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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진 무위사 극락보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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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한샘 (토론 | 기여) 사용자의 2017년 8월 28일 (월) 17:52 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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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진 무위사 극락보전
(康津 無爲寺 極樂寶殿)
GangJinMuwisaGueknakbojeon.jpg
대표명칭 강진 무위사 극락보전
한자표기 康津 無爲寺 極樂寶殿
영문명칭 Geungnakbojeon Hall of Muwisa Temple, Gangjin
지정번호 국보 제13호
지정일 1962년 12월 20일
소장처 강진 무위사
관련유물유적 강진 무위사 아미타여래삼존좌상, 강진 무위사 극락전 아미타여래삼존벽화



정의

전라남도 강진군 성전면 무위사(無爲寺)에 있는 조선 전기의 불전.

내용

1962년 12월 20일 국보 제13호로 지정되었다. 무위사에 현존하는 대부분의 건물들은 이 사찰의 4번째 중건인 1555년에 건립된 것이나, 이 극락전만은 1956년경의 수리공사 때 본존(本尊) 뒷벽의 벽화 명문(銘文)에서 “十二年 丙申 三月初 吉畵成”이란 기록을 통하여 적어도 1476년(성종 7)보다 앞서는 건물임이 밝혀졌다.[1]

무위사에 남아 있는 건물은 대부분 1555년(명종 10) 4창할 때 건립된 것인데, 이 극락전만큼은 1956년경 수리공사를 하던 중 본존불 뒷벽의 벽화 아래 서쪽에 쓰인 연기문(緣起文)을 통하여 1476년(성종 7) 이전에 지어진 건물임이 밝혀졌다.[2]

건물 안 뒤쪽 중앙부에 불단을 마련하여 아미타삼존불좌상(阿彌陀三尊佛坐像)을 봉안하였고, 그 뒷벽에는 1476년(성종 7)에 조성한 벽화가 그려져 있다. 측면 벽에도 조선 전기 작품으로 보이는 벽화들이 있었는데 해체 수리하면서 벽체 그대로 뜯어내 보존 전시하고 있다.[민백]

이 절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인 극락보전은 1430년(세종 12)에 지었으며, 앞면 3칸·옆면 3칸 크기이다.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사람 인(人)자 모양인 맞배지붕 형식이다.[3]

극락보전 안의 벽화들

극락보전 안에는 아미타삼존불과 29점의 벽화가 있었지만, 지금은 불상 뒤에 큰 그림 하나만 남아 있고 나머지 28점은 전시관에 보관하고 있다.[4]

이 벽화들에는 전설이 전하는데, 극락전이 완성되고 난 뒤 한 노인이 나타나서는 49일 동안 이 법당 안을 들여보지 말라고 당부한 뒤에 법당으로 들어갔다고 한다. 49일째 되는 날, 절의 주지스님이 약속을 어기고 문에 구멍을 뚫고 몰래 들여다 보자, 마지막 그림인 관음보살의 눈동자를 그리고 있던 한 마리의 파랑새가 입에 붓을 물고는 어디론가 날아가 버렸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지금도 그림속 관음보살의 눈동자가 없다.[5]

이 건물은 곡선재료를 많이 쓰던 고려 후기의 건축에 비해, 직선재료를 사용하여 간결하면서 짜임새의 균형을 잘 이루고 있어 조선 초기의 양식을 뛰어나게 갖추고 있는 건물로 주목 받고 있다.[6]

극락보전은 1934년 일제에 의해 국보 제13호로 지정되었다가 1962년 우리 정부에 의해 다시 국보 제13호로 지정되었다.[7]

지식관계망

"그래프 삽입"

관련항목

항목A 항목B 관계 비고

시각자료

가상현실

갤러리

영상

주석

  1. "강진 무위사 극락보전", 『두산백과』online.
  2. 김동현, "강진 무위사 극락보전",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online, 한국학중앙연구원.
  3. "강진 무위사 극락보전", 문화재검색, 『문화유산정보』online, 문화재청.
  4. "강진 무위사 극락보전", 문화재검색, 『문화유산정보』online, 문화재청.
  5. "강진 무위사 극락보전", 문화재검색, 『문화유산정보』online, 문화재청.
  6. "강진 무위사 극락보전", 문화재검색, 『문화유산정보』online, 문화재청.
  7. 신정일, 『신정일의 새로 쓰는 택리지 9 : 우리 산하』, 다음생각, 2012. 온라인 참조: "조선의 선비 같은 무위사의 극락보전", 신정일의 새로 쓰는 택리지 9 - 우리 산하, 『네이버 지식백과』online.

참고문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