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성 라디오 A-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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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성 라디오 A-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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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성 라디오 A-501", 『문화재청』online.
대표명칭 금성 라디오 A-501
유형 등록문화재
시대 현대
지정번호 경기도 등록문화재 제559-1호, 서울특별시 등록문화재 제559-2호
지정일 2013년 8월 27일
소장처 (주)LG(1호), 대한민국역사박물관(2호)


정의

금성사에서 제조한 우리나라 최초의 진공관식 라디오.

내용

구성

A-501이라는 명칭은 "교류(AC)를 이용하여 진공관 다섯 개로 만들어진 라디오 1호"라는 뜻이다.
너비는 40cm, 폭과 높이는 각각 17cm로, 내부에 5개의 진공관과 5인치 크기의 스피커가 장착되어 있다. 진공관, 스피커, 볼륨 조절기 등은 수입 부품을 사용하였고, 전원 스위치, 트랜스 등은 국산 부품을 사용하였다.
방송 주파수 선택은 다이얼 조정 방식으로, 지역방송 및 해외방송도 청취할 수 있는 기능을 가졌으며, 당시 한국의 열악한 전기 상황을 고려하여 최소 50볼트의 낮은 전압에서도 작동하도록 설계되었다.

설계 및 출시

미군 PX에서 라디오를 수리하는 '화평전업사'를 운영하던 기술자였던 김해수(金海洙)의 주도로 우리나라 최초의 라디오인 금성 라디오 A-501이 탄생하였다.
김해수는 일본 회사 산요의 최신형 라디오인 라디오 SF-78을 모델로 삼아 설계하였는데, 락희화학공업사가 플라스틱 외형을 만들었고, 우리나라 최초의 전자 회사인 금성사가 라디오 생산을 주도했다.
1959년 11월 15일에 출시되었는데, 첫해 생산량은 87대로, 백색, 민트색 등 5가지 색상으로 출시되었다. 가격은 2만환[1]이었다.

발전

A-501은 일제 라디오나 미제 라디오보다는 가격이 저렴하였으나, 초기에는 불량률이 너무 높았기 때문에 그들의 상대가 되지 못했다.
그러나 1961년 이후 박정희 대통령이 내수 경제 활성화를 위해 농어촌 라디오 보내기 운동을 시작하면서 라디오 생산량이 증가하였고, 품질도 개선되어 국내시장에서 자리잡게 되었다.

지식 관계망

관계정보

항목A 항목B 관계 비고
금성사 금성 라디오 A-501 A는 B를 제작하였다 1959년 11월 15일
금성 라디오 A-501 농어촌 라디오 보내기 운동 A는 B와 관련이 있다 1962년 7월 14일
농어촌 라디오 보내기 운동 박정희 A는 B와 관련이 있다 1962년 7월 14일

시간정보

시간정보 내용
1959년 11월 15일 금성사금성 라디오 A-501을 제작하였다
1962년 7월 14일 박정희농어촌 라디오 보내기 운동을 주도하였다

공간정보

위도 경도 내용

시각자료

가상현실

갤러리

영상

  • 대한뉴스 제 244호-최초의 국산 라디오(게시일: 2015년 4월 9일)

주석

  1. 1원=10환으로, 원단위로 환산하면 2000원이다.
  2. "금성 라디오 A-501", 『문화재청』online.
  3. "라디오로 수신하는 근대 (2)", 『파워라이터 ON』online, 네이버 지식백과.
  4. "라디오로 수신하는 근대 (2)", 『파워라이터 ON』online, 네이버 지식백과.

참고문헌

인용 및 참조

  1. 웹 자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