 정부기관(政府機關)은 이에 찬조(贊助)하였도다. 위로는 우주(宇宙)의 원기(元氣)를 지탱(支撑)하고, 아래로는 산하(山河)의 정기(精氣)를 포섭(包攝)하였도다. 송악(松嶽)은 아련히 구름 위에 솟아있고, 한수(漢水)는 도도(滔滔)히 대(臺)를 안고 흐르도다. 전우(殿宇)가 사위(四圍)에 흘연(屹然)하니, 성충현공(聖忠顯功)의 거동(擧動)이 여재양양(如在洋洋)하도다. 조두(俎豆)는 고법(古法)을 좇고 행사(行祀)는 태묘(太廟)에 준(準)하도다. 이제 고려선양회(高麗宣揚會) 유사(有司)는 정결(淨潔)히 예제(醴齊)를 갖추어 감(敢)히 존영(尊靈)을 치국실(治國室)에 봉안(奉安)하나이다. 바라옵건대 향축(香祝)이 구천(九泉)에 응(應)하거던 이에 강림(降臨)하사 이에 명례(明禮)를 흠격(歆格)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