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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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 (토론 | 기여) 사용자의 2017년 10월 20일 (금) 18:27 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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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괄()
김현승 일러스트레이터
대표명칭 이괄
본관 고성(固城)
백규(白圭)
출생지 1587년
사망지 1624년
시대 조선
국적 조선
대표직함 형조좌랑, 함경북도병마절도사
성격 무신


정의

조선 중기의 무신·반란자.

내용

1622년(광해군 14) 함경북도병마절도사에 임명되어 임지로 떠날 준비를 할 즈음 평소 친분이 있던 신경유(申景裕)의 권유로 광해군을 축출하고 새 왕을 추대하는 계획에 가담해 1623년 3월의 인조반정 때 큰 공을 세웠다.

그러나 반정 과정에서 주도 세력인 거의대장(擧義大將) 김류(金瑬)의 우유부단한 처사에 크게 반발하면서 불화가 생겨 반정 뒤에 겨우 한성부판윤이 되자 불만이 많았다.

1623년(인조 1) 포도대장을 지낸 뒤 평안병사 겸 부원수에 임명되었다. 평안도 영변에 출진해 군사 훈련에 힘쓰는 한편 그 지방의 성책(城柵)을 보수해 진의 방비를 엄히 하였다.

이는 당시 후금과의 국제 관계가 긴박해지면서 불의의 사태에 대비하기 위해서였다. 이 해 윤10월 반정에 참가한 공신들의 공훈을 책정할 때 정사공신(靖社功臣) 2등의 첫째가 되었다.

1624년 정월에 외아들 전(栴)·한명련(韓明璉)·정충신(鄭忠信)·기자헌(奇自獻)·현집(玄楫)·이시언(李時言) 등과 함께 반역을 꾀한다는 무고를 받았다.

이어 서울에서 선전관과 의금부도사 등이 그의 군중(軍中)에 머물던 아들 전을 붙잡아 사실 여부를 조사한다는 명목으로 영변에 내려오자 이들을 죽이고 반란을 일으켰다.

신속한 행군으로 한때 서울을 점령, 기세를 떨쳤으나 곧 관군에 대패해 피신 중 부하 장수에게 살해되었다. 무과 출신이었으나 문장과 서예에도 능하였다. [네이버 지식백과] 이괄 [李适]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1]


Quote-left.png 왜적의 배 5백척이 진포(鎭浦) 어귀에 들어와 큰 밧줄로 서로 잡아매고 군사를 나누어 지키다가, 드디어 해안으로 올라 각 주(州)ㆍ군(郡)으로 흩어져 들어가서 마음대로 불사르고 노략질하니, 시체가 산과 들에 덮이고, 곡식을 그 배에 운반하느라고 땅에 쏟아진 쌀이 한 자 부피나 되었다.

나세심덕부최무선 등이 진포에 이르러, 무선이 처음으로 만든 화포(火砲)를 써서 그 배를 불태우니, 연기와 화염이 하늘에 넘쳤다. 왜적이 거의 다 타죽었고, 바다에 빠져 죽은 자도 또한 많았다. 왜적이 포로로 잡은 자녀를 모조리 죽여 시체가 산같이 쌓여서, 지나는 곳마다 피의 물결이었으며, 3백 30여 명만이 탈출하여 왔다. 죽음을 벗어난 적은 옥주(沃州)로 달아나서, 육지에 있던 적과 합세하여 이산(利山)ㆍ영동(永同)현을 불태웠다.

Quote-right.png
출처: 『고려사절요』 31권, 경신신우 6년(1380), 대명 홍무 13년. 온라인 참조: '고려사절요 제31권 / 신우 2(辛禑二)', 『한국고전종합DB』online, 한국고전번역원.[2]


지식 관계망

관계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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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각자료

가상현실

갤러리

영상

주석

  1. 하현강, "이괄",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online, 한국학중앙연구원.

참고문헌

인용 및 참조

  1. 사료
  2. 웹 자원
    • 민병하, "나세",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online, 한국학중앙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