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의왕후국장도감의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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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주영 (토론 | 기여) 사용자의 2017년 5월 10일 (수) 15:04 판 (기본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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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의왕후국장도감의궤(宣懿王后國葬都監儀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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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명칭 선의왕후국장도감의궤(宣懿王后國葬都監儀軌)
주제 흉례(凶禮)/국장(國葬)
작성주체 국장도감(國葬都監)
의례담당자 이집(李㙫)
작성지역 한성부
작성시기 1731년(영조 7년)
소장처(원소장처) 국립중앙박물관(어람용 상), 국립중앙박물관(어람용 하) 규장각한국학연구원(강화부)
판본 필사본
표기문자 한자, 이두
수량 2책 749장(1책 324장, 2책 425장): 어람용/2책 676장(제1책 302장, 제2책 374장): 강화부
도설 반차도 46면: 어람용/47면(제1책 6면, 제2책 41면)(채색), 반차도 48면(제1책)(채색): 강화부



정의

1730년(영조 6년) 경종계비(繼妃) 선의왕후(宣懿王后) 어씨(魚氏, 1705~1730)의 승하 후 거행된 국장의식의 과정과 절차를 기록한 의궤이다.

내용

왕후가 승하한 날부터 시신을 매장하고 신주를 혼전에 모시기까지 약 5개월의 기록이 담겨 있다. 국장도감은 두개의 기관이 함께 설립된다. 발인하는 날까지 시신을 안치하고 제향을 올리는 일을 담당하는 빈전도감(殯殿都監), 왕릉의 조성을 담당하는 산릉도감(山陵都監)이 함께 국상의례의 업무를 분담한다고 기록되어 있다. 선의왕후국장도감은 1730년 6월 29일 선의왕후경덕궁 어조당에서 승하한 후 바로 설치되었다. 7월 3일 경덕궁 광명전에 빈전을 설치하여 시신을 모시고, 10월 19일 발인하여 산릉에 모셨다. 그후 20일 신주를 창경궁 문정전에 마련된 혼전에 봉안 하였다. 시호는 선의(宣懿), 휘호는 효인혜목(孝仁惠穆), 전호는 경휘(敬徽), 능호는 의릉(懿陵)이다.


혼전, 봉안뜻표기 또는 페이지 작성 필요함 (정주영)



목록

상책: 목록(目錄), 계사질(啓辭秩), 별단질(別單秩), 의궤사목(儀軌事目)
하책: 이방(二房), 삼방(三房), 분장흥고(分長興庫), 분전설사(分典設司), 지석소(誌石所), 우주소(虞主所)

해제

국립중앙박물관 어람용 상책 해제
국립중앙박물관 어람용 하책 해제
규장각한국학중앙연구원 소장 강화부본 해제

판본

국립중앙박물관: 어람용(2566), (2569)
규장각한국학연구원: 강화부본(奎 13576), 의정부본(奎 14863), 의정부본은 1책만 남아 있음.

관련항목

문헌 → 소장처

항목A 항목B 관계 비고
선의왕후국장도감의궤 국립중앙박물관 A는 B에 소장한다
선의왕후국장도감의궤 규장각한국학연구원 A는 B에 소장한다

문헌 → 복식

항목A 항목B 관계 비고
선의왕후국장도감의궤 상례복 A는 B를 보여준다

문헌 → 의례

항목A 항목B 관계 비고
선의왕후국장도감의궤 상례 A는 B를 기록한다

의례 → 기관

항목A 항목B 관계 비고
국장 국장도감 A는 B에서 주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