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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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호(金正浩)
"김정호",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online, 한국학중앙연구원.
대표명칭 김정호
한자표기 金正浩
생몰년 1804년 추정-1866년 추정
본관 청도(淸道)
고산자(古山子)
백원(伯元)·백원(百源)·백온(伯溫)·백지(伯之)
출생지 황해도 토산(兎山)
시대 조선
국적 대한민국
대표저서 대동여지도
성격 지리학자, 실학자
유형 인물


정의

조선 후기 대표적 지리학자이자, 지도 제작자.

내용

가계와 생애

김정호의 본관은 청도(淸道)로 추정한다. 황해도에서 출생하였다고 한다. 생년은 그와 친교가 깊은 최한기(崔漢綺)(1803~1878)와 비슷한 연배로 추정하고, 몰년은 대동지지에서 발견된 마지막 역사적 사실의 연대를 기준으로 하여 추정한다. 생몰 연도, 고향, 주요 활동지, 본관, 가계 어느 것도 정확하게 알려진 것이 없다. 그의 후손들에 대해서도 별로 알려진 바가 없다.[1]

김정호에 대한 기록

김정호에 대한 기록은 『청구도』에 수록된 최한기의 「청구도제(靑邱圖題)」, 이규경의 『오주연문장전산고(五洲衍文長箋散稿)』에 수록된 「만국경위지구도변증설(萬國經緯地地球圖辨證說」과 「지지변증설(地志辨證說)」, 신헌의 『금당초고(琴堂初槁)』에 수록된 「대동방여도서(大東方輿圖序)」, 유재건의 『이향견문록(里鄕見聞錄)』에 수록된 「김고산정호(金古山正浩)」에 불과하다.

  • 유재건의 『이향견문록(里鄕見聞錄)』에 김정호에 대한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보아 중인 이하의 신분일 것으로 추정[2]할 수 있는데, 이향견문록은 조선 초기 이래의 하층계급 출신으로 각 방면에 뛰어난 인물의 행적을 기록한 문헌이기 때문이다.
Quote-left.png 김정호는 스스로 호를 고산자(古山子)라 하였는데, 공교한 재주가 많고 지리학에 관심이 있었다. 두루 찾아보고 널리 수집하여 일찍이 <지구도>를 제작하였고, 또 <<대동여지도>>를 만들었는데, 능란하게 그림을 그리고 새겨 인쇄해 세상에 펴냈다. 상세하고 정밀함이 고금에 견줄만한 것이 없는데, 내가 한 질을 구해 보았더니 진실로 보배라 여길만했다. 또 <<동국여지도>> 10권을 편비했는데, 미처 탈고하지 못하고 죽었으니 정말 애석한 일이다. 재주가 많아 그림도 잘 그리고 조각도 잘 했는데 특히 지리학에 깊이 빠져 지도와 지리지를 깊이 고찰하고 널리 수집하여 <<대동여지도>>를 만들었다. Quote-right.png
출처: 유재건, 『이향견문록』, 글항아리, 2008.


Quote-left.png (나의) 벗 김정호는 나이가 동관(童冠)일 때부터 지도와 지리지에 깊이 뜻을 두고 오랫동안 찾아 열람하여, 여러 방법의 장점과 단점을 자세히 살폈다. 매번 한가한 때를 만나 수집한 것을 세세하게 살펴 제작 방식을 견주어 보니 곧 눈금선(方罫)을 그려 넣음에 어쩔 수 없이 물을 자르고 산을 끊었으며, 여러 고을을 흩어 놓아 진실로 표(表)를 보고 경계를 살피기가 어려웠다···(중간 생략)···그 문제점을 개선하기 위해 전도(全幅)를 구역에 따라 나누었는데, 이것은 (중국 하나라의 시조가 된) 우왕이 정전(井田)을 구획한 것을 본받은 것이고, 가장 자리의 선에 글자를 쓴 것은 태평성대(昭代)를 (이룰 수 있게 하는) 달력(曆算)의 표시 방법을 모방한 것이다. Quote-right.png
출처: "김정호를 기억한 사람들", 김정호의 꿈, 대동여지도의 탄생, 『네이버 지식백과』online.


Quote-left.png 나(신헌)는 일찍이 우리나라 지도에 뜻을 두고 비변사규장각에 소장된 것, 오래된 집안에 좀먹다 남은 것들을 널리 수집하여 증정(證定)하고, 여러 본들을 서로 참고하고, 여러 책들에 근거하여 합쳐서 편입하였다. 이리하여 김백원군(김정호)과 그것을 모의하고 완성시키도록 위촉하였다. 증명하고 입으로 전해주어 수십 년 걸려 비로소 한 부를 만들었는데 모두 23권이다. Quote-right.png
출처: "김정호를 기억한 사람들", 김정호의 꿈, 대동여지도의 탄생, 『네이버 지식백과』online.


활동과 업적

청구도 제작

김정호의 첫 전국지도인 청구도는 기존 지도에 대한 비판의식으로부터 나왔다. 그는 기존 지도의 문제점에 대해서 지적하기를, 지도 위에 방안선을 그리다 보니 강을 자르고 산을 끊는 것을 피할 수 없으며, 여러 고을을 나누어 흩어 놓으니 표를 살펴도 경계를 알기가 어렵다고 하였다.
1834년(순조 34)에 필사본 전국지도로 만들어진 청구도는 분첩식으로 제작된 기존의 조선전도들과 차별화하여 보통의 책과 같은 장정을 선택하였다. 또 전국을 동서 22판, 남북 29층으로 나누어서 홀수 층의 지도를 제1책에 담고 짝수층의 지도는 제2책에 담았다. 두 책을 상하로 붙여 펼칠 경우에는 서로 인접한 두 층의 지도를 한꺼번에 볼 수 있도록 기획한 것이다. 또 일종의 색인지도에 해당하는 본조팔도주현도총목을 두어 보고자 하는 지역의 지도를 쉽고 빠르게 찾을 수 있도록 하였다.
내용적으로는 지도와 지지의 장점을 동시에 취할 수 있는 방법으로 지도에 역사지리정보를 기입하는 발상을 하였다. 즉 모든 고을마다 호구 수, 토지 면적, 군사의 총수, 세금으로 거두어들인 곡식의 총량, 한성까지의 거리 등을 기록하고, 중요한 역사적 사건이 있었던 곳에는 그 내용을 기록하였다.[3] 조선 후기 실학자 이규경은 김정호의 청구도에 대해 『오주연문장전산고(五洲衍文長箋散稿)』에서 아래와 같이 말했다.

Quote-left.png 최근에 김정호란 사람이 우리나라의 지도(청구도) 2권을 저술했다. 별도로 바둑판처럼 만들어 번호를 매기고, 고을의 경계를 그었다. 각 면마다 하나의 지도로 만들어 책에 넣었는데, 번호를 따라 취해 보면 눈앞에 나열되어 손바닥을 보듯 하니 헷갈림이 없게 되었다. 그 생각하는 바가 앞 사람들을 훨씬 뛰어넘고 정밀함이 평범함을 넘어섰다. Quote-right.png
출처: "김정호를 기억한 사람들", 김정호의 꿈, 대동여지도의 탄생, 『네이버 지식백과』online.


동여도지 저술

청구도를 제작한 즈음 동여도지도 만들기 시작한 것으로 보이는데, 김정호는 서문에서 '지도로 천하의 형세를 살필 수 있고 지리지로 역대 왕조의 역사를 알 수 있으니 이는 실로 나라를 다스리는 큰 틀이다.' 라고 밝힌 바와 같이 동여도지는 지도와 지지를 함께 엮은 지리지를 추구하였다. 이규경동여도지에 대해서 말하기를, 동국여지승람을 취해 잘못된 것을 고치고 시문을 삭제하여 없는 것의 소략함을 보충했으니 매우 해박하다고 하였다.[4]

대동여지도 제작

일반적으로 호칭되는 목판본의 『대동여지도』 22첩(帖)은 김정호가 1861년에 편찬·간행하고 1864년에 재간한 22첩의 병풍식(또는 절첩식) 전국 지도첩이다. 김정호는 우리나라 전체를 남북 120리 22층으로 나누고 동서 80리 간격으로 19판(版)으로 각 층에 해당하는 지역의 지도를 각각 1권의 책으로 접어서 엮었다. 1첩 한 면의 남북 길이가 약 30㎝이기 때문에 22첩을 모두 연결하면 세로 약 6.6m, 가로 4.0m에 이르는 초대형 조선전도가 된다. 크기 때문에 휴대와 열람에 어려운 단점을 극복하기 위해 전국을 동서와 남북 각각 80리와 120리의 동일 간격으로 나누어 최북단의 1층부터 최남단의 22층까지 22첩으로 분리하여 수록하여 병풍처럼 접고 펼 수 있게 한 것이다. 책으로 제본된 이전 시기의 지도와는 달리 첩을 펼쳐서 상하·좌우로 연결시켜 볼 수 있도록 고안된 지도로서의 특수성이 있다.[5]
또한, 청구도의 색인지도인 본조팔도주현도총목 대신에 각 첩에 수록된 고을의 이름을 표지에 적어 찾아보게 하는 방식으로 찾아보기 기능을 보완하였고, 12개의 기호를 사용하였던 청구도에 비해 22개의 기호를 사용함으로써 지도적 속성을 더욱 강화하였다. 내용적으로도 청구도가 기본정보에 대해 해동여지도 계통의 것을 거의 그대로 따른 반면에 목판본 대동여지도동여도와 마찬가지로 교정된 내용을 많이 반영하였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목판본으로 제작하여 보급성을 고려하였다.[6]
대동여지도에는 두 점의 서울지도를 수록함으로써 수도지역의 지도를 특화시켰다. 경조오부도는 조선의 수도를 관장하는 한성부의 관할 지역 전체를 대상으로 하는 광역의 서울지도이고, 도성도는 왕궁과 각종 관청 등 국가 중요시설이 집중되어 있는, 한성 성곽 내부의 시가지를 상세히 그린 지도이다. 대동여지도에 수록된 다른 지역보다 훨씬 큰 축척으로 제작되어 수도 지역의 상세한 지리정보를 전하고 있다.[7]

지식 관계망

관계정보

항목A 항목B 관계 비고
김정호 김태-김정호의 대동여지도 소재
김정호 대동여지도 제작
김정호 이향견문록 언급된 기록
김정호 청구도제 언급된 기록
김정호 금당초고 언급된 기록
김정호 오주연문장전상고 언급된 기록
김정호 청구도 제작
김정호 최한기 친분
김정호 김정희 친분

시간정보

시간정보 내용
1820년-1833년 김정호동여도 17첩을 제작하였다(추정)
1834년 김정호청구도 2책을 편찬하였다
1834년 김정호지구전후도를 판각하였다
1834년-1845년 김정호동여도지 20책을 편찬하였다
1834년-1845년 김정호동여편고 2책을 편찬 완료하였다
1834년-1845년 김정호수선전도를 간행하였다
1846년-1849년 김정호여지전도를 제작하였다
1850년-1856년 김정호대동여지도를 편찬하였다
1856년-1859년 김정호동여도를 편찬하였다
1861년 김정호가 목판본 22첩 대동여지도를 간행하였다

공간정보

위도 경도 내용

시각자료

가상현실

갤러리

영상

주석

  1. "김정호 (金正浩)", 『한국사콘텐츠』online, 국사편찬위원회.
  2. "유재건의...추정" : "김정호 (金正浩)", 『한국사콘텐츠』online, 국사편찬위원회.
  3. "김정호 (金正浩)", 『한국사콘텐츠』online, 국사편찬위원회.
  4. "김정호 (金正浩)", 『한국사콘텐츠』online, 국사편찬위원회.
  5. "대동여지도",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online, 한국학중앙연구원.
  6. "김정호 (金正浩)", 『한국사콘텐츠』online, 국사편찬위원회.
  7. "김정호 (金正浩)", 『한국사콘텐츠』online, 국사편찬위원회.

참고문헌

인용 및 참조

  1. 단행본
    • 국립중앙도서관, 『김정호의 꿈, 대동여지도의 탄생』, 국립중앙도서관, 2011.
*한국문화콘텐츠닷컴 "김정호의 생애", 2016년 12월 26일 확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