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기종(육군일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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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기종 육군 일병은 6·25전쟁 당시인 1951년 5월 경기도 용문산 전투에서 제6사단 제2연대 제3대대 10중대 소속 정훈병으로 퇴각하는 중대원들을 독려하여 빼앗긴 고지 재탈환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1951년 중공군의 공세 시 국군 제6사단은 제2연대를 경계부대로 하여 북한강과 홍천강 남쪽에 배치했으며 주 방어지역인 용문산 서쪽에 제19연대 동쪽에 제7연대를 배치하면서 결사 항전의 전투 준비태세를 갖췄다.


1951년 5월17일에 중공군은 3개 사단을 투입하여 국군 제6사단의 전방부대인 제2연대에 대해 공격을 개시했고 제2연대는 군단 포병의 화력지원 하에 사주방어를 실시하며 끈질기게 저항했다.

이에 중공군은 국군 제6사단 제2연대를 주 방어부대로 판단하고 집중적인 공격을 감행했다. 당시 서기종 일병이 소속된 제6사단 제2연대 3대대 10중대는 용문산 전방 353고지 좌측을 방어하고 있었다.

5월19일에 중공군은 3대대 10중대 진지 전방 10~20m 거리까지 접근하며 집중 사격과 동시에 진지 안까지 진입하여 공격해 왔다.

이러한 적의 공격에 소대장과 전우들이 전사하는 매우 혼란스러운 상황이 벌어졌고, 이때 서기종 일병은 “중대장님은 건재하시다. 물러서면 전부 죽는다. 지원부대가 곧 온다”라는 외침과 함께 사격을 가하며 앞장서 진지를 뛰쳐나와 공격했다. 이에 용기를 얻은 중대원들도 일제히 진지를 박차고 나와 필사적으로 백병전을 펼친 끝에 빼앗긴 고지를 되찾게 되었다. 그리고 2시간 후인 5월20일 새벽 2시경, 중공군의 2차 공격이 시작되어 남쪽 능선에서 진지로 다가오는 적을 공격하던 자동화기 사수가 적탄에 쓰러졌다. 이때 서기종 일병은 곧장 그곳으로 달려가 자동화기를 움켜잡고 선 채로 사격을 개시했다. 이때 서기종 일병은 온몸에 적이 쏜 7발의 총탄을 맞고 쓰러졌고 이를 목격한 중대원들은 목숨을 걸고 백병전을 펼쳐 진지로 침투한 중공군을 물리칠 수 있었다.

이러한 결사 항전으로 맡겨진 임무를 완수한 서기종 일병에게 1951년 7월에 미국 은성훈장이 수여됐다. 이렇듯 호국영웅 한 분 한 분의 희생으로 오늘날의 자유민주주의 국가인 대한민국이 있 수 있는 것이다.

다수가 지배하는 시민들이 스스로 지배자이면서 피지배자인 민주주의, 인간의 존엄성 실현과 자유와 평등 보장이 가능한 민주주의, 이러한 민주주의가 우리 삶에 얼마나 중요한 요소인지 다시 한 번 되새겨 보고 그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하기 위해 한 몸 바치신 서기종 일병에 대해서도 기억할 수 있는 5월이 되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