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초청강상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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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초청강상에

시조 - 서익(徐益)

녹초(綠草) 청강상(晴江上)에 굴레 벗은 말이 되어

때때로 머리 들어 북향(北向)하여 우는 뜻은

석양(夕陽)이 재 넘어가매 임자 그려 우노라.

녹초 청강상에 벼슬을 그만 두고 내려와 살고 있지만 때로 고개를 들어 북쪽을 향해 우는 뜻은 석양에 해 넘어갔다(임금께서 승하하셨다)는 소식을 듣고 임금을 그리워하여 운다.

이 시조는 지은이 서익(徐益.1542.중종 37∼1587.선조 20)이 그가 죽기 전 의주목사(義州牧使)에 올라 있을 때, 율곡 이이(李珥)의 탄핵을 변호하다가 파직(罷職)당하여 고향인 충청도(忠淸道)에 내려가 있을 즈음에 지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는 향리(鄕里)인 충청도에 내려가 2년을 넘기고 47세에 작고(作故)한 것으로 되어 있다. 그렇다면 이 시조는 그 뜻에서 짐작되듯이, 작고하기 전 2, 3년간에 된 노래라고 생각된다. 이 시조가 신자하(申紫霞)의 <소악부(小樂府)>에 다음과 같이 번역되어 있다.

“茸茸綠草晴江上 老馬身閉謝轡銜 奮首一鳴時向北 西陽無限戀君心‘


▶작자 : 서익(徐益)

▶갈래 : 평시조

▶성격 : 유교적, 군신유의(君臣有義)

▶표현 : 은유법

▶제재 : 임금(조선 중종)의 승하(昇遐)

▶주제 : - 임금의 승하를 애도함. - 귀양살이 하면서도 임금에 대한 곧은 충성심(忠誠心).

▶출전 : <해동가요(海東歌謠)>

이 작품은 벼슬을 내놓고 고향에 내려가 있을 때 중종(中宗)이 승하했다는 소식을 듣고, 그립고 슬픈 심정을 읊은 시조이다. 벼슬을 내 놓고 고향에 돌아와 한가로운 신세가 된 것을 '굴레 버슨 말'로 비유하였다. 때때로 '북향'하며 울었었는데, 이제는 아주 해가 서산 너머로 져버려 슬프다는 뜻이다. 해가 서산 너머로 져버렸다는 것은 '중종(中宗)의 승하'를 의미한다. 이 작품은 군신유의(君臣有義)의 유교 정신을 잘 보여 주는 작품이다. 초장 ‘녹초 청강상’은 풍성하고 태평스런 그의 향리(鄕里) 풍경이거나 생활환경, 또는 생활 심경(心境), 그 모두일 수 있다. ‘굴레 벗은 말’은 치사은거(致仕隱居)의 자신이다.

이 시조 음미(吟味)의 중심은 아무래도 중장이다. 글귀 중에ㅐ ‘북향하여’라 한 것은, 서익의 은거지가 남쪽인 충청도이기 때문이지만, ‘때때로 머리 들어 우는 뜻’이 무엇인가는, 종장(終章)에 보인 ‘석양이 재 넘어가매 임자 그려 우는’ 것만은 아닌 것이다.

그것은 다만 겉의 뜻에 지나지 않는다. 속뜻은 중세사회(中世社會)의 기본질서인 군신관계(君臣關係)로 대표되는 인간관계의 영원성 내지는 그 불변(不變)하여야 할 당위성(當爲性)을 가장 정(情)을 아는 말로 대신시킨 축생(畜生)의 귀소본능(歸巢本能)에 의탁하여 더 간절한 것으로 나타내고 있다. 얼른 평이(平易)한 듯하지만, 힘들여 감상할 만한 시조의 하나이다. - 이상보 : <명시조 감상>(1970)

서익이 지은 '녹초청강상에'는 평시조로, 조선 중종의 서거를 애도하는 내용이 담겨 있다. 이 시조는 유교적 가치관을 바탕으로 한 군신유의(君臣有義)를 중심으로 하여, 벼슬을 내려놓고 자연 속에서 사는 작자의 마음을 담고 있다. 시조는 유교적 충절과 임금에 대한 그리움을 절절히 표현한다.

이 시조의 성격은 유교적이고, 군신유의를 강조한다. 임금의 죽음을 애도하며, 임금과 신하 사이의 깊은 유대감을 나타낸다. 주제는 조선 중종의 승하를 애도하는 것으로, 서익이 임금에 대한 충성을 노래하며 그리움을 표출한 것이다. 이는 당시 유교적 사회에서 중요한 덕목으로 여겨졌던 충성심을 잘 드러내고 있다.

시조는 은유법을 사용하여 작자의 내면을 표현한다. '녹초 청강상에'는 자연 속에 사는 작자의 모습을 그리면서도, 벼슬을 그만두고 자연에 묻혀 살고 있는 현재의 자신을 비유적으로 나타낸다. 이와 동시에 임금에 대한 그리움을 표현하기 위해 북쪽을 향해 고개를 들어 우는 모습을 묘사하고 있다. 이는 임금의 승하 소식을 듣고 슬픔에 잠긴 작자의 심정을 표현한 것이다. 특히 '석양에 해 넘어갔다'는 구절은 은유법을 사용하여 임금의 죽음을 표현하며, 이로 인해 작자의 깊은 슬픔과 충성을 느낄 수 있다.

유교적 가치관에서 군신유의는 매우 중요한 덕목이었다. '녹초청강상에'는 이러한 유교적 덕목을 충실히 반영하고 있다. 서익은 벼슬을 내려놓고 자연 속에 묻혀 살고 있지만, 마음 속 깊이 임금에 대한 충성을 잊지 않고 있다. 이는 유교적 가치관에서 임금과 신하 사이의 관계를 강조하는 것과 일치한다. 특히 임금의 승하를 슬퍼하며 북쪽을 향해 우는 모습은 서익의 충절을 잘 나타내고 있다. 이러한 충절은 당시 사회에서 신하들이 지녀야 할 중요한 덕목으로 여겨졌으며, 이는 서익의 시조에서 잘 드러난다.

서익은 벼슬을 내려놓고 자연 속에서 살아가지만, 그의 마음은 항상 임금을 향해 있다. '녹초 청강상에'라는 구절은 자연 속에 있는 자신을 나타내지만, 동시에 임금에 대한 그리움과 충성을 담고 있다. 이는 자연 속에서의 삶이 단순히 은둔생활이 아니라, 임금에 대한 깊은 충성과 그리움을 간직한 삶임을 보여준다. 서익은 자연 속에서의 삶을 통해 자신의 충성을 표현하고 있으며, 이는 유교적 가치관과 맞물려 더욱 깊은 의미를 지닌다.

서익의 '녹초청강상에'는 조선 중종의 승하를 애도하며, 유교적 가치관을 바탕으로 한 군신유의를 강조한 시조이다. 자연 속에서의 삶을 통해 임금에 대한 그리움과 충성을 표현한 이 시조는, 유교적 덕목인 충절을 잘 드러내고 있다. 은유법을 사용하여 작자의 심정을 표현한 이 시조는, 당시 사회에서 신하들이 지녀야 할 중요한 덕목을 잘 나타내고 있으며, 서익의 깊은 충성을 엿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