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현수(북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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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현수(徐顯秀)

북제(北齊)는 북조(北朝) 시기의 한 국가로 북위(北魏) 선비족(鮮卑族) 탁발부(拓跋部) 정권의 연장이다. 선비족은 북방 유목민족으로 개혁을 통해 한(漢) 문화를 전면적으로 받아들였고, 민족융합이라는 특수한 문화 현상을 형성했다. 북위와 북제 두 국가가 세워졌던 산서(山西)지역에는 수많은 역사유적이 남아 있다. 북제 서현수(徐顯秀) 묘지는 그 대표적인 고고학 유적이다

묘지의 채색 벽화는 326㎡에 불과하지만, 독특한 북조 시기의 예술적 풍모를 보인다. 선비족은 북위 시기 동쪽으로 수도 평성(平城)까지 실크로드 문화가 전파되는 과정에서 중원문화를 받아들이며 당시 동·서양 문명교류로 형성된 문화성과도 함께 흡수하였다. 북제 서현수 묘지 벽화의 도상은 바로 이러한 실크로드 문명교류의 역사적 흔적이다. 즉, 북위 초원유목민족의 문화적 기질을 계승하며 동시에 새로운 중원문화의 특징도 가지고 있다. 서현수 묘지 벽화의 도상은 북제 사회의 독특한 문화 현상을 부호화한 기록으로 남겼다. 도상 서사의 방식으로 민족융합과 실크로드 문명교류의 발전 과정을 보여준다. 또한 묘지 주인의 생전과 사후의 이상국 이야기를 사실적이고 상징적 표현 형식으로 보여주고 있다. 서현수 묘지 벽화의 도상은 유목민족과 서역 문화 그리고 한문화(漢文化)의 기질을 모두 보여주는 독특한 도상 서사를 형성하고 있다.

As a regime of Northern Dynasties, the Northern Qi Dynasty was the continuation of the regime for Tuoba tribe which froms Xianbei people in the Northern Wei Dynasty. As a northern nomadic ethnic group, Xianbei ethnic group had clearly accepted the Han culture through reform, and their politics had inevitably form a special cultural phenomenon of ethnic fusion. Shanxi has experienced the coverage of the Northern Wei Dynasty and the Northern Qi Dynasty, there had left a large number of Northern Wei and Northern Qi relics’ history. Xuxianxiu’s tomb in the Northern Qi Dynasty is one of its representatives. Although the painted murals of Xuxianxiu’s tomb is only 326 square meters, as a historical imprint under the background of the cultural exchange on the Silk Road, the mural images of the Xuxianxiu’s tomb are not only inherited the cultural atmosphere of the nomads in the Northern Wei Dynasty which have build a new characteristic of Chinese culture. These murals give symbolic records of the unique cultural phenomena of Northern Qi society in the form of images, and illustrate the process of national integration and the cultural exchange on the Silk Road in the form of image narratives. Under the fusion of multiple cultures, it reflects the tomb owner’s reverie about the afterlife world. It has both a reappearing realistic style and a symbolic expression form which formed a unique image with nomadic culture, Western culture and Han culture.

평균 해발고도 1천500m 안팎이라는 중국 화북평원 황토 대지는 강렬한 한여름 태양 아래 더 푹푹 쪘다. 40도에 이른 듯한 무더위를 잠시 쉰 배나무 과수원에 맡긴 채 꽤 가파르게 난 무덤길을 따라 10m 정도를 내려가다 보니 어느 순간 갑자기 찬바람이 들이친다.

1천500년 전 북제(北齊.550-577년) 왕조에서 부귀영화를 누리다가 571년에 사망한 서현수(徐顯秀)라는 인물의 묘다. 중국 산시성(山西省) 성도(省都)인 타이위안(太原) 교외의 한적한 배나무 과수원 황토대지에 위치한 이곳은 지표면 기준으로 무덤방 바닥까지는 8.1m라고 한다.

북제가 고구려와 밀접한 관계를 가졌으며 따라서 벽화들이 고구려 고분과 많이 닮았을 것이라는 생각에서였다. 실제 사자(死者)가 잠들었을 무덤방인 묘실(墓室)에 들어서기도 전에 고구려 벽화고분을 찾은 듯한 감흥이 인다. 무덤방으로 통하는 묘도(墓道) 양쪽 벽면에는 사자를 호위하듯 의장대 그림이 원색으로 가득하기 때문이다.

벽화는 그 선명함이 우선 놀랍다. 묘도가 끝나고 묘실로 들어가는 길목엔 아치형 대문이 나타난다. 이곳부터 온통 벽돌 구조물이다. 대문 양쪽엔 채찍으로 보이는 물건을 든 인물 그림이 또렷하다. 문을 지키는 관리인 문리(門吏)일 것이다. 고구려 벽화고분 중 안악3호분에서 보이는 문지기인 장하독(帳下督) 정도에 해당할 듯하다.

대문 위 아치형 부분에는 붉은색이 완연한 귀면(鬼面) 같은 그림을 중심으로 그 양쪽에는 피닉스 같은 사나운 새가 보인다. 이 귀면은 아무래도 용을 형상화한 듯하며, 양쪽 피닉스는 봉황, 혹은 주작인 듯했다. 이른바 용과 봉황을함께 표현한 용봉(龍鳳)화인 것이다. 용봉은 '무덤에 들어오지 말라, 들어오면 다친다'는 경고를 하는 것만 같았다.

묘주 부부는 방형 장막을 지붕처럼 올린 침상에 나란히 앉았는데 모두 칠기 그릇을 손에 쥔 채 무엇인가를 먹고있는 듯한 표정이다. 이들 앞으로는 각종 칠기 그릇이 가지런한 밥상이 있고, 부부 양쪽으로는 이들을 시중드는 시종이 가득하며, 개중에는 비파인 듯한 악기를 뜯는 모습이 있는 것으로 보아 묘주 부부는 풍악이 울리는 가운데 한창 식사 중인 모습을 형상화한 듯했다.

어느 쪽이 서현수며, 그의 부인인지는 언뜻 분간하기 곤란하다. 남성과 여성의 특징이 그림에서는 그다지 분명하지 않기 때문이다. 왼쪽 편(서쪽)이 서현수일 것이라는 짐작만 가능케 했다.

동ㆍ서쪽 행렬도는 화려하기 짝이 없다. 의장대는 기다란 장대에 꽃은 깃발을 펄럭이며 보무당당하게 행진한다. 아마도 묘주가 생전에 행차하던 모습을 담고자 했을 것이다. 묘주를 위한 양산도 보이지만 접은 상태인 점이 수수께끼다. 시종 중 남성은 거의 예외없이 코가 유난히 큰 서역인이라는 점도 이채로웠다.

묘문으로 통하는 남쪽 벽면에는 사람 몸통을 제외한 나머지 팔, 다리는 괴수인 두 역사(力士)인 듯한 그림이 완연하다. 헌데 이 괴수는 혀를 내민 채 몸을 거꾸로 세워 땅으로 내려오는 모습이다. 이 그림을 통해 무슨 의미를 전달하고자 했을까?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니, 오색 찬란한 벽면과 대비되어 별다른 장식이 없는 궁륭형 천장이 들어온다. 천장은 가운데를 중심으로 세 군데 정도 구멍이 뚫렸다. 도굴 구멍이다. 사람 몸통이 겨우 지날 만한 저런 구멍 하나를 뚫고는 밧줄을 타고 내려와 귀중품을 훔쳐갔을 것이다. 잇따른 도굴 피해 때문에 막상 정식 발굴을 했을 때 출토 유물은 많이 수습하지 못했다고 한다.

그나저나 도굴꾼은 도대체 어떻게 해서 저렇게 정확한 지점을 찾아 구멍을 뚫었을까. 중국의 다른 지역 전축분(塼築墳. 벽돌무덤)에서도 비슷한 현상을 목도한 기자를 새삼 놀라게 하는 '도굴 기술'이다. 볼썽사나운 도굴 구멍을 제외하고 천장에는 언뜻 눈에 띄지는 않지만, 곳곳에 흰 점이 있었다. 별자리를 표시한 이른바 성수도(星宿圖)인 것이다.

선비족 탁발씨 후예들이 세운 북제는 중국사에서는 단명했지만, 고구려와 직접 국경을 맛댄 왕조다. 그러므로 서로 많은 영향을 주고받았을 것이며 이 서현수 고분벽화 또한 여러모로 고구려 고분벽화와 상통한다.

북한의 고구려 벽화고분은 쉽게 갈 수 없고, 중국의 고구려 벽화고분은 고작 지안 지역 오회분 정도만 공개되는 실정이니, 그것을 직접 체감할 수 없는 아쉬움을 북제의 서현수 벽화고분으로 달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