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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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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한샘 (토론 | 기여) 사용자의 2017년 5월 24일 (수) 00:35 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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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유사
(三國遺事)
BHST Memorabilia of the Three Kingdoms.jpg
대표명칭 삼국유사
영문명칭 Memorabilia of the Three Kingdoms
한자 三國遺事
건립시대 고려시대
관련승려 일연



정의

고려 충렬왕(忠烈王) 때의 보각국사(普覺國師) 일연(一然)고구려·백제·신라 삼국의 유사(遺事)를 모아서 지은 역사서.[1]

내용

≪삼국유사(三國遺事)≫는 보각국사(普覺國師) 일연(一然)이 편찬한 사서(史書)로[2] 1999년 11월 19일 부산유형문화재 31호로 지정되었다. 편찬 연대는 미상이나, 1281∼1283년(충렬왕 7∼9) 사이로 보는 것이 통설이다.[3]

본서는 활자본이고, 5권 2책으로 구성되어 있으며,[4] 내용은 「왕력(王歷)」, 「기이(紀異)」,「흥법(興法)」,「탑상(塔像)」,「의해(義解)」,「신주(神呪)」,「감통(感通)」,「피은(避隱)」,「효선(孝善)」등 9편으로 구성되어 있다.[5]

≪삼국유사≫는 ≪삼국사기(三國史記)≫와 마찬가지로 고구려·백제·신라 세 나라의 역사뿐만 아니라 고조선과 기자 및 위만조선을 비롯하여 가락 등의 사적, 신화·전설·시가(詩歌) 등이 풍부하게 수록되어 있다.[6] 그러나 ≪삼국유사≫는 여러 자료의 내용을 다듬어서 쓴 ≪삼국사기≫와는 달리 전하는 이야기를 그대로 실은 것이 많다. 그래서 글이 세련되지 않고 때로는 허황되어 보이는 이야기도 나온다. 심지어 사실이나 자료들과 맞지 않는 내용도 있다. 하지만 오히려 이런 점 때문에 역사 자료로 가치가 높다고 평가받기도 한다. ≪삼국유사≫는 ≪삼국사기≫를 비롯한 다른 역사책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일이나 사건까지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7]

특히 ≪삼국유사≫는 지금까지 보존된 책 중에서 가장 먼저 단군 신화와 고조선의 역사를 쓰고 있다. 단군 신화를 우리 민족의 건국 신화로, 고조선을 최초의 국가로 인정하는 데 ≪삼국유사≫가 큰 역할을 한 셈이다. 일연이 ≪삼국유사≫에 단군 신화에 대해 쓴 까닭은 당시 고려가 원의 간섭을 받으면서 잃어버린 민족의식과 자주성을 표현하려는 의도로 보인다.[8] 이러한 그의 인식은 ≪삼국유사≫의 서문에 잘 나타나 있다.[9]


Quote-left.png 스스로 서술하여 말하기를 “대저 옛 성인(聖人)은 예악(禮樂)으로 나라를 일으키고 인의(仁義)로 가르침을 베푸는 데 있어 괴력난신(怪力亂神)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았다. 그러나 제왕(帝王)이 장차 일어날 때 부명(符命)에 응하거나 도록(圖籙)을 받아 반드시 범인(凡人)과 다름이 있은 연후에야 능히 큰 변화를 타고 대기(大器)를 잡고 대업(大業)을 이룰 수 있는 것이다.···

···그런즉 삼국(三國)의 시조(始祖)가 모두 신이(神異)한 데서 나왔다는 것이 어찌 괴이하다 할 수 있겠는가! 이 기이(紀異)가 제편(諸篇)의 첫머리에 실린 것은 그 뜻이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Quote-right.png
출처: 『삼국유사』 권 제1, 제1기이, 「서왈」.[10]


본서는 ≪삼국사기≫와 더불어 현존하는 한국고대사적의 쌍벽으로서, ≪삼국사기≫가 여러 사관(史官)에 의하여 이루어진 정사(正史)[11]이므로 그 체재나 문장이 잘 정돈된 데 비하여, ≪삼국유사≫는 일연 혼자의 손으로 씌어진 이른바 야사(野史)[12]이므로 체재나 문장이 ≪삼국사기≫에 못 미침은 사실이나, 거기서 볼 수 없는 많은 고대 사료들을 수록하고 있어 둘도 없이 소중한 가치를 지니고 있는 문헌이다.[13]

≪삼국유사≫의 편찬자인 일연충렬왕의 명령에 따라 1277년부터 1281년까지 청도 운문사에서 머물면서 불교를 일으키는 데 힘썼다. ≪삼국유사≫는 바로 이 무렵에 쓰기 시작한 것으로 추측된다.[14] 1278년에는 그동안 수집한 자료를 바탕으로 『 역대연표(歷代年表)』를 인흥사에서 간행하였다. 이것은 ≪삼국유사≫ 왕력(王歷)편의 토대가 되었으나[15] 현재는 전해지지 않는다.[16]

일연은 승려였기 때문에 ≪삼국유사≫에도 불교와 관련된 내용이 많이 담겨 있다. 특히 이름난 승려들이 한 일이나 불교에 관한 설화가 많이 실려 있으며 절이나 탑, 불상에 관한 중요한 자료도 싣고 있다.[17] 일연군위 인각사에서 ≪삼국유사≫를 완성하였기 때문에 청도 지역의 삼국 시대에 대한 기록이 다른 지역에 비해 많이 서술되어 있다.[18]

제자 무극(無極)이 1310년대에 ≪삼국유사≫를 간행하였다.[19]

지식관계망

시간정보

시각자료

영상

  • 대구교육미디어센터, "삼국유사", YouTube, 게시일: 2016년 5월 3일.

주석

  1. "삼국유사", 『두산백과』online.
  2. 이응백, 김원경, 김선풍, 『국어국문학자료사전』, 국어사전연구사, 1998. 온라인 참조: "삼국유사", 국어국문학자료사전, 『네이버 지식백과』online.
  3. 류은주, 『모발학 사전』, 광문각, 2003. 온라인 참조: "삼국유사", 모발학 사전, 『네이버 지식백과』online.
  4. 류은주, 『모발학 사전』, 광문각, 2003. 온라인 참조: "삼국유사", 모발학 사전, 『네이버 지식백과』online.
  5. "삼국유사(三國遺事)", 문화재검색, 『문화유산정보』online, 문화재청.
  6. 강래업, "삼국유사", 『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online, 한국학중앙연구원.
  7. 김한종, 『한국사 사전 2 - 역사 사건·문화와 사상』, 책과함께어린이, 2015. 온라인 참조: "삼국유사", 한국사 사전 2 - 역사 사건·문화와 사상, 『네이버 지식백과』online.
  8. 김한종, 『한국사 사전 2 - 역사 사건·문화와 사상』, 책과함께어린이, 2015. 온라인 참조: "삼국유사", 한국사 사전 2 - 역사 사건·문화와 사상, 『네이버 지식백과』online.
  9. 김남윤, "일연(一然)", 『한국사 콘텐츠』online, 국사편찬위원회.
  10. "삼국의 시조가 모두 신이한 데서 나오다", 『삼국유사』 권 제1, 제1기이, 「서왈」, 『한국사데이터베이스』online, 국사편찬위원회.
  11. 정확한 사실의 역사. 또는 그런 기록. "정사", 『네이버 국어사전』online.
  12. 민간(民間)에서 사사로이 기록한 역사. "야사", 『네이버 국어사전』online.
  13. 류은주, 『모발학 사전』, 광문각, 2003. 온라인 참조: "삼국유사", 모발학 사전, 『네이버 지식백과』online.
  14. 김한종, 『한국사 사전 2 - 역사 사건·문화와 사상』, 책과함께어린이, 2015. 온라인 참조: "삼국유사", 한국사 사전 2 - 역사 사건·문화와 사상, 『네이버 지식백과』online.
  15. 김남윤, "일연(一然)", 『한국사 콘텐츠』online, 국사편찬위원회.
  16. 강래업, "삼국유사", 『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online, 한국학중앙연구원.
  17. 김한종, 『한국사 사전 2 - 역사 사건·문화와 사상』, 책과함께어린이, 2015. 온라인 참조: "삼국유사", 한국사 사전 2 - 역사 사건·문화와 사상, 『네이버 지식백과』online.
  18. 강래업, "삼국유사", 『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online, 한국학중앙연구원.
  19. 이응백, 김원경, 김선풍, 『국어국문학자료사전』, 국어사전연구사, 1998. 온라인 참조: "삼국유사", 국어국문학자료사전, 『네이버 지식백과』online.

참고문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