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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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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한샘 (토론 | 기여) 사용자의 2017년 5월 23일 (화) 23:57 판 (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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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고려 충렬왕(忠烈王) 때의 보각국사(普覺國師) 일연(一然)고구려·백제·신라 삼국의 유사(遺事)를 모아서 지은 역사서.[1]

내용

≪삼국유사(三國遺事)≫는 보각국사(普覺國師) 일연(一然)이 편찬한 사서(史書)로[2] 1999년 11월 19일 부산유형문화재 31호로 지정되었다. 편찬 연대는 미상이나, 1281∼1283년(충렬왕 7∼9) 사이로 보는 것이 통설이다.[3]

본서는 활자본이고, 5권 2책으로 구성되어 있으며,[4] 내용은 「왕력(王歷)」, 「기이(紀異)」,「흥법(興法)」,「탑상(塔像)」,「의해(義解)」,「신주(神呪)」,「감통(感通)」,「피은(避隱)」,「효선(孝善)」등 9편으로 구성되어 있다.[5]

≪삼국유사≫는 ≪삼국사기(三國史記)≫와 마찬가지로 고구려·백제·신라 세 나라의 역사뿐만 아니라 고조선과 기자 및 위만조선을 비롯하여 가락 등의 사적, 신화·전설·시가(詩歌) 등이 풍부하게 수록되어 있다.[6] 그러나 ≪삼국유사≫는 여러 자료의 내용을 다듬어서 쓴 ≪삼국사기≫와는 달리 전하는 이야기를 그대로 실은 것이 많다. 그래서 글이 세련되지 않고 때로는 허황되어 보이는 이야기도 나온다. 심지어 사실이나 자료들과 맞지 않는 내용도 있다. 하지만 오히려 이런 점 때문에 역사 자료로 가치가 높다고 평가받기도 한다. ≪삼국유사≫는 ≪삼국사기≫를 비롯한 다른 역사책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일이나 사건까지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7]

특히 ≪삼국유사≫는 지금까지 보존된 책 중에서 가장 먼저 단군 신화와 고조선의 역사를 쓰고 있다. 단군 신화를 우리 민족의 건국 신화로, 고조선을 최초의 국가로 인정하는 데 ≪삼국유사≫가 큰 역할을 한 셈이다. 일연이 ≪삼국유사≫에 단군 신화에 대해 쓴 까닭은 당시 고려가 원의 간섭을 받으면서 잃어버린 민족의식과 자주성을 표현하려는 의도로 보인다.[8] 이러한 그의 인식은 ≪삼국유사≫의 서문에 잘 나타나 있다.[9]


Quote-left.png 스스로 서술하여 말하기를 “대저 옛 성인(聖人)은 예악(禮樂)으로 나라를 일으키고 인의(仁義)로 가르침을 베푸는 데 있어 괴력난신(怪力亂神)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았다. 그러나 제왕(帝王)이 장차 일어날 때 부명(符命)에 응하거나 도록(圖籙)을 받아 반드시 범인(凡人)과 다름이 있은 연후에야 능히 큰 변화를 타고 대기(大器)를 잡고 대업(大業)을 이룰 수 있는 것이다.···

···그런즉 삼국(三國)의 시조(始祖)가 모두 신이(神異)한 데서 나왔다는 것이 어찌 괴이하다 할 수 있겠는가! 이 기이(紀異)가 제편(諸篇)의 첫머리에 실린 것은 그 뜻이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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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삼국유사』 권 제1, 제1기이, 「서왈」.[10]


본서는 ≪삼국사기≫와 더불어 현존하는 한국고대사적의 쌍벽으로서, ≪삼국사기≫가 여러 사관(史官)에 의하여 이루어진 정사(正史)[11]이므로 그 체재나 문장이 잘 정돈된 데 비하여, ≪삼국유사≫는 일연 혼자의 손으로 씌어진 이른바 야사(野史)[12]이므로 체재나 문장이 ≪삼국사기≫에 못 미침은 사실이나, 거기서 볼 수 없는 많은 고대 사료들을 수록하고 있어 둘도 없이 소중한 가치를 지니고 있는 문헌이다.[13]

≪삼국유사≫의 편찬자인 일연충렬왕의 명령에 따라 1277년부터 1281년까지 청도 운문사에서 머물면서 불교를 일으키는 데 힘썼다. ≪삼국유사≫는 바로 이 무렵에 쓰기 시작한 것으로 추측된다.[14] 1278년에는 그동안 수집한 자료를 바탕으로 『 역대연표(歷代年表)』를 인흥사에서 간행하였다. 이것은 ≪삼국유사≫ 왕력(王歷)편의 토대가 되었으나[15] 현재는 전해지지 않는다.[16]

일연은 승려였기 때문에 ≪삼국유사≫에도 불교와 관련된 내용이 많이 담겨 있다. 특히 이름난 승려들이 한 일이나 불교에 관한 설화가 많이 실려 있으며 절이나 탑, 불상에 관한 중요한 자료도 싣고 있다.[17] 일연군위 인각사에서 ≪삼국유사≫를 완성하였기 때문에 청도 지역의 삼국 시대에 대한 기록이 다른 지역에 비해 많이 서술되어 있다.[18] 제자 무극(無極)이 1310년대에 ≪삼국유사≫를 간행하였다.[19]

지식관계망

시간정보

시각자료

갤러리

영상

주석

  1. "삼국유사", 『두산백과』online.
  2. 이응백, 김원경, 김선풍, 『국어국문학자료사전』, 국어사전연구사, 1998. 온라인 참조: "삼국유사", 국어국문학자료사전, 『네이버 지식백과』online.
  3. 류은주, 『모발학 사전』, 광문각, 2003. 온라인 참조: "삼국유사", 모발학 사전, 『네이버 지식백과』online.
  4. 류은주, 『모발학 사전』, 광문각, 2003. 온라인 참조: "삼국유사", 모발학 사전, 『네이버 지식백과』online.
  5. "삼국유사(三國遺事)", 문화재검색, 『문화유산정보』online, 문화재청.
  6. 강래업, "삼국유사", 『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online, 한국학중앙연구원.
  7. 김한종, 『한국사 사전 2 - 역사 사건·문화와 사상』, 책과함께어린이, 2015. 온라인 참조: "삼국유사", 한국사 사전 2 - 역사 사건·문화와 사상, 『네이버 지식백과』online.
  8. 김한종, 『한국사 사전 2 - 역사 사건·문화와 사상』, 책과함께어린이, 2015. 온라인 참조: "삼국유사", 한국사 사전 2 - 역사 사건·문화와 사상, 『네이버 지식백과』online.
  9. 김남윤, "일연(一然)", 『한국사 콘텐츠』online, 국사편찬위원회.
  10. "삼국의 시조가 모두 신이한 데서 나오다", 『삼국유사』 권 제1, 제1기이, 「서왈」, 『한국사데이터베이스』online, 국사편찬위원회.
  11. 정확한 사실의 역사. 또는 그런 기록. "정사", 『네이버 국어사전』online.
  12. 민간(民間)에서 사사로이 기록한 역사. "야사", 『네이버 국어사전』online.
  13. 류은주, 『모발학 사전』, 광문각, 2003. 온라인 참조: "삼국유사", 모발학 사전, 『네이버 지식백과』online.
  14. 김한종, 『한국사 사전 2 - 역사 사건·문화와 사상』, 책과함께어린이, 2015. 온라인 참조: "삼국유사", 한국사 사전 2 - 역사 사건·문화와 사상, 『네이버 지식백과』online.
  15. 김남윤, "일연(一然)", 『한국사 콘텐츠』online, 국사편찬위원회.
  16. 강래업, "삼국유사", 『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online, 한국학중앙연구원.
  17. 김한종, 『한국사 사전 2 - 역사 사건·문화와 사상』, 책과함께어린이, 2015. 온라인 참조: "삼국유사", 한국사 사전 2 - 역사 사건·문화와 사상, 『네이버 지식백과』online.
  18. 강래업, "삼국유사", 『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online, 한국학중앙연구원.
  19. 이응백, 김원경, 김선풍, 『국어국문학자료사전』, 국어사전연구사, 1998. 온라인 참조: "삼국유사", 국어국문학자료사전, 『네이버 지식백과』online.

참고문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