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주 정토사지 법경대사탑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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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주 정토사지 법경대사탑비 (忠州 淨土寺址 法鏡大師塔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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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명칭 | 충주 정토사지 법경대사탑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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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문명칭 | Stele for Buddhist Monk Beopgyeong at Jeongtosa Temple Site, Chungju |
한자 | 忠州 淨土寺址 法鏡大師塔碑 |
이칭 | 정토사 법경대사 자등탑비 |
주소 | 충청북도 충주시 동량면 하천리 177-6 |
문화재 지정번호 | 보물 제17호 |
문화재 지정일 | 1963년 1월 21일 |
찬자 | 최언위(崔彦僞) |
서자 | 구족달(仇足達) |
각자 | 광예(光乂), 장초(壯超), 행총(幸聰), 행초(行超) |
서체 | 해서(楷書) |
승려 | 현휘(玄暉) |
건립연대 | 943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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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충청북도 충주시 동량면 정토사지(淨土寺址)에 있는 신라말 고려초의 승려 법경대사 현휘(法鏡大師 玄暉, 879-941)의 탑비.
내용
개요
정토사 터에 있는 신라말 고려초의 선사 법경대사 현휘(法鏡大師 玄暉)의 비. 고려초의 문인 최언위(崔彦撝)가 짓고 제액(題額)은 태조가, 비문은 구족달(仇足達)이 비면에 정간(井間)을 치고 해서(楷書)로 써서 광예(光乂)·장초(壯超)·행총(幸聰)·행초(行超)가 새겨서 대사가 입적한 2년 후인 943년(태조 26)에 세웠고 후면은 944년에 썼다.[1]
원래는 비의 자리가 충주댐 건설로 수몰되어 인근에 옮겨 세워져 있는데, 귀부(龜趺)와 이수(螭首)를 갖춘 전형적인 양식이며 비신은 상태가 양호하나 군데군데 총자국이 패여 있다.[2]
비문은 41행에 1행 89자의 구성으로 된 대형 비이다.[3]
비문
전면
비문 내용은 법경대사가 전주에서 태어나 출가한 후 당에 건너가 도건(道虔)의 법을 받고 돌아와 태조에 의해 국사 대우를 받고 정토사(淨土寺)에 머물며 이 지역 호족 유권열(劉權說)의 귀의를 받고 활동하다 입적한 사실을 기술하였다.
후면
후면에 도속(道俗)의 많은 사람들을 열거하여 대덕, 대통 등 승려와 좌승, 원보, 원윤, 좌윤, 그리고 지방 자체의 집사부, 병부, 창부 등의 조직을 확인할 수 있다. 마지막에 원주, 전좌, 사, 직세, 도유나의 확대된 삼강직이 보인다.[4]
지식관계망
"그래프 삽입"
관련항목
항목A | 항목B | 관계 | 비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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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주 정토사지 법경대사탑비 | 충주 정토사지 | A는 B에 있다 | |
충주 정토사지 법경대사탑비 | A는 B의 이름을 지었다 | ||
충주 정토사지 법경대사탑비 | 현휘 | A는 B를 위한 비이다 | |
충주 정토사지 법경대사탑비 | 최언위 | A는 B가 비문을 지었다 | |
충주 정토사지 법경대사탑비 | 구족달 | A는 B가 비문을 썼다 | |
충주 정토사지 법경대사탑비 | 광예, 장초, 행총, 행초 | A는 B가 비문을 새겼다 | |
충주 정토사지 법경대사탑비 | A는 B와 관련있다 |
시각자료
갤러리
주석
- ↑ "정토사법경대사자등탑비", 금석문세부정보,
『한국금석문 종합영상정보시스템』online , 국립문화재연구원. - ↑ "정토사법경대사자등탑비", 금석문세부정보,
『한국금석문 종합영상정보시스템』online , 국립문화재연구원. - ↑ "정토사법경대사자등탑비", 금석문세부정보,
『한국금석문 종합영상정보시스템』online , 국립문화재연구원. - ↑ "정토사법경대사자등탑비", 금석문세부정보,
『한국금석문 종합영상정보시스템』online , 국립문화재연구원.
참고문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