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효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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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효달(徐孝達 개항기 청송 출신의 의병

서효달(徐孝達)[1839~1904]은 청송향교의 향원(鄕員)으로 1896년 3월 청송의진에 참여하여 군량을 수합하고 군사를 소모하는 등 한말 국권회복을 위한 구국운동에 크게 기여하였다.

가계

본관은 달성서씨(達城). 자는 덕언(德彦). 1839년 경상북도 청송군 주왕산면 상평리에서 아버지 화오(花塢) 서병화(徐炳華)와 어머니 전주유씨(全州柳氏) 사이에서 태어났다. 정재(定齋) 유치명(柳致明)의 문인인 석간(石澗) 서효원(徐孝源)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활동 사항

서효달은 청송향교의 향원으로 1896년 3월에 창의한 청송의진(靑松義陣)에 참여하였다. 서효달은 1896년 3월 8일 안동의진의 소모장인 유시연(柳時淵)이 청송에서 군기(軍器)를 모집하고 거의를 촉구하는 격문을 향중에 발하며 창의를 촉구하자 이에 고무된 청송유림과 함께 토적복수(討賊復讐)를 기치로 걸고 창의를 추진하였다. 3월 12일 청송유림 200여 명과 함께 향회(鄕會)를 개최하여 창의하기로 하였으며, 이날 오후 객사(客舍)에서 창의장으로 심성지(沈誠之)를 추대하였다.

청송의진은 3월 15일 부장 조성박(趙性璞), 우익장 권성하(權成夏), 좌익장 김상길(金相吉)을 내정하고, 참모와 서기 이하를 선발하였다. 3월 16일 대장기(大將旗)를 세우고 창의하였으며, 3월 17일 축문(祝文)과 창서사(唱誓辭)를 낭독하며 천신과 지신에게 제사를 지냈다. 그리고 3월 22일 김대락(金大洛)을 중군장, 남두희(南斗凞)를 우익장, 서효원(徐孝源)을 의영도지휘사(義營都指揮使)로 임명하여 진용을 갖추었다.

서효달은 청송향교의 향원으로서 청송의진의 창의 과정에서 향회를 열어 창의를 준비하였고, 창의 이후에는 군량을 수합하고 군사를 소모하는 과정에서 청송의진의 군세 확장에 크게 기여하였다. 1904년 3월 17일 65세로 사망하였다.

상훈과 추모

1996년 건국포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