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탑비문 작업노트

지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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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사현 (토론 | 기여) 사용자의 2017년 8월 21일 (월) 16:15 판 (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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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종(智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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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명칭 지종
한자 智宗
생몰년 930년(태조 13)-1018년(현종 9)
시호 원공(圓空)
혜월(慧月)
법호 적연(寂然)
탑호 승묘(勝妙)
신칙(神則)
성씨 이씨(李氏)
본관 전주(全州)
승탑 원주 거돈사지 원공국사탑
승탑비 원주 거돈사지 원공국사탑비



정의

고려시대의 승려.

내용

가계와 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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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님의 휘(諱)는 지종(智宗)이고, 자(字)는 신측(神則)이며, 속성(俗姓)은 이씨(李氏)로 전주(全州) 출신이다. 아버지의 이름은 행순(行順)이니, 항상 의리를 품고 어진 마음을 가지며 겸손하고 욕심이 없었으니 마치 개제(愷悌)한 군자(君子)가 항상 복을 구하되 자신에게 돌리지 아니하며, 마음이 영화(榮華)에 유혹되지 않는 구루장인(痀僂丈人)이 스스로 정신을 응집(凝集)하여 도덕이 높았으니 그 사람과 같았다. 어머니는 김씨(金氏)니 그 칭송 받음이 양홍(梁鴻)의 처(妻)와 같고, 그 명망은 노래자(老萊子)의 부인과 같았다.

부부간의 금실은 그 아름다움이 봉점(鳳占)에 나타났고, 자손의 번연(蕃衍)함은 그 경사스러움이 초영(椒詠)을 표하였다. 일찍이 어느 날 밤 금찰(金刹)의 한 간주(竿柱)의 끝 아득히 높은 하늘 구름 속에 백설(白雪)과 같은 흰 눈썹을 가진 스님이 손을 들어 가리키며, “이는 대위덕명왕(大威德明王)이니 너는 이를 몸에 잘 모시라.”고 하는 꿈을 꾸고서 그로 말미암아 곧 임신하였다. 그 후 해산할 때까지 불전에 부지런히 기도하였을 뿐 아니라 오신채(五辛菜)와 고기는 일체 먹지 않으면서 태교(胎敎)를 하였으며, 산기(産期)가 되어 탄생하였으니 그 자태(姿態)는 기의(岐嶷)함을 드러냈고 성품 또한 영특함을 타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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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출가수행

937년(태조 20) 개경의 사나사(舍那寺)에 머물고 있던 인도 승려 홍범삼장(弘梵三藏)에게서 머리를 깎았다. 홍범삼장이 그 해에 인도로 돌아가자 광화사(廣化寺)의 경철(景哲)에게 수업하였고, 946년(정종 1)영통사(靈通寺)의 관단(官壇)에서 구족계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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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 여덟살 때 타고 놀던 죽마(竹馬)를 훌쩍 던져버리고 진승(眞乘)을 탐구하려는 마음만이 있었으니, 홀연히 결혼하여 자식을 낳고 세상에서 살 생각을 단념하고 불교를 탐구할 생각을 굳혔다. 그 때 마침 인도의 홍범삼장(弘梵三藏)이 사나사(舍那寺)에 와서 있었으므로 그를 찾아가 스승이 되어 달라고 간청하였고, 마침내 허락을 받아 삭발하고 득도(得度)하였다. 그 때부터 스님을 시봉(侍奉)하면서 바야흐로 경(經)을 배우기 시작하였다. 그로부터 얼마를 지나 홍범(弘梵)이 바다를 건너 중인도(中印度)로 돌아가게 되었으니 따라가지 못하고 처소를 옮겨 황화사(廣化寺) 경철화상(景哲和尙)을 모시면서 부지런히 수업하였다. 그 배우는 바가 남들보다 뛰어나 공부의 진취가 배나 되어 다른 사람이 십분(十分)을 하면 스님은 천분(千分)을 넘었으니, 마치 푸른색이 쪽풀에서 나왔으나 그 빛이 쪽보다 더 푸르며, 돌을 물에 던지면 쉽게 그 깊은 밑바닥에 이르는 것과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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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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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덕(顯德) 초년(初年)에 광종대왕(光宗大王)이 왕위에 올라 크게 불교를 숭앙하였으며, 설영(雪嶺)의 선(禪)을 밝혀 하여금 신통묘용(神通妙用)을 펴되 단하(丹霞)의 진불(眞佛)을 찾아내기 위하여 승과(僧科)를 명시하였다. 스님은 당당하게 의논의 광장에 들어가 중론(衆論)을 꺾고 앞장서 진리의 세계를 탐색하였으며, 또한 여러 가지의 뛰어난 예능을 갖추었을 뿐 아니라, 높은 도덕으로 그 이름이 더욱 빛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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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구법유학

(귀국 및) 활동

입적

지식관계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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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