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마동-감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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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KS김지선 (토론 | 기여) 사용자의 2017년 5월 11일 (목) 14:52 판 (그래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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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귤
이마동-감귤-1973s.jpg
작가 이마동
제작연도 1973년
규격 300호(197x290.9cm)
유형 새마을
분류 유화
소장처 새마을운동중앙연수원


정의

제주도는 감귤의 장려시책을 마련하고 1972년 서귀포 집단재배지에 400헥타의 기반에 100만본을 식재하여 감귤단지를 조성했다.[1]

설명

작품 소재

박정희 정권시기 전개되었던 1970년대 새마을운동의 역점 과제는 크게 생활환경개선, 소득증대, 의식개혁 등으로 구분할 수 있으며, 이는 시기적으로 1970~1973년 기반조성단계, 1974~1976년 사업확산단계, 1977~1979년 사업심화단계로 나누어 구체적인 사업을 살펴볼 수 있다.
1970년에서 73년에 이루어진 새마을운동 기반조성단계에는 소득증대를 위하여 농로개설, 농지정리, 종자개량, 계·품앗이 장려 등 농업기반시설 확충 및 협동영농이 전개되었으며, 이를 통하여 비록 단기적이고 제한적이었지만 1960년대 초래된 도농격차의 심화가 완화되고 실질적인 농가소득 증대의 효과[2]가 나타나게 되었다는 평가를 받고있다.
해당 작품은 제주도 서귀포에서 이루어진 새마을운동 현장을 담고 있는데, 기반조성단계에 이루어진 '협업'의 모습을 살펴볼 수 있다.
1964년 2월 연두순시차 제주도를 방문한 박정희 대통령은 제주도는 여건이 다른 지역인 만큼 전국 공통 사업인 식량 증산은 염두에 두지 말고 수익성이 높은 감귤재배를 적극적으로 장려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이후 정부의 특별 지원을 계기로 1965년부터 재배 붐이 일기 시작하였으며, 1968년부터 감귤 증식 사업농어민 소득증대 특별사업으로 책정하여 저리 융자로 감귤원 조성 자금을 지원하게 되면서 1969년부터 획기적인 증식이 이루어졌다.[3]

작품 배경

작품의 배경은 제주도 서귀포 집단 감귤재배지이다.

시각적 안내

유인우쌍성총관부이마동 「감귤」 1973
이 그림에 대한 정보


관련 민족기록화

























항목A 항목B 관계 비고
이마동 이마동-감귤 A는 B를 그렸다 1973년
이마동-감귤 유인우 A는 B를 소재로 삼았다 @
이마동-감귤 쌍성총관부 수복 A는 B를 소재로 삼았다 1356년 @
이마동-감귤 쌍성총관부 A는 B를 배경으로 한다 @
전쟁기념관 이마동-감귤 A는 B를 소장하고 있다 @
제11기계화보병사단 이마동-감귤 A가 B를 대여하였다 1991년 11월 30일-1992년 11월 29일 @
쌍성총관부 동녕부 A는 B와 관련이 있다 @

시간정보

시간정보 내용
1973년 이마동이 이마동-감귤를 그렸다
1991년 11월 30일-1992년 11월 29일 제11기계화보병사단이 이마동-감귤를 대여하였다 @
1998년-현재 전쟁기념관이 이마동-감귤을 소장하고 있다 @
1356년 유인우쌍성총관부를 공격하였다 @

공간정보

위도 경도 내용
37.392958 127.158241 새마을운동중앙연수원이 이마동-감귤을 소장하고 있다

그래프

참고문헌

  • 박혜성, 「1960-1970년대 민족기록화 연구」, 서울대학교 석사논문, 2003년.

주석

  1. 한국문화예술진흥원, 『민족기록화 경제편』, 한국문화예술진흥원, 1973년, 20쪽.
  2. 새마을운동 기록과 현장』, 국가기록원. 최종확인: 2017년 05월 10일.
  3. "1964년...이루어졌다" : "감귤", 『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online, 한국학중앙연구원, 최종확인: 2017년 05월 10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