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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지산파의 본사를 [[장흥 보림사|보림사]]로 하였던 것은 중국 남돈선(南頓禪)의 개창조 [[혜능|혜능(慧能)]]이 조계(曹溪) 보림사에서 크게 선법을 떨쳤는데, 그 전통을 잇고 있음을 시사하는 것이다. [[도의]]는 혜능의 4대 법손이며 혜능의 남돈선을 가장 먼저 신라에 전한 선사로서, 그 정통 선법을 우리나라에서 계승하였다는 뜻으로 보림사라고 부른 것으로 추정된다.
 
가지산파의 본사를 [[장흥 보림사|보림사]]로 하였던 것은 중국 남돈선(南頓禪)의 개창조 [[혜능|혜능(慧能)]]이 조계(曹溪) 보림사에서 크게 선법을 떨쳤는데, 그 전통을 잇고 있음을 시사하는 것이다. [[도의]]는 혜능의 4대 법손이며 혜능의 남돈선을 가장 먼저 신라에 전한 선사로서, 그 정통 선법을 우리나라에서 계승하였다는 뜻으로 보림사라고 부른 것으로 추정된다.
 
이 종파는 고려말까지 명맥을 유지하여 많은 인물을 배출하였는데, 『삼국유사』의 저자 [[일연|일연(一然)]]도 그 중의 하나이다.<ref>가지산파,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http://encykorea.aks.ac.kr/Contents/Index?contents_id=E0000366, 2016년 12월 27일 확인</ref>
 
이 종파는 고려말까지 명맥을 유지하여 많은 인물을 배출하였는데, 『삼국유사』의 저자 [[일연|일연(一然)]]도 그 중의 하나이다.<ref>가지산파,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http://encykorea.aks.ac.kr/Contents/Index?contents_id=E0000366, 2016년 12월 27일 확인</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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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12월 27일 (화) 16:27 판

소개

가지산문은 전라남도 장흥군에 있는 가지산 보림사(寶林寺)를 중심으로 하여 일어난 선문구산(禪門九山) 가운데 하나이다. 가지산선문(迦智山禪門)이라고도 한다.

가지산파의 개산조(開山祖) 도의(道義)는 당나라로 건너가서 지장(智藏)의 법을 받고, 821년에 귀국하였다. 신라에 돌아온 그는 당시의 사람들이 선법(禪法)을 이해하지 못하므로, 설악산으로 들어가 진전사(陳田寺)에 은거하면서 제자를 가르쳐 염거(廉居)에게 법을 전하였다.

염거는 설악산의 억성사(億聖寺)에 오래 머물렀으며, 체징(體澄)에게 법을 전하였다. 체징은 837년에 당나라로 건너가서 여러 곳을 다니며 많은 선사들을 만나 보았으나, 도의가 물려준 법밖에 따로 더 구할 것이 없음을 깨닫고, 840년에 귀국하여 보림사를 세우고, 형철(逈徹) 등 800여명의 제자를 배출하여 가지산의 한 선파를 이루었다.

가지산파의 본사를 보림사로 하였던 것은 중국 남돈선(南頓禪)의 개창조 혜능(慧能)이 조계(曹溪) 보림사에서 크게 선법을 떨쳤는데, 그 전통을 잇고 있음을 시사하는 것이다. 도의는 혜능의 4대 법손이며 혜능의 남돈선을 가장 먼저 신라에 전한 선사로서, 그 정통 선법을 우리나라에서 계승하였다는 뜻으로 보림사라고 부른 것으로 추정된다. 이 종파는 고려말까지 명맥을 유지하여 많은 인물을 배출하였는데, 『삼국유사』의 저자 일연(一然)도 그 중의 하나이다.[1]

각주

  1. 가지산파,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http://encykorea.aks.ac.kr/Contents/Index?contents_id=E0000366, 2016년 12월 27일 확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