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극례
등극례 (登極禮)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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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명칭 | 등극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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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표기 | 登極禮 |
유형 | 의례 |
관련개념 | 가례 |
정의
황제나 왕이 한 나라의 군주(君主)로 등극하는 의식을 규정한 것이다. 조선부터 대한제국까지 총27명의 왕과 황제가 존재했는데, 특히 고종은 조선의 왕으로 등극했다가 다시 대한제국 황제로 등극한 이력을 갖는다. 고종의 황제 등극의례 기록은 『고종대례의궤』로 남아있다.
내용
등극(登極)의 개념과 유형
‘등극(登極)’은 ‘지극한 곳에 오른다’는 의미이다. 같은 뜻으로 ‘즉위(卽位)’가 있는데, 이는 ‘자리에 나아간다’는 의미이다. 등극과 즉위 모두 지극히 높은 자리에 위치하는 것을 의미한다. 때문에 등극례에는 군주의 자리를 나타내는 어좌(御座)를 준비했다가 새 군주가 어좌에 않는 방식으로 의식이 진행된다. 어좌 외에 등극례에 꼭 필요한 것은 선왕(先王)의 교서(敎書)와 군주의 신분을 나타내는 인장(印章), 그리고 면복(冕服)이다. 전통시대 군주로 등극하는 유형은 창건(創建), 선위(禪位=讓位), 복위(復位), 사위(嗣位), 반정(反正) 등이 있다. 이 중 가장 대표적인 것은 사위로, 선왕이 사망한 상태에서 다음 왕이 등극하는 것이다.
등극의례 복식
군주는 면복(冕服)을 입는다. 황제는 12류(旒) 면관(冕冠)에 12장문이 그려진 면복 상의와 면복 하상이고, 왕은 9류 면관에 9장문이 그려진 면복 상의와 면복 하상이다. 단, 조선에서는 면복을 갖추지 못하는 경우에 다른 옷으로 대체하기도 하였다. 조선의 왕이 등극례에 면복을 입은 것은 문종(文宗)때부터이고, 그 전에 정종(定宗)은 원유관복(遠遊冠服)인 원유관에 강사포를 입었다. 문종은 조선 최초로 사위(嗣位)의 방식으로 등극한 사례인데, 때문에 이때 상례(喪禮)를 치르는 중간에 군주로 등극할 때의 의식과 복식에 관해 논의하고 결국 의주(儀註)를 마련하게 된다. 선왕이 사망하여 제5일까지 염습(斂襲)을 마치면 제6일에 왕세자 등이 상복(喪服)을 갖추는 성복(成服)을 하는데, 성복 후에 다시 길복(吉服)인 면복으로 갈아입고 왕으로 등극을 하고, 같은 날 다시 상복으로 갈아입는 것으로 의식이 정리된다. 이 때 마련한 의식은 조선시대 내내 유지된다. 이 외, 반정으로 등극한 중종은 익선관복(翼善冠服)인 익선관에 곤룡포 차림으로 의례를 거행했다.
대한제국 황제 등극의례와 복식
대한제국 황제 등극례는 1897년 양력 10월 12일(음력 9월 17일)에 거행된 고종의 사례에서 볼 수 있다. 고종은 원구단(圜丘壇)에서 천지(天地)에 대한제국 개국을 고하는 고유제(告由祭)를 지낸 후, 바로 그 자리에서 황제 등극의례를 행한다. 등극의례는 고종이 금(金)으로 만든 어좌에 앉고, 영의정이 황제의 대례복인 12장 면복을 입힌 후, 황제의 옥새(玉璽)를 바치는 순서로 진행된다. 조선시대에 면복은 왕이 의례 장소로 나올 때 입고 나왔으므로 의례 본행사의 의식절차에 사용하지 않았지만, 대한제국 황제 등극의례에서는 면복(冕服)을 입히는 의식이 추가된 것이다. 따라서 고종이 고유제를 지내고 어좌에 앉기까지는 조선의 왕으로서 입었언 9류(旒) 면관(冕冠)에 9장문이 그려져 있는 면복 상의와 면복 하상을 입고, 의례 중간에 12장문이 그려진 면복 상의와 면복 하상으로 갈아입은 것을 알 수 있다. 영의정이 옥새까지 바친 후 고종은 악차(幄次)로 들어가 면복을 잘 갖춰입고 나왔다. 이후부터 모든 의식에 고종은 황제의 대례복을 입는다.
황제 등극의례 전후의 복식
조선의 왕이었던 고종은 1897년 양력 10월 12일(음력 9월 17일)에 대한제국 황제 등극의례를 거행한다. 본의식 전후로 여러날에 걸쳐 부대의식을 거행하는데, 이들 부대의식에 황제 등극 전에는 조선의 왕으로써의 복식을 입고 황제 등극 후에는 황제로써의 복식을 입는다. 10월 9일 신하들의 충성 서약을 받는 친림서계의(親臨誓戒儀)에는 9량(梁) 원유관(遠遊冠)에 강사포(絳紗袍)를 입었고, 11일 환구단(圜丘壇)의 고유제(告由祭)에 쓸 희생(犠牲)과 그릇을 살피는 친사원구시 성생기 성정확 시척개의(親祀圓丘時 省牲器 省鼎鑊 視滌漑儀), 12일 밤 원구단에서 천지에 대한제국의 개국을 고하는 고유제인 친사원구의(親祀圓丘儀)에는 9류(旒) 면관(冕冠)에 9장문이 그려진 면복 상의와 면복 하상을 입었다. 이에 비해 12일 원구단에서의 등극의례, 덕수궁 태극전에 돌아가서 행해진 백관의 축하를 받는 황제어태극전 수백관하표의(皇帝御太極殿 受百官賀表儀), 황후 및 황태자를 책봉하는 책황후의(冊皇后儀)와 책황태자의(冊皇太子儀)에는 12류 면관에 12장문이 그려진 면복 상의와 면복 하상을 입었고, 13일의 조칙 반포의식인 반조의(頒詔儀), 14일 헌종의 계비 남양홍씨인 명헌태후(明憲太后)에게 태후(太后) 인장[寶]을 올리는 의식인 명헌태후상보의(明憲太后上寶儀)와 황태자비 책봉의식인 책황태자비의(冊皇太子妃儀), 황태자비의 알현을 받는 황태자비조알의(皇太子妃朝謁儀) 등에 모두 통천관(通天冠)과 강사포를 입었다.
-단국대학교 전통의상학과 교수 최연우-
지식 관계망
관계정보
항목A | 항목B | 관계 | 비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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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극례 | 친림서계의 | A는 B를 포함한다 | A dcterms:hasPart B |
등극례 | 친사원구시 성생기 성정확 시척개의 | A는 B를 포함한다 | A dcterms:hasPart B |
등극례 | 친사원구의 | A는 B를 포함한다 | A dcterms:hasPart B |
등극례 | 등극의 | A는 B를 포함한다 | A dcterms:hasPart B |
등극례 | 황제어태극전 수백관하표의 | A는 B를 포함한다 | A dcterms:hasPart B |
등극례 | 책황후의 | A는 B를 포함한다 | A dcterms:hasPart B |
등극례 | 책황태자의 | A는 B를 포함한다 | A dcterms:hasPart B |
등극례 | 반조의 | A는 B를 포함한다 | A dcterms:hasPart B |
등극례 | 명헌태후상보의 | A는 B를 포함한다 | A dcterms:hasPart B |
등극례 | 책황태자의 | A는 B를 포함한다 | A dcterms:hasPart B |
등극례 | 황태자비조알의 | A는 B를 포함한다 | A dcterms:hasPart B |
고종 | 등극례 | A는 B를 거행하였다 | A ekc:participates B |
백관 | 등극례 | A는 B를 참여하였다 | A ekc:participates B |
순종 | 등극례 | A는 B를 참여하였다 | A ekc:participates B |
참고문헌
인용 및 참조
- 『대한예전(大韓禮典)』
-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
- 국립고궁박물원 엮음, 『대한제국 잊혀진 100년 전의 황제국』, 민속원, 2010.
- 김문식, 「高宗의 皇帝 登極儀에 나타난 상징적 함의」, 『조선시대사학보』 37, 조선시대사학회, 2006.
- 김문식, 「장지연이 편찬한 『대한예전』」, 『문헌과 해석』 35, 문헌과 해석사, 2006.
- 김용숙, 『조선조 궁중풍속 연구』, 일지사, 2000.
- 김지영ㆍ김문식 외 4명, 『즉위식, 국왕의 탄생』, 돌베개, 2013.
- 이민원, 『한국의 황제』, 대원사, 2001.
- 이욱, 「대한제국기 환구제(圜丘祭)에 관한 연구」, 『종교연구』 30, 한국종교학회, 2003.
- 임민혁, 「대한제국기 大韓禮典의 편찬과 황제국 의례」, 『역사와 실학』 제34집, 역사실학회, 2007.
- 전통예술원 음악사료강독회, 『(국역) 高宗大禮儀軌』, 민속원, 20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