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계시고
번계시고(樊溪詩稿)
번계시고 /樊溪詩稿 저자명 :서유구 저 ;
[출판사] 풍석문화재단, 풍석총서 :한시[漢詩] 조선 시대 문학[朝鮮時代文學]
책소개
풍석 서유구의 생애는 관직에 나아가기 전인 수학기, 27세 과거에 급제하여 초계문신에 발탁된 이래로 홍문관 부제학까지 16년간의 관료생활을 마감했던 1차 벼슬기, 벼슬에서 물러나 시골에서 직접 농사를 지으며 임원경제지 저술의 기반을 쌓았던 방폐기, 벼슬에서 물러난 지 17년 만에 강원도 회양 부사로 임명되면서 다시 관직에 나아가게 된 2차 벼슬기, 완전히 벼슬에서 물러나 번계에서 여생을 보냈던 노년기로 크게 구분할 수 있다. 이 책은 풍석 서유구가 벼슬에서 물러나 번계에서 여생을 보내며 농학자로서 여러 가지 농법을 시험하고, 임원경제지 집필에 몰두했으며, 후학들과 어울려 시회를 열고 함께 시를 짓던 노년의 기록을 시로 남긴 책이다. 농학자로서의 풍모 서유구는 경화사족으로서 매우 풍족한 성장 과장을 보냈으면서도 어떻게 하면 백성들이 굶주림으로부터 해방될 수 있을 지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하고 연구하였다. 그러한 고민에 대한 결과물은 그의 역대 대작이라고 할 수 있는 《임원경제지》와 《종저보》 등에 잘 구현되어 있지만 시집인 《번계시고》에도 그 고민이 잘 나타나있다. 이 책의 「무술년(1838) 여름 한발이 극심하였고…… 」와 「번계 산장에서 광동廣東의 함도?稻를 담장 남쪽 논에 심고……」에서는 볍씨를 시험한 기록을 시로 적었고, 굶주림을 벗어나기 위해 평생 고구마와 볍씨에 대해 연구한 서유구는 ‘고구마’와 ‘함도’를 소재로 하여 연작시를 남기기도 했다. 또 12월까지 절기별로 농사에 대한 기록을 시로 적은 「전가월령가」, 그 외에도 「종수가」, 「전가후월령가」 등의 시는 서유구의 농학자적 면모를 유감없이 살펴볼 수 있다. 번계에서의 삶과 번계시회 서유구는 번계에서 여생을 보내며 후학들과 어울려 시회를 열곤 하였다. 이 시회에는 홍경모, 유본학, 홍현주와 같은 역사적으로 이름이 알려진 여러 인물들이 참여했으며, 특히 《번계시고》에 가장 많이 등장하는 육교 이조묵은 서유구의 가장 친한 벗이었다. 이 시회는 통해 후학들과 생각을 나누고 소통하는 창구가 되었을 것이다. 서유구는 벼슬을 하는 동안 번계에 자신과 가솔들이 함께 살 수 있는 공간을 준비해왔다. 무술편에는 서유구가 임원에 거처를 마련한 기쁨을 읊은 시가 특히 많은데 자이열재, 거연정, 자연경실, 광여루, 오여루 등이 시어로 많이 등장한다. 기해편과 경자편에서는 임원의 일상, 농사와 관련된 일, 여타 사건과 감회 등을 읊은 시가 많다. 또 해마다 가을이면 주변의 승경을 유람한 기록을 시로 남겼다. 무술편에서는 수락산, 기해편에서는 북한산, 경자편에서는 배를 타고 한강을 거슬러 오르는 장면을 시로 읊었다. 이 책은 일평생 끊임없이 연구한 농학자로서의 서유구의 삶과 인간 서유구가 사랑했던 자연경을 이해할 수 있는 가치 있는 자료가 될 것이다.
목차
‘번계시고’를 엮어내며
무술편 자연경실에서 거문고 소리를 듣다 19 | 운자를 짚어 ‘의衣’ 자를 얻다 20 | 거연정 21 | 자이열재에서 ‘운雲’ 자를 짚다 22 | 광여루 23 | 오여루 24 | 치익穉翼과 함께 ‘경庚’ 자를 짚다 25 | 해거海居·경당 絅堂이 와서 묵으며 운을 집다 (1) 26 | 해거·경당이 와서 묵으며 운을 집다 (2) 27 | 해거·경당이 와서 묵으며 운을 집다 (3) 28 | 해거·경당이 와서 묵으며 운을 집다 (4) 29 | 해 거·경당이 와서 묵으며 운을 집다 (5) 30 | 필곡에서 사침士침의 「교거」 시에 화답하여 (1) 31 | 필곡에서 사침의 「교거」 시에 화답하여 (2) 32 | 앞의 시에서 거듭 차운하여 치익에게 보내다 (1) 33 | 앞의 시에서 거듭 차운하여 치익에게 보내다 (2) 34 | 필곡에 있으면서, 사침·치익의 시에서 ‘어魚’ 자를 골라서 35 | 번계로 나가서 앞의 운을 다시 쓰다 36 | 번계잡영 (1) 37 | 번계잡영 (2) 38 | 번계잡영 (3) 39 | 시를 지어 치익에게 보이고 화답을 구하다 40 | 시운을 따서 사침·치익에게 보이다 41 | 지팡이 짚고서 42 | 산을 좋아하여 43 | 육교·치익과 함께 옥류천에서 노닐다 44 | 금류동 45 | 흥국사 46 | 조암동 47 | 홍정자를 지나며 48 | 번계로 돌아와서-이튿날이 중양절이다 49 | 육교가 집으로 돌아가서, 운을 집어 화답을 구하기에 (1) 50 | 육교가 집으로 돌아가서 운을 짚어 화답을 구하기에 (2) 51 | 우연히 읊조리다 52 | 육교의 절구를 차운하여 53 | 중양절 후에 회포를 읊음 55 | 가을 경치 56 | 가을날 산방에서 육교에게 부치다 57 | 『중주집』의 시운을 따서 58 | 연 3일 밤비가 내리다가 59 | 육교의 시에 응답하여 60 | 교외에 살며 61 | 수락산에서 돌아와 다시 유람했던 일을 추억하며 62 | 육교가 약속 날짜가 지나도 오지 않기에, 『중주집』의 운을 따서 재촉하며 66 | 자연경실 창문 아래 국화 화분이 반쯤 피었는데, 일이 있어 성안으로 들어가며 67 | 돌아와 활짝 핀 국화 화분을 보고, 기쁜 마음에 앞의 운을 다시 써서 68 | 다섯 종의 국화를 기르며 69 | 나무 심기 노래 79 | 경재가 와서 묵으며, 등불 아래에서 『중주집』의 운을 따서 86 | 흥을 달래다 87 | 우연히 읊다 (1) 88 | 우연히 읊다 (2) 89 | 소동파의 시 「눈을 읊다」의 운을 따라 90 | 『엄주집』에서 운을 따서 (1) 91 | 『엄주집』에서 운을 따서 (2) 92 | 목재 시의 운을 따서 93 | 10월 16일, 육교가 부쳐 온 시에 화답하여 94 | 육교가 찾아왔기에 육유 시의 운을 따서 96 | 다시 원元나라 시선집에서 운을 골라 97 | 다시 정송원 시의 운을 따서 98 | 또 후산 시의 운을 따서 99 | 육교가 도성으로 들어가서 보낸 칠언근체시에 경재·귤정과 함께 화 답하다 100 | 시월 그믐날, 뜨락의 매화가 일찍 피었길래 소동파 시의 운을 따서 101| 손자를 훈계하며 (1) 103 | 손자를 훈계하며 (2) 104 | 손자를 훈계하며 (3) 105 | 손자를 훈계하며 (4) 106 | 번계십영 107 | 겨울비 115 | 선물받은 곶감을 경재·귤정와 함께 먹고, 이어 ‘삼 三’ 자 운을 써서 짓다 118 | 경재가 낭산에게 곶감과 함께…… 119 | 낭산에게 화답하여, 앞의 운을 다시 쓰다 120 | 동지 후에 운을 따서 121 | 귤정이 상제에 응시하러…… 122 | 귤정이 눈을 무릅쓰고 밤에 돌아가려 하기에, 운을 짚어 함께 읊다 123 | 납일 하루 전에 124 | 운을 짚어 귤정에게 보이다 125 | 운을 짚어 밤눈을 읊음 126 | 자이열재에서 경치를 읊다 127 | 육교가 손수 도장을 새겨 보냈기에, 운을 짚어 사례하다 128 | 경재·귤정과 함께 운을 짚어 129 | 청조가 난호에서 와서, 경재·귤정과 함께 촛불을 밝히고 연구를 짓다 130 | 밤에 앉아서 운을 밟다 134 | 이웃 사람이 사냥에서 돌아왔기에, 운을 따서 읊다 135 | 육교가 보낸 절구 3수에 화답하여 136 | 앞의 운을 거듭 써서, 다시 육교에게 보내다 138 | 밤에 앉아 연구 聯句를 짓다 140 | 시냇물 따라 141 | 납일 후에 내린 새벽 눈 142 | 경재가 경산 慶山 원에게 보낸 시를 차운하여 143 | 무술년(1838) 그믐날…… 144
기해편 기해년 정월 초하루 149 | 인일 154 | 운평이 찾아왔다 돌아가서…… 155 | 정월 보름밤, 경재와 함께 앞 들판에서 달맞이하며 (1) 157 | 정월 보름밤, 경재와 함께 앞 들판에서 달맞이하며 (2) 158 | 최겸산의 금강산 시축에 쓰다 159 | 동쪽 누각에서 저녁노을을 바라보며 162 | 가랑비에 운을 집어 163 | 봄비가 밤을 새워 내림에, 경재·귤정과 함께 읊다 164 | 비가 사흘 동안 그치지 않 기에, 다시 ‘ 경’ 자 운을 써서 165 | 춘사 166 | 화조 날에 읊다 167 | 우연히 ‘래來’ 자 운으로 시를 지어, 귤정에게 보이다 168 | 다시 ‘ 래來’ 자 운을 따서 169 | 육교의 ‘ 한식’ 시에 차운하여 170 | 거연정에서 차를 시음하다 171 | 육교가 보내준 시에 차운하고, 이어서 빨리 오라고 재촉하다 (1) 172 | 육교가 보내준 시에 차운하고, 이어서 빨리 오라고 재촉하다 (2) 173 | 흐린 봄날 174 | 도성에 들어갔다 사흘 만에 돌아와 동산을 보니 꽃이 만발하였기에 175 | 꽃이 피자마자, 연일 비바람이 불어와서 176 | 여주 사또가 왔다가 돌아가서…… 177 | 3월 16일, 육교가 찾아왔기에 『중주집』의 운을 따서 짓다 178 | 또 『중주집』의 운을 따서 179 | 원유산 시의 운을 따서 180 | 거연정에서 떡을 구우며 181 | 육교가 도성으로 들어간다기에, 다시 원유산의 운을 따서 짓다 182 | 3월 16일, 꽃이 처음으로 활짝 피고…… 183 | 다시 장구 20운을 읊조리다 186 | 육교가 보내준 시에 차운하여 189 | 세 가지 근심 190 | 북적동에서 복사꽃을 감상하며 193 | 사월 초파일 195 | 밤비 그친 아침에, ‘ 단 端’ 자 운을 짚어서 196 | 해거께서 멀리 왕림하여 시를 남기고 갔기에…… (1) 197 | 해거께서 멀리 왕림하여 시를 남기고 갔기에…… (2) 198 | 해거께서 멀리 왕림하여 시를 남기고 갔기에…… (3) 199 | 도성으로 들어갔다 사흘 만에 돌아오니, 철쭉이 활짝 피었기에 200 | 시를 지어 귤정에게 보이다 201 | 육교의 시를 차운하여 202 | 육교와 조계로 구경 가자고…… 203 | 우연히 양성재 시의 운을 따서 204 | 육교가 앞의 운을 써서 다시 율시 두 수를 보내왔기에…… 205 | 경재 시에 차운하여 207 | 단오 후 2일에 경재 瓊齋 와 육교가 찾아와서, 경재 經齋·귤정과 함께 운을 짚다 208 | 육교가 보낸 시에 차운하여 209 | 다시 육교의 시 3수에 차운하여 210 | 경재의 시집에 부쳐 213 | 육교가 「직구음」을 부쳐 보냈기에…… 214 | 육교의 「장미」 시를 차운하여 218 | 육교의 「장마」 시에 차운하여 219 | 육교가 보낸 시에 차운하여 220 | 거연정에서 경재 시에 차운하다 221 | 육교가 편지를 보내 나의 시를 칭찬하였는데…… 222 | 육교가 옹방강의 시에 차운한 시를 다시 밟아서 223 | 육교의 「구맹음」에 화답하여 224 | 다시 육교의 절구 3수를 차운하여 228 | 경재의 ‘어魚’ 자 운을 빌려서 230 | 경재의 「장마」 시를 차운하여 231 | 육교가 감사하게도 야합 한 분盆에…… 232 | 5월 계묘일에 비가 시작하여…… 233 | 서쪽 언덕에서 불어난 강물을 바라보며 239 | 또 비가 내리기에, 『중주집』의 운을 따서 240 | 육교의 「아계동」 시를 차 운하여 241 | 다시 ‘홍 紅’ 자 운을 빌려서 242 | 날이 갠 것을 기뻐하며, 육교의 시를 차운하여 243 | 6월 초순에야 비로소 갠 달을 보고 기쁜 마음에 ‘휘暉’ 자 운을 짚다 244 | 우연히 ‘문 門’ 자 운을 따서 245 | 운평이 찾아왔기에, 『원시선』의 운을 따서 246 | 육교가 보낸 시 3수에 화답하여 248 | 육교가 우연히 절에 갔다가 우란회를 보고 지은 시에 차운하여 250 | 기해년 가을, 나는 재차 사직서를 올렸고…… 251 | 백간의 퇴임 축하 시에 차운하여 258 | 도애의 퇴임 축하 시에 차운하여 259 | 문암의 퇴임 축하 시에 차운하여 260 | 경재·육교·귤정과 함께 신흥사를 찾아서 262 | 칠성암에 묵으며 (1) 263 | 칠성암에 묵으며 (2) 264 | 손가장으로 발길을 돌리며 265 | 청수루 266 | 손가장에서 막 돌아오자마자…… 267 | 또 시우산의 시에서 운을 따서 268 | 귤정의 「동지 후 10일」 시에 차운하여 269 | 육교가 중국 시를 차운하여 보냈기에, 허술하게 지어 화답하다 270 | 기해년 제야에 경재·귤정과 함께 읊다 271 | 귤정의 「제석除夕」 시에 차운하여 275 | 육교의 「수세守歲」 시에 차운하여 276
경자편 경자년 설날 아침, 기쁜 눈 내리고 281 | 육교가 눈을 읊은 시에 차운하여 282 | 정월 보름에서 이틀 후…… 283 | 잠 못 이루고 284 | 번계산장에 산 지 겨우 1년이 지났는데…… 285 | 도성으로 들어가 육교의 근작시를 찾아서…… 290 | 육교가 앞의 운을 다시 써서 4편의 율시를 또 보냈기에…… 294 | 무술년(1838) 여름 한발이 극심하였고…… 297 | 산촌으로 돌아온 지 3일째에…… 301 | 편지는 오지 않고 밤에 반가운 비 내리기에…… 302 | 경재의 「우연히 읊다」에 차운하여 303 | 곡우 뒤에 두견화가 봄을 맞아 처음 피고 304 | 병을 조리하려고 다시 번계를 나가며 태손에게 보이다 306 | 우연히 읊다 307 | 무제 308 | 봄을 아쉬워하며 309 | 봄을 전별하며 310 | 연등 314 | 경재의 생일날에 315 | 육교를 곡하며 317 | 감회가 있어 321 | 그냥 읊다 322 | 4월 14일, 해거가 편지를 보내기를…… 323 | 전가십이월령가 325 | 전가월령후가 (1) 346 | 전가월령후가 (2) 351 | 운석, 경당과 함께 해거의 남록 별장을 방문하여…… 355 | 족제 심전과 운고, 족질 포원이 함께 왔기에…… 357 | 족제 심전과 운고, 족질 포원과 금릉이 함께 와서…… 358 | 다음 날 또 모여서 ‘어漁’·‘양 洋’ 운을 집었는데, 심전은 오지 않았다 360 | 다음 날 또 모여서 ‘화花’·‘약藥’·‘성成’·‘열列’을 운자로 하였는데…… 361 | 다시 3일 후에 또 모였는데, 길고吉皐가 우연히 왔기에 ‘귀歸’·‘우愚’로 운을 집어 363 | ‘하荷’·‘정淨’·‘납納’·‘양凉’·‘시時’로 운을 나누어 ‘정淨’ 자를 얻다 364 | 다시 2일 후에 또 모여서 ‘귀歸’와 ‘우愚’로 운을 집다 366 | 다시 ‘어漁’·‘양洋’으로 운을 집어 367 | 병에 꽂힌 연꽃 368 | 귤정과 함께 범석호 시의 운을 따서 370 | ‘엽葉’·‘수水’·‘심心’으로 운을 따서 372 | 다시 앞의 운을 써서 373 | 진간재 시의 운을 따서 374 | 다시 앞의 운을 써서 375 | 또 앞의 운을 다시 써서 376 | ‘엽葉’·‘수水’·‘심心’ 자로 운을 집어 377 | 중추절에 범석호 시의 운을 따서 378 | 거연정에서 달구경 하며, ‘매梅’·‘완宛’·‘릉陵’으로 운을 따서 379 | 추석 이틀 뒤에 380 | 다시 앞의 운을 써서 381 | 추석 이틀 뒤에 382 | 나는 8월 9일부터 한강을 거슬러 석림까지 가는 여행을 계획하였는데…… 383 | 날 저물자 비바람이 세차져서 배가 나아가지 못하고 384 | 밤에 광나루에 정박하여 386 | 아침에 미호를 지나며 389 | 평구역을 지나며 391 | 두미천을 지나며 393 | 저녁에 두현을 바라보며 395 | 밤에 검단산 아래 정박하여 396 | 석림에 머물며 399 | 배를 돌려 402 | 낮에 광나루에 정박하여, 연천 상공의 유거를 방문하여 403 | 압구정을 지나며 404 | 번계 산장에서 광동廣東의 함도(함稻)를 담장 남쪽 논에 심고…… 405 | 관사가 앞의 운을 다시 써서 또 율시 2수를 부쳤기에 화답하여 408 | 필곡에서 병들어 있다가…… 411 | 시월 스무 이튿날에 두 번째로 번계를 나가며 413 | 우연히 읊어, 귤정에게 부치다 414 | 운고와 포원이 밤에 찾아왔기에, ‘어漁’·‘양 洋’ 운을 따서 415 | 다시 ‘어漁’·‘양 洋’으로 운을 따서 416 | 관암·항해·해거·낭산과 함께 ‘상賞’·‘감龕’·‘매梅’로 운을 나누어 417 | 경재·운고·금릉과 함께 섣달 그믐밤을 지새우며 420 색인 421
저자 및 역자 소개
서유구(풍석(楓石)) 저/조창록, 조창록 역 : 서유구(풍석(楓石)) 저 서유구는 자는 준평(準平), 호는 풍석(楓石)이며 본관은 대구이다. 대제학 보만재 서명응의 손자이며, 이조판서 서호수의 아들이다. 영조14년에 문과에 급제하여 규장각 초계문신으로 발탁된 후 좌부승지, 성균관 대사성, 홍문관 부제학을 거쳐 사헌부대사헌, 예문관대제학, 형조판서, 호조판서, 병조판서에 제수되었다가 늦은 나이에 전라도관찰사, 수원부 유수를 역임하였다. 대표적인 경화세족 가문에서 태어나 다양한 학문을 깊이 있게 연구했으며,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가학을 이어 특히 농학(農學)에 큰 업적을 남겼다. 가문의 개방적인 학문 기풍과 방대한 장서의 열람, 뛰어난 학자들과의 교류를 통해 다방면에 식견과 경험을 쌓았다. 젊은 시절 정조의 치세 때에는 규장각에서 많은 편찬 사업에 참여했고, 방폐기간 동안의 여러 경험을 기반으로 한 시대를 대표하는 학자로 성장했다. 서유구가 지은 16개의 주제를 지(志)로 하여, 113권으로 구성된《임원경제지》는 농업, 목축, 어업, 양잠, 상업 등의 생산 전반과 의학, 음식, 주거, 선비가 알아야 할 일상 실용지식 등의 생활 전반을 담은 방대한 양의 생활 백과전서이다. 그 밖의 저술로는 정조의 명으로 조선에서 출판한 도서의 목판을 조사한《누판고》와, 전라도관찰사로 재직할 때는 기민을 구제하기 위해 고구마 재배법을 기록한 《종저보》를 간행하였다. 이 밖에도 개인 문집으로 《풍석고협집》, 《금화지비집》, 《번계시고》, 《금화경독기》와 전라도관찰사와 수원유수시절의 업무일지인 《완영일록》과 《화영일록》이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