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중기록화관 개관

당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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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미정 (토론 | 기여) 사용자의 2017년 3월 2일 (목) 00:11 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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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의(唐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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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명칭 당의(唐衣)
이칭별칭 당고의(唐古衣), 당저고리(唐赤古里), 당한삼
착용신분 왕실, 궁중, 반가, 서민
착용성별 여성



정의

  • 저고리 위에 입는 대표적인 여성 예복의 하나.

착용신분과 착용상황

  • 궁중에서 모든 계급의 여성의 소례복으로 각종 궁중 예식과 명절, 그리고 절기에 따라 일년 내내 소재와 색채 그리고 제작법을 달리해 가며 입혀졌으며, 당의는 일반 여인들도 착용하였음.
  • 평상시에도 주로 착용, 혼례복이자 상례의 염습의, 제례에서도 착용되어야 하는 논의가 있을 정도로 다양한 의식에서 두루 착용할 수 있는 일상 예복.

복식구성

기본 정보

유래

  • 조선후기 학자들의 기록에서는 당의의 기원을 중국으로 보고 있으나,[4] 현재는 대체로 조선 전기의 옆트임장저고리에서 변화한 것으로 보고 있음.[5]

기본 형태

  • 저고리와 달리 길이가 길고, 겨드랑이 아래의 긴 트임이 있으며, 앞뒤자락과 도련(밑단)이 둥근 곡선의 형태.
  • ‘저고리’로 불릴 만큼 저고리와 같은 구성을 이루고 있어 깃과 고름‧섶이 있고, 소매의 형태 또한 다른 예복과는 다르게 저고리 소매처럼 좁으며, 예복 소매에 달리는 한삼과 같이 당의의 소매 끝에는 흰색 거들지가 달리고 가슴에는 보(補)흉배(胸褙)를 담.
  • 당의의 깃은 저고리의 깃이 둥근 깃으로 변화하는 조선 말기에도 당코깃을 고수.

시대별 형태 및 특징

① 조선전기[7]

  • 옆트임 장저고리는 길이가 70~82cm 정도.
  • 길의 반 정도를 금선단으로 장식한 당저고리, 거들지형 끝동이 부착된 장저고리, 민저고리 형태의 장저고리 등의 형태.
  • 민저고리 형태의 장저고리는 명주나 무명의 소박한 소재를 사용하고 깃‧고름‧끝동에 어떠한 장식도 보이지 않아 의례용이라기 보다는 일상복으로 추정.

② 17세기~18세기[9]

  • 이전 시대의 장저고리에 비해 화장이 짧아지고 품이 좁아지고, 소매는 통수형.
  • 대부분의 당의들은 소매 끝에 넓은 거들지나 한삼을 부착.
  • 깃의 형태는 목판깃과 당코깃이 혼합된 당코목판깃으로 임진왜란 직후의 제도를 반영, 깃 너비의 절반 정도의 넓은 동정이 달려있음.
  • 고름은 모두 자주색으로 앞 시기에 비해 길어졌으나 넓지 않은 편.

③ 18세기 중반~19세기[12]

  • 품‧진동‧배래가 더욱 좁아지고 곡선화.
  • 앞과 뒤의 도련은 진동선에서 직선으로 내려와 아래쪽에서 양끝이 버선코처럼 곡선을 이룸.
  • 깃은 모두 당코목판깃 형태이며 깃 너비도 전시기에 비해 좁아짐.

④ 20세기[15]

  • 19세기 당의와 크게 다르지 않아 진동이 넉넉하고 소매배래는 진동에서 소매길이의 중간지점까지 수평을 이루다 수구 쪽에서 급격한 곡선을 이루며 줄어들고, 깃의 형태는 당코둥그레깃.
  • 이 시기도 홑당의겹당의, 두벌당의 등 구성에 따른 다양함.

관련항목

노드 관계 노드
당의 관계 관련노드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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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의 관계 관련노드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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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주석

  1. 『왕실문화도감』 p. 134.
  2. 『왕실문화도감』 p. 201.
  3. 국립고궁박물관 소장.
  4. 그 예로는 송문흠(宋文欽, 1710~1752)의 『한정당집(閒靜堂集)』, 정약용(丁若鏞, 1762~1836)의 『여유당전서(與猶堂全書)』, 박규수(朴珪壽, 1807~1876)는 『거가잡복고(居家雜服考)』 등이 있다.
    Quote-left.png 이른바 장배자(長背子)라는 것은 긴소매와 양쪽 옷자락이 서로 덮이고 양쪽 겨드랑이를 꿰매지 않아 지금 장부의 긴저고리와 대략 같으니 조금 짧으면 단배자(短背子)가 되는 것이니 지금의 당의이다.( 『閒靜堂集』 卷7, 「雜著, 婦人服飾攷」, “其所謂長背子, 引爲長袖, 兩裾相掩, 兩腋不縫者, 與今丈夫長襦略同, 稍短之則當爲短背子, 卽今之唐衣也.”) Quote-right.png
    출처:


    Quote-left.png 『상례비요(喪禮備要)』에서 여자의 상복은 원삼을 사용하는데, 혹은 두의(頭衣)나 장오자(長襖子)를 입기도 한다. 〇내가 생각건대, 화씨의 예에 “부인의 예복은 대의와 하피를 함께 입는데, 혹은 배자와 긴 저고리를 입기도 한다.”라고 하였는데, 하피라는 것은 우리나라의 원삼으로 의심되며, 배자라는 것은 우리나라의 당의로 의심된다【앞자락과 뒷자락이 서로 연결되지 않는다.】.( 『與猶堂全書』 第3集 禮集1 卷6, 「喪禮四箋 卷6, 喪具訂3, 婦人上服」, “ 『備要』女喪用圓衫, 或蓋頭衣長襖子. 〇鏞案華氏禮云; ‘婦人禮服, 合用大衣霞帔, 或用背子長襖.’ 其云霞帔者, 疑我邦之圓衫也, 其云背子者, 疑我邦之唐衣也【前裾後裾不相連.】”) Quote-right.png
    출처:


    Quote-left.png 지금 사람들은 모두 당의가 부인의 예복이라고 이른다. 그 제도 또한 녹색이고 좁은 소매에 옆을 트며 길이는 배를 가릴 정도인데 또한 어디서부터 기원하였는지 알 수 없고 이것은 예에 근거가 없다【생각건데, 원삼과 당의의 제도는 모두 근본이 없어 이른바 당의라는 것은 당나라 때의 부인의 편복이었는데 우리나라 풍속이 우연히 그것을 본떠 마침내 당의라고 이름하게 된 것이다.】( 『居家雜服考』, 「內服」, “其一, 今人皆謂唐衣是婦人禮服, 其制亦綠色爲之窄袖缺骻, 長可掩服. 亦未知起自何, 是於禮無據【按圓衫唐衣之制, 俱無原委, 所謂唐衣者, 似是唐時婦人便服, 而東俗偶然放之, 遂名唐衣也.】”) Quote-right.png
    출처:

  5. 그 예로는 복식학자인 석주선, 이경자, 유송옥 등이 있다.
    • 석주선
    Quote-left.png 당의는 본래 당나라 유제(遺制)로서 기본형은 그대로이면서 소매가 넓어지고 짧아졌다는 정도로서 근세에까지 전해지고 있다. 아직 우리들 귀에 익숙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당의‧당혜‧저고리 깃과 섶에서 볼 수 있는 당코 등은 그 예가 되겠다.”(석주선(1971) 한국복식사. 보진재: 경기도. p. 122.) Quote-right.png
    출처:


    • 이경자
    Quote-left.png 당의는 역대 가례도감의궤의 행렬도나 회화 자료의 분석을 통해 왕조 초의 장유(長襦)가 변형된 국속옷이라고 해야 옳다.”(이경자(1982) 우리 의생활의 전통양식. 傳統的 生活樣式의 硏究(中). p. 165.) Quote-right.png
    출처:


    • 유송옥: 중요민속자료 제 3호인 광해군비 중궁 유씨의 양 옆이 트인 긴 저고리 유물을 근거
    Quote-left.png 둔부를 가릴 정도의 저고리의 길이가 점차 시대가 내려올수록 길어지고 양옆이 트여 당의와 같아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전후반기 가례도감 반차도에 보이는 저고리의 변천은 광해군비 중궁 유씨의 저고리와 같은 형(形)의 저고리가 점차 길어지고 그에 따라 양옆의 트임도 깊어져 오늘날의 당의제가 성립됨을 알려준다.”(유송옥(1991) 조선왕조 궁중의궤 복식. 수학사: 서울. p. 399.) Quote-right.png
    출처:

  6. 단국대학교석주선기념박물관 소장. <문화재대관2-복식, 자수편> p. 105.
  7. 김은희(2007) 朝鮮時代 唐衣 變遷에 관한 硏究. 석사학위 논문, 단국대학교. pp.65~72.
  8. 단국대학교석주선기념박물관 소장. <名選 下> p. 126.
  9. 김은희(2007) 朝鮮時代 唐衣 變遷에 관한 硏究. 석사학위 논문, 단국대학교. p. 93.
  10. 경기도박물관 소장. <출토복식 명품선> p. 108.
  11. 단국대학교 석주선기념박물관 소장. <名選 下> p. 127.
  12. 김은희(2007) 朝鮮時代 唐衣 變遷에 관한 硏究. 석사학위 논문, 단국대학교. pp. 93~94.
  13. 단국대학교 석주선기념박물관 소장. <名選 下> p. 128.
  14. 단국대학교 석주선기념박물관 소장. <名選 下> p. 132.
  15. 김은희(2007) 朝鮮時代 唐衣 變遷에 관한 硏究. 석사학위 논문, 단국대학교. p. 94.
  16. 국립고궁박물관 소장. <영친왕일가복식> p. 64.
  17. 국립고궁박물관 소장. <朝鮮時代 唐衣 變遷에 관한 硏究> p. 4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