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월회맹연 (해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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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기사는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에서 2016년에 개최한 특별전 '한글, 소통과 배려의 문자(2016.6.29~12.31)'의 도록 및 2016~2017년에 진행한 금요강독회 중 완월회맹연 (해독) 관련 '발표내용'을 참고 활용하여 작성되었습니다. 원문 중 옛 한글의 경우 웹브라우저 및 시스템의 문자세트(character set) 표현상 한계로 인해 표시가 불완전할 수 있으며, 각 내용상의 사소한 교정은 별도의 언급 없이 적용하였습니다. |
원문과 해석문
원문 | 해석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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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명(大明) 영종(英宗) 년간의 황태부(皇太傅) 슈각노(首閣老) 딘국공 졍한의 (字) 계원이오, | 명나라 영종황제 시절에 황태부수각로진국공 정한은 자가 계원이고, |
호(號) 문쳥이니, 숑현(宋賢) 명도션(明道先生)[1] 후예라. | 호는 문청이며 송나라의 어진 신하였던 정호(程顥)의 후예다. |
셩문(聖門) 여풍(餘風)이 원(元代) 후손의 니히 츌어범뉴(出於凡類)여 | 성인(선조)이 남긴 뜻이 원나라 시대 후손들에게 이르러 보통의 사람보다 뛰어났다. |
호학(好學) 독셔(讀書)며 인현효우(仁賢孝友)여, 도덕셩(道德性行)이 탁셰(濁世)의 | 학문을 좋아하고 독서하며 어질고 현명하며 효도와 우애가 깊어 도덕 및 성품과 행실이 어지럽고 더러운 세상에 |
므드지 아니 문달(聞達)[2]을 구치 아냐 방의 비린 글이 스러디고, | 때가 묻지 않았다. 이름이 세상에 널리 알려지는 것을 구하지 않아 사방에 비린내 나는 뜻의 글이 사라지고, |
태조황뎨 일통(一統)샤 팔황(八荒)[3]이 광활(廣闊)나 심산(深山) 벽쳐(僻處)를 나지 아니며 | 명태조가 천하를 통일하여 온 세상이 막힌 데 없이 트였으나 깊은 산 외진 곳을 떠나지 않았다. |
부귀를 초(草芥)치 넉이더니, 셩조(聖朝)[4] 문황뎨(文皇帝) 즉위샤 냥신(良臣)을 구시미 | 부귀를 하찮게 여기더니, 명나라 문황제가 즉위하여 어진 신하를 구하는 것이 |
문왕(文王)이 녀상(呂尙)을 마심 고 소렬(昭烈)의 삼고초려(三顧草廬)를 효측(效則)샤 | 주나라 문왕이 태공망을 맞이하듯 하고, 유비의 삼고초려를 본받아서 |
문쳥공[5]을 닐위시고, 녜경(禮敬)시미 고(古今)금의 두(擡頭)리 업고 공의 | 정한을 이르게 하여 예로 공경함이 고금에 대적할 사람이 없었다. 공의 |
군지튱(事君之忠)과 (百行) 덕(才德)이 셰(世代)의 독보(獨步)더니 | 충성스러움과 온갖 행실 그리고 재주와 덕행 등은 이 시대에 독보적이었다. |
영종의 니러 황고(皇考)[6]의 툥우(寵遇)[7]시던 을 니으시니 | 영종황제에 이르러 선친이 사랑하고 특별히 대우하는 뜻이 이어지시니 |
원 셩조 황데 님븡(臨崩)의 문쳥의게 유됴(遺詔)샤 태 | 원래 우리 황제께서 돌아가시기 직전에 정한에게 조서를 내려 태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