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탑비문 작업노트

여주 신륵사 보제존자석종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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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규 (토론 | 기여) 사용자의 2017년 5월 31일 (수) 14:28 판 (후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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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주 신륵사 보제존자석종비
(驪州 神勒寺 普濟尊者石鐘碑)
BHST Stele.png
대표명칭 여주 신륵사 보제존자석종비
영문명칭 Stele for Buddhist Monk Boje at Silleuksa Temple, Yeoju
한자 驪州 神勒寺 普濟尊者石鐘碑
주소 경기도 여주시 신륵사길 73(천송동)
문화재 지정번호 보물 제229호
문화재 지정일 1963년 1월 21일
찬자 이색(李穡)
서자 한수(韓脩)
각자 이인중(李仁衆)
서체 해서체
승려 나옹(懶翁)



정의

경기도 여주시 천송동 신륵사에 있는 고려시대의 탑비.[1]

내용

탑비

신륵사에 있는 보제존자 나옹(懶翁)의 탑비이다. 3단의 직사각형 대석 위에 비좌를 놓은 후 비신과 옥개석으로 구성했다. 비좌는 2단으로 하대에는 구름무늬를, 그 위로는 앞뒤 5엽의 연꽃무늬를 조각하였다. 비신은 대리석으로 양옆에 화강암기둥을 세워 보강하였다. 그 위에 옥개석에는 목조건물의 공포와 기왓골을 조각하였다.[2] 신라시대 이래로 귀부와 이수를 갖춘 일반화된 석비형식이 고려 말기에는 대석과 옥개석으로 변형되기 시작하는데, 바로 이 비가 고려 말기의 석비형식을 잘 보여준다.[3]

비문

전면

여흥군신륵사보제사리석종기(驪興郡神勒寺普濟舍利石鐘記)
비문의 내용은 사리석종기(舍利石鐘記)와 진당시(眞堂詩)의 두가지 내용으로 되어있다. 사리석종기는 일반 비와 달리 생애를 기술한 것이 아니라 신륵사에 이 석종을 안치하고 그 기문(記文)을 짓게 된 연유를 내용으로 하고 있다. 왕사의 입적 후 제자들이 진영당을 짓고 석종을 만들어 사리를 봉안하였으며 비문을 신륵사와 연관 있는 염제신을 통해 이색에게 부탁하여 짓게 되었음을 기술하였다. 진당시는 제자 지선(志先)이 이색에게 부탁하여 정골사리를 봉안한 신륵사에 후대 사람들이 탑에만 예경하고 왕사의 모습을 알지 못할까 염려하여 영정을 봉안하고 그 기록을 구하기에 진당시를 지었음을 기술하였다.[4]

후면

보제존자진당시병서(普濟尊者眞堂詩幷序)
음기에는 문하제자를 승계에 따라 열거하고 당대의 관과 부인들이 대거 등장하는 재가신도 명단을 실었다. 환암, 혼수, 고암, 일승, 무학, 자초 등 당대 고승을 망라하였고 재가신도로는 염제신, 이인임, 최영, 이득분 등 당대 권신들이 모두 동참하고 있다.[5] 중창 관련 비구들로서 대전부터 향적당에 이르는 부존질(扶尊秩)과 번와, 석종, 석수, 목수 등 제작 담당 승려와 감독 승려 그리고 여흥군의 세력가를 열거하였다. 선각왕사의 비는 입적한 이듬해에 같은 지은이가 상세하게 쓴 회암사비도 있고 영전사 탑지로 추정되는 간단한 탑지도 있어 비문 자료가 다수이다.[6]

[7]

지식관계망

"그래프 삽입"

관련항목

항목A 항목B 관계 비고
여주 신륵사 보제존자석종비 나옹 A는 B를 위한 비이다

시각자료

갤러리

주석

  1. 김세호, "여주 신륵사 보제존자석종비",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online, 한국학중앙연구원, 작성일: 2013년 12월 10일.
  2. 정병삼, 홍대한, 『신륵사』, 대한불교진흥원, 2011, 169쪽.
  3. "여주 신륵사 보제존자석종비", 『문화재검색』online, 문화재청.
  4. "신륵사보제존자석종비", 금석문세부정보, 『한국금석문 종합영상정보시스템』online, 국립문화재연구원.
  5. "성보문화재 소개", 『천년고찰 신륵사』online.
  6. "신륵사보제존자석종비", 금석문세부정보, 『한국금석문 종합영상정보시스템』online, 국립문화재연구원.
  7. 조명제, 『한국금석문집성 25: 고려9 비문9』, 한국국학진흥원, 2014. 6~7쪽. 온라인 참조: "한국금석문집성 25", 한국금석문집성 25: 고려9 비문9, 『KRpia - 한국의 지식콘텐츠』online, 누리미디어.

참고문헌

  • 정병삼, 홍대한, 『신륵사』, 대한불교진흥원, 20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