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예도보통지언해
무예도보통지언해 | |
한자명칭 | 武藝圖譜通志諺解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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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문명칭 | A Korean annotation of a martial arts book by order of king Jeongjo |
작자 | 이덕무, 박제가, 백동수 등 |
작성시기 | 1790년 |
간행시기 | 조선후기 |
소장처 |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
청구기호 | 3-276 |
유형 | 고서 |
크기(세로×가로) | 31.8×20㎝ |
판본 | 목판본 |
수량 | 1冊 |
표기문자 | 한글 |
정의
규장각 검서관 이덕무(李德懋)·박제가(朴齊家)와 장용영 장교 백동수(白東修)]등이 정조의 명을 받아 1790년(정조 14)에 간행한 무예서武藝書
내용
이덕무(李德懋), 1741~1793 · 박제가(朴齊家), 1750~1805 그리고 백동수(白東修), 1743 ~ 1816] 등이 정조正祖의 명을 받아 언해한 무예서武藝書이다. 정조가 쓴 서문에 따르면 우리나라에는 창이나 검등 병기에 대한 기술은 없이 궁술(弓術)만 있었다. 임진왜란 후에 선조(宣祖)가 한교(韓嶠)에게 명하여 명나라의 곤봉, 육기(六技)를 배워오게 하여 이를 도보(圖譜)로 만들어 1598년선조31에 간행한 것이 『무예제보(武藝諸譜)』이다. 그 후 1749년영조25에 죽장창(竹長槍) 등 12기법을 더하여 18기技에 관한 『무예신보(武藝新譜)』를 만들었다. 『무예도보통지』는 위의 두 책을 근본으로 하고 마상재(馬上才)와 격구(擊球) 등 6기를 더하고 도보를 추가하여 증보, 수정, 편찬한 것이다. 한문본은 4책으로 되어 있다. 본래는 언해가 원본 도보의 사이에 흩어져 있었으나 이를 다시 뽑아 한권으로 따로 만들었다. 언해본은 본문 앞에 범례와 목록이 있고 ‘장창전총보(長槍前總譜)’, ‘장창전총도(長槍前總圖)’, ‘장창후총보’ 등 40개의 총보(總譜), 총도(總圖) 등이 수록되어 있다. ‘총도’란 여러 동작을 하나하나 순서대로 표현한 그림이다. 이 책은 18세기 말 국어 연구의 좋은 자료이며 동시에 무예사(武藝史)나 무복(武腹), 무기 등을 연구하는 데 활용되고 있다.[1]
부연설명
무예도보통지는 정조 대에 조선의 문화가 종합 정리되는 과정에서 《병학통(兵學通)》 《병학지남(兵學指南)》 《군려대성(軍旅大成)》 《삼군총고(三軍摠攷)》 등의 군사서적들과 더불어 이루어졌는데, 다른 군사서적들이 전략 ·전술 등 이론을 위주로 한 것임에 비해 이 책은 전투 동작 하나하나를 그림과 글로 해설한 실전 훈련서라는 특징을 지닌다.[2]
시각자료
관련항목
항목A | 항목B | 관계 | 비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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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조 | 무예도보통지언해 | A는 B의 편찬을 명했다 | |
이덕무 | 무예도보통지언해 | A는 B를 언해했다 | |
박제가 | 무예도보통지언해 | A는 B를 언해했다 | |
백동수 | 무예도보통지언해 | A는 B를 언해했다 | |
무예도보통지언해 | 임진왜란 | A는 B과 관련이 있다 | |
선조 | 무예도보통지언해 | A는 B와 관련이 있다 | |
한교 | 무예제보 | A는 B를 저술하였다 | 1598 |
무예제보 | 무예신보 | A는 B에 포함된다 | 1749 |
영조 | 무예신보 | A는 B와 관련이 있다 | |
무예신보 | 무예도보통지 | A는 B에 포함된다 | 1790 |
무예도보통지언해 | 무예도보통지 | A는 B와 관련이 있다 | |
영조 | 무예도보통지언해 | A는 B와 관련이 있다 |
시간정보
시간정보 | 내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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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90년 | 정조가 무예도보통지의 편찬을 명했다. |
공간정보
위도 | 경도 | 내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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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39197 | 127.054387 | 무예도보통지언해는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에 소장되어 있다. |
참고문헌
- 단행본
- 박청정, 『무예도보통지주해』, 동문선, 2007.
- 최현배, 『한글갈』, 정음사, 1940.
- 小倉進平(오구라 신페이), 『朝鮮語學史』, 大阪屋號書店, 大正9[19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