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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성 현화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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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한샘 (토론 | 기여) 사용자의 2017년 9월 16일 (토) 16:09 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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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성 현화사
(開城 玄化寺)
대표명칭 개성 현화사
한자 開城 玄化寺
주소 개성시
건립시기 1020년



정의

개성시에 있었던 절.

내용

1020년(현종 11) 준공된 현화사(玄化寺)는 현종이 온 정성을 다 기울여 세운 부모를 위한 원찰(願刹)이다. 현화사 진전(眞殿) 안에는 현종의 부모인 안종헌정왕후(獻貞王后) 그리고 누이 성목장공주(成穆長公主) 및 현종비 원정왕후(元貞王后)의 진영이 봉안되었고, 현종이 죽은 뒤에는 현종의 진영(眞影)도 함께 봉안되었다.[1]

거란과의 전쟁이 한창이던 1017년(현종 8)에는 최사위(崔士威) 등을 시켜 부모의 새 원찰(願刹)인 현화사 개창공사를 시작했다.[2]

Quote-left.png 비로소 현화사(玄化寺)를 창건하여 돌아가신 아버지와 어머니의 명복을 빌기 위한 바탕으로 삼았다. Quote-right.png
출처: 『고려사절요』 권3, 현종원문대왕(顯宗元文大王), 현종(顯宗) 9년, 6월.[3]


현화사(玄化寺) 창건과정은 전적으로 현종의 적극적인 후원에 이해 이루어진 것이었다. 현종은 건물을 짓고 범종과 법고를 주조하는 등 절의 외관을 갖추는 한편으로 송나라에 사신을 파견하여 대장경을 구해 오게 하여 이 사찰에 봉안하였다. 그리고는 『대반야경』, 『화엄경』, 『묘법연화경』, 『금광명경』 등의 경전을 특별히 간행하여 현화사에 봉안케 하고 따로 반야경보(般若經寶)를 설치하여 대장경 간행을 위한 기반을 닦았다.[4]

1020년에는 진신사리(眞身舍利)[5]를 수습하여 현화사에 7층석탑을 세우고 탑 1층에 사리를 봉안했다.[6]

즉위 초부터 거란의 침입에 시달린 현종으로서는 국가의 안위와 융성은 무엇보다 중요한 일이었으므로 매년 4월 8일부터 3일 밤낮 동안 현화사에서 미륵보살회(彌勒菩薩會)를 개설하여 국가의 융성과 안위를 기원했고, 일찍 세상을 떠난 부모의 명복을 빌기 위해 매년 7월 15일부터 3일 밤낮 동안 미타불회(彌陀佛會)를 개설하였다.[7]

현화사는 고려왕실의 대표적 원찰이었지만, 절이 폐사된 이후 절터에 남아 있던 현화사 당간지주(玄化寺 幢竿支柱), 현화사비(玄化寺碑), 7층석탑(七層石塔), 현화사 석등(玄化寺 石燈)은 근대에 들어와 다른 곳으로 옮겨졌는데 현화사 당간지주, 현화사비, 7층석탑개성역사박물관으로 옮겨졌으며, 현화사 석등은 1915년 일제가 원래 자리에서 경복궁 뜰로 옮긴 이후 오늘날까지도 경복궁 뜰 한쪽에 서 있다. [8]

현화사와 관련된 문화재

지식 관계망

관련항목

항목A 항목B 관계 비고
개성 현화사 고려 현종 A는 B와 관련이 있다 A edm:isRelatedTo B
개성 현화사비 개성 현화사 A는 B에 있었다 A edm:formerLocation B
개성 현화사 칠층석탑 개성 현화사 A는 B에 있었다 A edm:formerLocation B
개성 현화사 당간지주 개성 현화사 A는 B에 있었다 A edm:formerLocation B
개성 현화사 석등 개성 현화사 A는 B에 있었다 A edm:formerLocation B

주석

  1. "현화사비", 금석문연구, 『한국금석문 종합영상정보시스템』online, 국립문화재연구소.
  2. "현화사비", 금석문연구, 『한국금석문 종합영상정보시스템』online, 국립문화재연구소.
  3. "현화사를 창건하다", 『고려사절요』 권3, 현종원문대왕(顯宗元文大王), 현종(顯宗) 9년, 6월, 『한국사데이터베이스』online, 국사편찬위원회.
  4. "현화사비", 금석문연구, 『한국금석문 종합영상정보시스템』online, 국립문화재연구소.
  5. 석가모니 부처님의 사리. 한국콘텐츠진흥원, "진신사리", 문화원형백과, 『네이버 지식백과』online.
  6. "현화사비", 금석문연구, 『한국금석문 종합영상정보시스템』online, 국립문화재연구소.
  7. "현화사비", 금석문연구, 『한국금석문 종합영상정보시스템』online, 국립문화재연구소.
  8. "현화사비", 금석문연구, 『한국금석문 종합영상정보시스템』online, 국립문화재연구소.

참고문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