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탑비문 작업노트

도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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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소리 (토론 | 기여) 사용자의 2017년 8월 25일 (금) 15:31 판 (출가수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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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헌(道憲)
BHST Monk1.png
대표명칭 도헌
한자 道憲
생몰년 824년(헌덕왕 16)-882년(헌강왕 8)
시호 지증(智證)
도헌(道憲)
탑호 적조(寂照)
지선(智詵)
성씨 경주 김씨
승탑 문경 봉암사 지증대사탑
승탑비 문경 봉암사 지증대사탑비



정의

신라 말기의 승려.

내용

가계와 탄생

지증대사 도헌(智證大師 道憲)은 824년(헌덕왕 16) 경주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찬괴(贊瓌)이며 어머니는 윤씨(伊氏)이다.

Quote-left.png 그의 세속 인연을 상고해 보면, 王都 사람으로 김씨 성을 가진 사람이다. 호는 道憲이요 자는 智詵이다. 아버지는 贊瓌이며 어머니는 伊氏이다. 長慶 甲辰年에 세상에 태어나 中和 壬寅年에 세상을 뜨니, 自恣한 지 43년이고 누린 나이가 59세였다. Quote-right.png
출처: 한국고대사회연구소, 「봉암사 지증대사탑비」, 『역주 한국고대금석문』 제3책 통일신라, 가락국사적개발연구원, 1992. 온라인 참조: "봉암사 지증대사탑비 해석문", 역주 한국고대금석문, 『한국사데이터베이스』, 국사편찬위원회.


탄생설화

과거 승견불(勝見佛) 때의 승려였던 자가 자주 분노하여 용이 되었는데, 이제 사람으로 태어나고자 하니 받아 줄 것을 간청하는 태몽을 꾸고 400일 만인 사월초파일에 대사를 낳았다.[1]

Quote-left.png 처음 어머니의 꿈에 한 거인이 나타나 고하기를, “나는 과거의 毘婆尸佛로서 말법의 세상에 중이 되었는데, 성을 낸 까닭으로 오랫동안 龍報를 따랐으나, 업보가 이미 다 끝났으니 마땅히 법손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묘연에 의탁하여 자비로운 교화를 널리 펴기를 원합니다”고 하였다. 이내 임신하여 거의 4백일을 지나 灌佛會의 아침에 태어났는데, 일이 이무기의 復生故事에 징험되고 꿈이 佛母의 태몽고사에 부합되어, 스스로 경계하는 사람으로 하여금 더욱 조심하고 삼가하게 하며, 가사를 두른 자로 하여금 정밀하게 불도를 닦도록 하였으니, 탄생의 기이한 것이 첫째이다.

태어난 지 여러 날이 되도록 젖을 빨지 않고, 짜서 먹이면 울면서 목이 쉬려고 하였다. 문득 어떤 道人이 문앞을 지나다가 깨우쳐 말하기를, “아이가 울지 않도록 하려면 葷菜 및 肉類를 참고 끊으시오”라고 하였다. 어머니가 그 말을 따르자 마침내 아무런 탈이 없게 되었다. 젖으로 기르는 이에게 더욱 삼가도록 하고 고기를 먹는 자에게 부끄러운 마음을 지니게 하였으니, 오랜 풍습의 기이한 것이 둘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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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한국고대사회연구소, 「봉암사 지증대사탑비」, 『역주 한국고대금석문』 제3책 통일신라, 가락국사적개발연구원, 1992. 온라인 참조: "봉암사 지증대사탑비 해석문", 역주 한국고대금석문, 『한국사데이터베이스』, 국사편찬위원회.


유년기

태어나자 며칠 동안 젖을 먹지 않고 울기만 하였는데, 도인이 찾아와 어머니가 육식과 파·마늘 등을 금할 것을 깨우쳤다. 그대로 했더니 젖을 먹기 시작하였다.[2]

Quote-left.png 태어난 지 여러 날이 되도록 젖을 빨지 않고, 짜서 먹이면 울면서 목이 쉬려고 하였다. 문득 어떤 道人이 문앞을 지나다가 깨우쳐 말하기를, “아이가 울지 않도록 하려면 葷菜 및 肉類를 참고 끊으시오”라고 하였다. 어머니가 그 말을 따르자 마침내 아무런 탈이 없게 되었다. 젖으로 기르는 이에게 더욱 삼가도록 하고 고기를 먹는 자에게 부끄러운 마음을 지니게 하였으니, 오랜 풍습의 기이한 것이 둘째이다. Quote-right.png
출처: 한국고대사회연구소, 「봉암사 지증대사탑비」, 『역주 한국고대금석문』 제3책 통일신라, 가락국사적개발연구원, 1992. 온라인 참조: "봉암사 지증대사탑비 해석문", 역주 한국고대금석문, 『한국사데이터베이스』, 국사편찬위원회.


출가수행

도헌은 9세에 출가하려 하였으나 어머니가 허락하지 않으므로 몰래 부석사(浮石寺)로 가서 범휴대덕(梵休大德)의 제자가 되었다. 어느 날 어머니의 병보를 듣고 집으로 돌아가자 어머니의 병은 저절로 나았으나 그가 중병에 걸렸다. 어머니가 부처에게 자식의 병을 낫게 해주면 곧 출가를 시키겠다고 맹세하자 병이 나았다.[3]

Quote-left.png 아홉 살에 아버지를 여의고 너무 슬퍼하여 거의 훼멸하였다. 추복승이 이를 가련히 여기고 논하여 말하기를, “덧없는 몸은 사라지기 쉬우나 장한 뜻은 이루기 어렵다. 옛날에 부처님께서 은혜를 갚으심에 큰 방편이 있었으니 그대는 이를 힘쓰라”고 하였다. 그로 인하여 느끼고 깨달아 울음을 거두고는 어머니께 불도에 돌아갈 것을 청하였다. 어머니는 그의 어린 것을 가엾게 여기고, 다시금 집안을 보전할 주인이 없음을 염려하여 굳이 허락하지 않았다. 그러나 대사는 부처님께서 출가하신 고사를 듣고 곧 도망해 가서 부석산에 나아가 배웠다. 문득 하루는 마음이 놀라 자리를 여러 번 옮겼는데, 잠시 뒤에 어머니가 그를 기다리다가 병이 났다는 말을 듣게 되었다. 급히 고향으로 돌아가 뵈오니 병도 뒤따라 나았으므로, 당시 사람들이 그를 완효서에 견주었다. 얼마 있지 않아서 대사에게 痼疾이 전염되어 의원에게 보여도 효험이 없었다. 여러 사람에게 점을 쳤더니 모두 말하기를, “마땅히 부처에게 이름을 예속시켜야 할 것이다”고 하였다. 어머니가 그전의 꿈을 돌이켜 생각해 보고는 조심스럽게 네모진 가사를 몸에 덮고 울면서 맹세하기를, “이 병에서 만약 일어나게 된다면 부처님께 아들로 삼아 달라고 빌겠습니다”라고 하였다. 이틀 밤을 자고 난 뒤에 과연 완쾌되었다. 우러러 어머니의 염려하심을 깨닫고, 마침내 평소에 품었던 뜻을 이루어, 제 자식을 사랑하는 사람으로 하여금 자식을 부처에게 선뜻 내주도록 하고, 불도를 미덥지 않게 여기는 사람들로 하여금 의심을 풀게 하였으니, 효성으로 신인을 감동시킨 것의 기이함이 셋째이다. Quote-right.png
출처: 한국고대사회연구소, 「봉암사 지증대사탑비」, 『역주 한국고대금석문』 제3책 통일신라, 가락국사적개발연구원, 1992. 온라인 참조: "봉암사 지증대사탑비 해석문", 역주 한국고대금석문, 『한국사데이터베이스』, 국사편찬위원회.


840년(문성왕 2) 17세로 경의(瓊儀)에게서 구족계(具足戒)를 받았다.

Quote-left.png 열일곱 살에 이르러 구족계를 받고 비로소 강단에 나아갔다. 소매 속에 빛이 선명한 것을 깨닫고 이를 더듬어 한 구슬을 얻었다. 어찌 마음을 두고 구한 것이겠는가. 곧 발이 없이도 이른 것이니, 참으로 『六度集經』에서 비유한 바이다. 굶주려 부르짖는 것으로 하여금 제 스스로 배부르게 하고, 취해서 넘어지는 것으로 하여금 능히 깨어나도록 하였으니, 마음을 면려한 것의 기이함이 넷째이다. Quote-right.png
출처: 한국고대사회연구소, 「봉암사 지증대사탑비」, 『역주 한국고대금석문』 제3책 통일신라, 가락국사적개발연구원, 1992. 온라인 참조: "봉암사 지증대사탑비 해석문", 역주 한국고대금석문, 『한국사데이터베이스』, 국사편찬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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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석

  1. 조용길, "지선",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online, 한국학중앙연구원.
  2. 조용길, "지선",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online, 한국학중앙연구원.
  3. 조용길, "지선",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online, 한국학중앙연구원.

참고문헌

  • "봉암사지증대사적조탑비", 금석문세부정보, 『한국금석문 종합영상정보시스템』online, 국립문화재연구소.
  • 곽철환, 『시공 불교사전』, 시공사, 2003. 온라인 참조: "도헌", 용어해설, 『네이버 지식백과』online.
  • 조용길, "지선",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online, 한국학중앙연구원.
  • "지증", 두산백과, 『네이버 지식백과』online.
  • "지선", 두산백과, 『네이버 지식백과』online.
  • 한국사전연구사 편집부, 『종교학대사전』, 한국사전연구사, 1998. 온라인 참조: "지선", 종교학대사전, 『네이버 지식백과』onlin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