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중기록화관 개관

답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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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nica-jang (토론 | 기여) 사용자의 2017년 6월 2일 (금) 23:52 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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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호
(褡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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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명칭 답호
한자표기 褡𧞤
이칭별칭 더그레, 加文剌
착용신분 , 왕세자, 왕세손, 문무백관
착용성별 남성



정의

고려 후기부터 조선 후기까지 관리들이 상복(常服) 안에 입거나 사대부의 겉옷 위에 덧입던 옷으로 조선 중기까지는 직령과 같은 형태에 소매만 반수의 였지만 17세기를 지나면서 소매가 없어진다.[1]

내용

복식구성

착용신분

, 왕세자, 왕세손, 문무백관 등이 착용한다.

착용상황

조선시대 답호는 조선 중기까지 왕의 상복과 관리들의 단령 안 받침옷이나 철릭, 직령 등 포 위에 덧입었다.

형태

고려시대 답호는 곧은 깃에 반소매가 팔꿈치에 이르며, 옷길이는 발목까지 오고 옆선에는 안쪽으로 접혀 들어가 고정된 다중 주름의 무가 달려있으며 옆트임이 있다. 조선시대에 답호는 고려시대와 같이 반수의로 곧은 깃 교임형에 옆선에 무가 달렸고 옆트임이 있다. 기본형태는 직령과 같되, 소매 길이가 짧은 것이 다르다. 답호에는 광다회 등의 실띠를 둘렀는데, 당상관 이상은 붉은 색을 사용하였고 그 이하는 청색 계통의 것을 사용하였다. 직령과 유사한 형태의 답호는 임진왜란 직후부터 서서히 사라지게 된다. 그러나 '답호'라는 명칭은 조선 후기에도 간편한 덧옷용 포를 지칭하는데에 사용되어 그대로 유지되면서 옷의 형태상 변화가 나타난다. 즉 소매와 직사각형 무가 사라지게 된다. 이때의 답호 형태에 대해 『사례편람(四禮便覽)』에는 '무수창의(無袖氅衣)'라고 하였는데, 말 그대로 '소매가 없는 창의'라는 옷이다. 창의는 뒤트임이 특징인데 소매가 없고 뒤가 트였다. 이러한 형태의 답호는 단국대학교 석주선기념박물관의 탐릉군 묘에서 출토된 답호 유물에서 확인된다.[2]

기타

답호는 중국 원나라때 등장한 의복으로 우리나 기록에는 고려시대 『원간노걸대(原刊老乞大)』에 '대답호(大㧺胡), 답호(褡護), 답호(㧺胡), 답홀(㧺忽)'로 표기되어 있으며 더그레로 언해되어 있다. 고려시대 답호 유물로는 문수사의 답호와 해인사의 답호가 있다. [3]

지식 관계망

관계정보

항목A 항목B 관계
답호 A는 B를 착용하였다
답호 왕세자 A는 B를 착용하였다
답호 왕세손 A는 B를 착용하였다
답호 A는 B에 착용한다
답호 의궤 A는 B에 기록되어 있다

시간정보

공간정보

시각자료

갤러리

영상

주석

  1. 강순제·김미자·김정호·백영자·이은주·조우현·조효숙·홍나영, 『한국복식사전』, 민속원, 2015, 220쪽.
  2. 국립고궁박물관, 『왕실문화도감』, 국립고궁박물관, 2013, 220~221쪽.
  3. 강순제·김미자·김정호·백영자·이은주·조우현·조효숙·홍나영, 『한국복식사전』, 민속원, 2015, 220쪽.

참고문헌

인용 및 참조

더 읽을거리

유용한 정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