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응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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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응윤(徐應潤)

조선 후기 성주 출신의 문인이자 학자.

[개설]

처음 이름은 할아버지가 태어나는 날 저녁에 꿈속에서 주공이 강림하는 꿈을 꾸었으므로 서몽원(徐夢元)이라 하였다. 향인(鄕人)들이 서유자(徐孺子)라는 일종의 사시(私諡)로 일컬었다.

[가계] 본관은 달성서씨(達城). 자는 주성(周聖), 호는 우금(友琴). 9세조 서효동(徐孝東)이 임진왜란을 피하여 성주로 옮겨 살았다. 고조할아버지는 서국병(徐國柄)이고, 증조할아버지는 서창일(徐昌日)이며, 할아버지는 서경흥(徐慶興)이다. 아버지는 [[서택호(조선)|서택호][(徐宅鎬)이고, 어머니는 김해 김씨(金海金氏)로 김치우(金致祐)의 딸이다.

[활동 사항] 서응윤(徐應潤)[1836~1862]은 어려서부터 매우 영민하고 자질이 뛰어나 놀랄 만한 언행을 많이 보였다. 10세 전에 사리를 알고 우주의 이치에 대해 말하였으며 인사(人事)를 논하였을 뿐 아니라, 각종 서체에 능하고 운서(韻書)[한자(漢字)의 운(韻)을 분류하여 일정한 순서로 배열한 서적을 통틀어 이름]에도 밝았다. 12세 때 시를 짓고 음률(音律)에 정통하여 우금(友琴)이라 자호하며 거문고를 잘 타고 피리도 직접 제작하였다. 그 후 충청도 회덕(懷德)으로 석남(石南) 송달수(宋達洙)를 찾아가 가르침을 받고 돌아와서 성리학에 뜻을 두어 『주역(周易)』, 『심경(心經)』 등에 침잠하고 주자(朱子)의 영정을 걸어 두고 아침저녁으로 절하였다. 1853년(철종 4) 아버지가 병을 앓자 정성을 다해 구완하였다. 현몽(現夢)으로 복분자가 병에 좋음을 알고 깊은 산중에서 복분자를 구해 아버지의 병을 낫게 하였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1857년(철종 8)에도 아버지가 병이 들자 지극한 치성(致誠)으로 꿩이 집으로 날아 들어온 기이한 일이 일어났다. 27세로 요절하였다.

[학문과 저술] 저서로 『서유자문집(徐孺子文集)』 2권 1책, 『성리술집(性理述集)』 8권 5책이 있다.

[묘소] 묘는 경상북도 성주군 가천면 독용산성(禿用山城) 안국사(安國寺) 아래 교목등(喬木嶝)에 있다.

[상훈과 추모] 1869년(고종 6) 동몽교관 조봉대부(童蒙敎官朝奉大夫)로 특별히 증직(贈職)되었다. 도내 유생들이 세 번이나 상소(上疏)하여 예조(禮曹)에서 마을에 정려(旌閭)를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