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대째 신앙 전통 이어온 믿음의 가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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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대째 신앙 전통 이어온 믿음의 가문 =

서원석장로·서경석목사 가정

대를 이어 신앙의 전통이 이어지는 가정. 기독교인이면 누구나 갖는 소망일 것이다. 스스로 혹은 전도를 받아, 그리스도인 된 기쁨을 누리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번쯤 "나도 기독교 가정에서 태어났더라면…"하는 부러움을 가졌을 것이고, 게다가 신앙의 전통이 2대를 넘어 3대, 4대째 이어진다고 하면 그 가정에 대한 부러움은 이루말할 수 없이 클 것이다.

그런 유서 깊은 신앙 전통의 맥을 이어오는 가정들 중에서 서원석장로(새문안교회·대한성서공회 진흥국장)와 서경석목사(우리민족서로돕기 사무총장) 형제의 가정은 두말할 나위 없이 모든 기독교인들의 부러움을 사는 우리나라 최고(最古)의 신앙 집안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듯.

이들 집안의 신앙 내력을 따지자면 1800년대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1884년 한국 최초의 교회를 세운 서상륜·서경조 형제가 이들의 증조부가 되기 때문. 어찌보면 이들 가정의 신앙 역사가 한국 기독교 역사보다도 앞선다고 할 수 있다.

순수 자생 토착교회인 `소래교회'의 창설자인 증조할아버지 서상륜과 서경조목사, 첫 유아세례자인 할아버지 서병호장로, 독립운동가로 해군제독으로 애국의 길을 걸어온 아버지 서재현장로에 이어 교계에서 대를 이어 봉사하고 있는 서원석장로·서경석목사 등 이들 서씨 집안은 한국 기독교사를 이야기함에 있어서 빼놓을 수 없는 집안인 것. 국내 성경 반포의 주역인 서상륜과 그의 동생 서경조. 서상륜이 끝까지 평신도 전도인으로 남아있던 것에 반해 서경조는 우리나라 최초의 목사 7인 가운데 하나였다. 서원석·경석 형제 집안의 신앙 내력을 이야기 함에 있어 서상륜과 서경조를 함께 이야기할 수밖에 없음은 세간에 잘 알려지지 않은 숨은 이야기가 있다.

혹자들은 이들 형제가 서상륜의 후손인지 혹은 서경조의 후손인지에 대해 많은 궁금증들을 갖고 있는데 실상은 이런 것. 우선 결론부터 이야기 하자면 이들은 서경조 목사의 후손이다. 서목사의 둘째 아들인 서병호장로의 장남 서재현장로의 후손들이므로. 하지만 서상륜 증조할아버지의 슬하에 아들이 없던 고로 옛날에 흔히 그랬듯이 동생 서목사의 둘째 아들인 병호가 서상륜의 아들로 호적에 입적된다. 그러므로 호적상에는 서상륜이 증조할아버지가 되는 것. 다시 말하면 핏줄로는 서경조의 후손이지만 호적상으로는 서상륜의 후손이 되는 것이다.

누구의 후손인가를 지금에 와서 굳이 따져볼 필요는 없지만, 이렇든 저렇든 간에 서원석장로와 서경석목사 형제는 오랜 신앙의 맥을 이어온 가정의 후손들임이 자명하다.

서씨 집안과 관련한 위대한 신앙의 선배들은 이들에 그치지 않는다. 할아버지 서병호의 부인 즉 외할머니의 집안도 신앙의 내력에 있어서는 내로라 하는 집안인 것. 외할머니 광산 김씨 집안도 독립운동가 김규식, 여성 운동가 김마리아, 최초의 신학박사인 남궁억을 비롯해 정신여고 초대교장인 김필례, 서울여대 초대 총장을 지낸 고황경에까지 신앙의 가계가 이어진다. 서씨 집안의 장남 서원석 장로(53세)는 그가 몸담고 있는 대한성서공회 집무실 한켠에 자그마한 보따리를 하나 간직하고 있다. 증조할아버지와 할아버지 그리고 아버지에 이르기까지 선조들의 자필 문서 및 이분들에 대해 조사된 각종 자료 뭉치와 사진들이다.

"어렸을 적에 할아버지인 서병호장로(서경조목사의 아들)와 함께 살았지만, 한번도 증조 할아버지의 아버지 즉 서경조할아버지와 서상륜할아버지에 대한 이야기 등 집안 내력에 대해 자랑 삼아 이야기 하신 적이 없었다"고 말하는 서장로는 "하지만 매일 새벽 무릎 꿇고 나라와 민족을 위해 한국 교회를 위해 기도하셨던 모습은 두고두고 가슴에 남아 있다"고 회고한다. 대한적십자사 초대 이사장, 한국기독교연합회 초대 회장, YMCA 전시대책 위원장 등으로 눈부신 활약을 했던 할아버지임에도 불구하고 원석·경석 형제에게는 늘 무릎 꿇어 기도하는 `기도의 사람'으로만 각인돼 있는 것.

증조할아버지와 할아버지에 대한 이야기가 오히려 외부 사람들의 노력과 발굴에 의해 알게되었을 정도로 집안 에서 회자된 적이 별로 없던 것으로 기억하는 이들 서씨 형제는 한결 같이 이렇게 입을 모은다.

"저희는 모두 아버님(故 서재현장로)을 존경합니다. 근면하고 검소하게 또 정직하게 평생을 사셨던 아버지의 삶을 존경합니다. 아버지도 그의 아버지인 서병호장로의 삶을 보고 자라셨기에 가능하셨겠지요. 할아버지는 증조할아버지의 삶을 본받으셨겠구요. 말로 전해내려 오는 집안의 신앙 가훈 같은 것은 없습니다. 하지만 교회 섬기기를 말없이 하며, 나라와 민족을 사랑하셨던 아버지와 그 아버지의 신앙은 삶을 통해 저희의 가슴 속에 남아 있습니다." 집안의 신앙 전통이 아버지의 삶을 통해 계승된 셈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4대째 새문안 교회의 장로로 교회를 섬기고 있는 서원석장로는 그의 증조할아버지가 하던 성서반포 사업을 물려받듯 대한성서공회에서 진흥국장직을 맡아 일하고 있다. 그 바로 밑의 동생인 서경석목사(52세·우리민족서로돕기 사무총장)는 요즘 한창 관심을 모으고 있는 `재외동포법' 제정을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다. 3남 만석씨는 미국에서 목사로 사역중이고, 4남 창석씨는 새문안교회 집사로 봉사중이다.

"아버님을 회상할 때마다 긴장이 되고 지금의 삶을 반성하게 된다"고 말하는 이들 형제는 교회를 생각하고 나라를 생각하는 이러한 신앙 유산이 고스란히 자녀들에게 전해지기를 희망하는 것이다. "뿌리가 깊은 나무는 바람에 아니묄쌔" 이들 형제를 보며 떠오른 시 한구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