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산비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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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산비명(四山碑銘)
대표명칭 사산비명
한자표기 四山碑銘
유형 비문
저자 최치원(崔致遠)
편자 최치원(崔致遠)
시대 통일신라



정의

통일신라 말에 최치원(崔致遠, 857-?)이 지은 비문 중, 가치가 높은 4개의 비문을 뽑아 엮어 만든 책.

내용

네 편의 비문은 ① 충청남도 보령시 성주면 성주리 성주사 터에 있는 숭엄산성주사대낭혜화상백월보광탑비명(崇嚴山聖住寺大朗慧和尙白月葆光塔碑銘: 국보 제8호), ② 경상남도 하동군 화개면 운수리 쌍계사 경내에 있는 지리산쌍계사진감선사대공령탑비명(智異山雙溪寺眞鑑禪師大空靈碑銘: 국보 제47호), ③ 경상북도 경주시 외동면 말방리 대숭복사에 있었던 초월산대숭복사비명(初月山大崇福寺碑銘), ④ 경상북도 문경시 가은면 원북리 봉암사 경내에 있는 희양산봉암사지증대사적조탑비명(曦陽山鳳巖寺智證大師寂照塔碑銘: 보물 제138호)을 가리키며, 위의 네 군데 산 이름을 취하여 일반적으로 ‘사산비명’이라 일컫는다.

네 비 모두 왕명에 의해 찬술되었으며, 최치원이 당나라에서 귀국한 뒤로부터 은거하기 이전에 걸쳐 찬술되었다. 현재 대숭복사비를 제외한 세 비가 비교적 양호한 상태로 보전되어 있으며, 임진왜란 때 절과 함께 파괴된 것으로 알려진 대숭복사비는 1931년 이후 그 잔편(殘片)이 몇 차례 발굴되었다. 진감선사비와 대숭복사비는 최치원이 직접 글씨까지 썼으며, 대낭혜화상비는 화상의 종제(從弟)인 최인연(崔仁渷, 뒤에 崔彦撝로 개명)이, 지증대사비는 분황사(芬皇寺) 승려 혜강(慧江)이 썼다. 『사산비명』은 우리나라 금석문의 신기원을 여는 웅문거편(雄文巨篇)으로서, 화려한 수사(修辭)에다 함축미와 전아(典雅)함을 잘 갖추고 있다.[민백]

4개의 비문 모두 사륙변려문(四六騈儷文)이라는 문체로 기록되어 있어서 읽기 어렵다. 내용이 쉽지 않아 예로부터 많은 해설서가 나왔는데, 광해군 때 철면노인(鐵面老人)이 『사산비명』이란 이름으로 낸 주석서는 현존하는 최고의 해설서이자 가장 정확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두산]

지식관계망

관련항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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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