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탑비문 작업노트

원주 거돈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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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규 (토론 | 기여) 사용자의 2017년 3월 31일 (금) 09:11 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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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돈사지
(居頓寺址)
대표명칭 거돈사지
한자 居頓寺址
주소 강원도 원주시 부론면 정산리 189
문화재 지정번호 사적 제168호
문화재 지정일 1968년 12월 19일
관리자 원주시
경내문화재 원주 거돈사지 원공국사탑비(原州 居頓寺址 圓空國師塔碑), 원주 거돈사지 삼층석탑(原州 居頓寺址 三層石塔)



정의

강원도 원주시 부론면 정산리에 있는 신라시대의 절터[1]

내용

거돈사지의 대체적인 윤곽은 1989~1992년에 한림대학교박물관을 중심으로 이루어진 본격적인 발굴조사과정에서 드러났다. 7,500평 넓이의 절터는 건물의 배치와 규모를 잘 알 수 있을 정도로 보존이 잘 되어 있었다. 발굴조사결과, 거돈사는 신라 후기인 9세기경에 창건된 후 고려 초기에 중창돼 대찰의 면모를 갖추었으며, 조선 전기까지 존속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2] 《신증동국여지승람》에서는 "거돈사는 현계산에 있는데, 고려의 최충이 지은 승묘탑비가 있다(居頓寺在玄溪山有 高麗崔沖所撰僧勝妙碑)"라는 기록으로 전하고 있다.


거돈사의 창건시기로 추정되는 신라말기는 구산선문이 개창되어 선종의 번성과 함께 지방불교가 중흥하던 시기이다. 이러한 사회변화와 맞물려 고려 초기를 기점으로 남한강 유역에 고달사, 법천사, 흥법사 등을 포함하는 크고 작은 수많은 절들이 지어졌고, 거돈사 또한 그 무렵 중창되고 사세를 확장했던 것으로 추측된다. [3] 거돈사는 비롯한 이런 남한강 유역의 여러 절들처럼 본래는 지방 호족들과 연결된 법안종 계통의 선종가람이었다.[4] 하지만 이후 교학과 천태학을 집대성한 대각국사 의천이 고려의 천태종을 창종했을 때 거돈사는 영암사, 지곡사 등의 5대 교종사찰과 함께 천태종의 기반사원이 되었다고 한다. 고려의 고승 원공국사 또한 천태학승이었으며, 이곳 거돈사에서 열반을 맞이하였기 때문에 경내에서 탑비를 통해 만나볼 수 있다. 거돈사는 고려 후기에 다시 선종도량이 되어 수행승들이 머물렀으며 정각국사 등이 법맥을 이어왔다. [5]




관련 문화유산

건립시기 문화유산 특징
1025(현종 16) 원주 거돈사지 원공국사탑비(原州 居頓寺址 圓空國師塔碑) 최충이 비문을 짓고 김건웅이 글씨를 씀.
원주 거돈사지 삼층석탑(原州 居頓寺址 三層石塔)
원주 거돈사지 원공국사탑(原州 居頓寺址 圓空國師塔) 탑비가 건립될 때 함께 세워진 것으로 추정. 현재는 국립중앙박물관에 보관.


동영상

관련항목

항목A 항목B 관계 비고

시간정보

시간정보 내용
1018년 원공국사가 원주 거돈사에서 열반을 맞이했다.
1025년 원공국사탑비가 건립되어 최충이 비문을 짓고 김거웅이 글씨를 썼다.
1948년 일본인 집에 있던 원공국사승묘탑이 경복궁으로 옮겨졌다.
1968년 원주 거돈사지가 문화재 보호구역으로 지정되었다.
1984년 원주 거돈사지에 대한 정비공사를 본격적으로 시작하였다.
1989~1992년 한림대학교박물관을 중심으로 4차례에 걸쳐 원주 거돈사지에 대한 발굴조사를 실시하였다.

참고문헌

주석

  1. "거돈사지",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온라인 서비스에서 인용. 2017년 03월 30일 확인.
  2. "거돈사지", 『문화콘텐츠닷컴(문화원형백과 한강 생활문화)』, 한국콘텐츠진흥원, 2006, 네이버 지식백과에서 인용. 2017년 03월 30일 확인.
  3. "거돈사터", 『답사여행 길잡이7- 경기남부와 남한강』, 한국문화유산답사회, 돌배게, 2012, 네이버 지식백과에서 인용. 2017년 03월 30일 확인.
  4. "원주 거돈사터", 김봉렬,『한국미의 재발견 - 불교건축』, 솔출판사, 2004, 네이버 지식백과에서 인용. 2017년 03월 30일 확인.
  5. "거돈사터", 『답사여행 길잡이7- 경기남부와 남한강』, 한국문화유산답사회, 돌배게, 2012, 네이버 지식백과에서 인용. 2017년 03월 30일 확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