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도 달성서씨(達城徐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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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도 달성서씨(達城徐氏)

서진(徐晉)을 시조로 하고 서대건(徐大建)을 입향조로 하는 경상북도 청도군의 세거 성씨. 달성 서씨(達城徐氏) 시조 서진은 고려 때 봉익대부(奉翊大夫)·판도 판서(判圖判書) 등을 역임하였고, 나라에 큰 공을 세워 달성군(達城君)에 봉해지고 달성[현 대구광역시 달성군]을 식읍(食邑)으로 하사받아 세거(世居)하게 되었다. 시조 서진의 아들 서기준(徐奇俊)과 손자 서영(徐穎)까지 삼대가 달성군에 봉해졌다고 하며, 이에 후손들이 달성을 본관으로 하여 세계(世系)를 이어 오고 있다. 달성 서씨는 현감공파(縣監公派)·학유공파(學諭公派)·판서공파(判書公派)·감찰공파(監察公派)·진사공파(進士公派)·생원공파(生員公派)·참판공파(參判公派)·종사랑공파(從仕郞公派) 등 9파로 나뉘어졌다.

18세기 중엽 대구 원대에 살던 서대건은 가문에 우환이 많고 부모가 돌아가시자, 산수(山水)가 수려하고 토지가 비옥한 곳을 찾다가 청도군 각남면 신당리에 입향하였다. 이후 ‘신당 절목 십 개조(新塘節目十個條)’를 정하고 대구 감영의 허가를 얻어 마을 교화에 힘썼다고 한다. 2000년 통계청 조사에 따르면 청도군 내에 349가구 952명이 살고 있는 것으로 파악되었다. 달성 서씨 집성촌인 각남면 신당리는 2000년대까지 50여 가구가 살던 종족 마을이었지만, 2012년 현재는 약 20여 가구가 거주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