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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성 칠장사 대웅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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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성 칠장사 대웅전
(安城 七長寺 大雄殿)
대표명칭 안성 칠장사 대웅전
한자표기 安城 七長寺 大雄殿
영문명칭 Daeungjeon Hall of Chiljangsa Temple, Anseong
시대 조선시대
지정번호 경기도 시도유형문화재 제114호
지정일 1983년 09월 19일
소장처 경기도 안성시 죽산면 칠장리 764
관련장소 안성 칠장사



정의

경기도 안성시 죽산면 칠장사(七長寺)에 있는 조선 후기의 불전.

내용

이 절은 고려말에 창건되었으나 조선 연산군 때 중창되고, 16세기에 여러 차례의 중수가 있었으며 마지막으로 고종 14년(1877)에 중건이 있었다.

이 대웅전의 건립연대는 미상이나 조선 후기에 세워져 몇 차례 중수를 거친 것으로 보인다. 정면 3칸 측면 3칸의 다포계 공포를 갖춘 맞배지붕 건물로, 이러한 건물형식은 조선 후기 소규모 사찰의 대웅전 건물의 공통적인 특징이다. 기단은 장대석을 5단으로 쌓았고, 원형 초석 위에 약간의 배흘림이 있는 원주를 세웠다. 공포는 내·외3출목이며 각 주간에 2구의 공간포를 짰다. 내부에 고주를 세우지 않고 대들보가 앞뒤의 기둥 위에 바로 걸리게 하였다. 천장은 빗반자와 우물천장으로 하고 불화, 연화문 등으로 채색하였다.[1]

1983년 9월 19일 경기도유형문화재 제114호로 지정되었다. 정면 3칸, 측면 3칸의 매우 오래된 양식이며 그 위에 세운 목조건물은 조선시대 말기에 다시 세워진 것으로 보인다.

기단은 4단의 장대석을 가지런히 쌓아 올렸으며 제일 윗부분과 아래 장대석의 사이는 깊은 홈을 파서 단을 구획하였다. 이 부분은 궁궐건축의 기단에서는 약간 턱을 두는 정도로 처리하는데 이 건물의 경우는 그 기법이 독특하다. 기단 중앙에 있는 계단의 좌우 우석은 위를 약간 둥글게 돌렸으며 우석 측면에는 구름 모양을 돋을새김해 넣었다.

주춧돌은 전면의 4기와 제2열의 양 측면의 2기는 잘 다듬은 것이고 나머지 것은 자연석이다. 전면의 다듬은 주춧돌들은 전체를 네모나게 가공하고 위에 원형의 주조를 두었으며 주좌에는 둥글게 홈을 넣었고, 고맥이까지 뚜렷이 만들었다. 주춧돌의 형상을 보아 칠장사의 창건 때 만들어진 것으로 짐작할 수 있다. 이러한 형태의 주춧돌은 대개 통일신라시대에서 고려시대 중기까지 흔히 나타나는 것이다.

건물은 약간의 배흘림기둥을 세우고 다포식의 공포를 짰는데, 공포의 형상은 조선시대 말기에 흔히 볼 수 있는 모습이다. 살미첨차가 수평으로 뻗으면서 그 끝에 연꽃을 조각한 장식이 가미되고 내부의 끝은 둥글게 다듬어져 있다. 지붕은 간단한 맞배지붕인데 지붕 용마루 양끝에 취두를 두었다. 법당 건물에 취두를 올려놓은 것은 대개 조선시대 말기 고종 때의 사찰에서 흔히 볼 수 있다. [두산]

안성 칠장사 대웅전(安城 七長寺 大雄殿)은 경기도 안성시 죽산면, 칠장사에 있는 조선시대의 건축물이다. 1983년 9월 19일 경기도의 유형문화재 제114호로 지정되었다.

칠장사 대웅전은 석가모니를 모시는 법당으로 조선 후기에 세워져 여러 차례 수리한 것으로 보인다.

앞면 3칸·옆면 3칸이며, 지붕은 옆면이 사람 인(人)자 모양인 맞배지붕이다. 기둥 위에서 지붕 처마를 받치는 공포가 기둥 위와 기둥 사이에도 있는 다포계양식으로 각 칸마다 2개의 공포를 설치했다. 내부 천장은 우물천장으로 불화와 연꽃무늬로 채색되어 있고, 중앙에는 불단이 있어 그 위에 석가삼존불이 모셔져 있다.

이러한 형식은 조선 후기 소규모 절의 대웅전 건물에서 볼 수 있는 특징이다.[위키]

정면 3칸, 측면 3칸의 다포식 맞배지붕건물.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114호. 왼쪽의 원통전과 더불어 나란히 남향으로 배치되어 있다. 기록에 따르면 원래 다른 곳에 세워져 있던 건물을 1828년(순조 28)에 옮겨다 세운 것이라 한다.

기단은 정면에서 볼 때 크기나 두께가 고르지 않은 장대석을 5겹 정도 포개 쌓은 형식으로 고려시대의 기단 축조 기법을 따르고 있다. 갑석은 댓돌 면보다 앞으로 약간 튀어나오게 설치한 다음, 밑면을 두번 궁굴려서 정성스럽게 가공하였다.

계단은 정면 중앙 한곳에만 가설되었는데 층급 9개 중 위에서 아래로 4단까지는 기단과 같은 시기에 만든 것이나, 그 아래 5개의 단은 후대에 첨가된 것이다. 소맷돌 갑석의 다듬기 기법을 보아도 현재의 계단이 두 차례에 걸쳐서 조성된 것임을 쉽게 알 수 있다.

주춧돌 가운데 정면의 네 기둥 주초와 우측면 제2 기둥 밑의 주초는 윗면에 2단 원형 기둥자리를 마련하고 있어서 통일신라 말에서 고려 초에 만들어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나머지 주초는 자연석을 그대로 놓은 덤벙주초여서 건물을 옮겨 지을 때 새로 마련된 것으로 보인다.

건물 내부 후면 중앙에는 평주열(平柱列)에 맞추어 굵기가 가는 고주 2개를 세우고, 그 사이에 후불벽(後佛壁)을 친 다음 여기에 기대어 목조 불단을 가설하고 삼존불상을 안치한 뒤 지붕 모양의 천개(天蓋)를 매달아 중앙 부분을 장엄하였다. 이러한 평면 구성은 물론 불단 앞쪽 마루를 모두 예불 공간으로 확보하려는 의도에서 나온 것으로서 15세기 이후 불전 건물에서 일반화된 형식이다.

창호를 정면 3칸과 좌우 측면의 앞툇간 그리고 후면 중앙간에 설치한 것도 조선 후기 불전에서 일반적으로 볼 수 있는 형식이다. 정면 기둥을 제외하면 나머지 기둥은 굵기도 제각각일 뿐 아니라 휜 나무를 간단하게 다듬은 뒤 그대로 활용한 것이어서 짜임새가 좋지 않다. 그러나 자연스러운 모습을 연출하여 재목 선택에 선풍(禪風)이 반영되었을 가능성도 보여 주고 있다.

앞쪽 공포(栱包)는 안팎 삼출목으로 외부 제공첨차 끝의 연꽃장식이나 그 위의 봉두조각, 그리고 내부 제공첨차의 운궁형(雲宮形) 등은 19세기의 작풍으로서, 이는 1828년 이건할 당시에 새로 첨가된 것으로 보인다. 반면에 뒤쪽 공포는 약간 뒤에 오는 양식적 특징을 보여 1857년(철종 8)의 중수 기록을 뒷받침해 주고 있다.[민백]

지식관계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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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항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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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각자료

가상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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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상

주석

  1. 한국문화유산답사회, 『답사여행의 길잡이 7 - 경기남부와 남한강』, 돌베개, 2012. 온라인 참조: "칠장사 대웅전", 답사여행의 길잡이: 경기남부와 남한강, 『네이버 지식백과』online.

참고문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