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수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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仇首王


∼234(구수왕 21). 백제 제6대 왕.


재위 214∼234. ‘귀수왕(貴須王)’이라고도 한다. 이 무렵은 백제가 아직 연맹체를 이루고 있던 때이므로, 연대가 정확하다 해도 국가 체제 성립 후의 재위와는 의미가 다를 수 있다.

제5대 초고왕의 맏아들이며, 제7대 사반왕이 그의 맏아들이고 제11대 비류왕이 둘째 아들이라 전하는데, 그렇게 되면 연대상에 문제가 있어 그대로 믿기는 어렵다.

키가 7척에 풍채가 빼어나 비범했다는 구수왕은 온조계(溫祚系) 왕족 출신으로, 구수왕 대를 경과하는 동안 온조계 왕족에 큰 변동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삼국사기≫에는 구수왕이 죽은 뒤 아들 사반왕이 왕위를 계승했으나 어려서 정치를 할 수 없어 초고왕의 아우인 고이왕이 즉위했다고 전한다.

여기서 고이왕이 초고왕의 아우라고 한 것은 연대상으로 모순되며, 고이왕구수왕은 온조계 왕실 내의 서로 다른 지파 출신으로 추정된다. 구수왕 사망 후 사반왕의 폐위와 고이왕의 즉위는 곧 초고왕에서 구수왕으로 계승된 지파의 몰락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인다.

≪삼국사기≫에서 구수왕 치세는 말갈·신라 등과의 전투로 점철되어 있다. 그러한 전투들은 대부분 백제의 참패로 끝나고, 구수왕 대 말에는 혹심한 가뭄이나 기근 등의 재난까지 겹친 것으로 나온다. 연맹 체제하에서 이러한 사실들은 구수왕이 속한 초고왕계 세력의 몰락에 결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는 것들이다.

한편 고이왕의 즉위는 백제의 국가 체제 형성 과정에서 하나의 전환점을 이루었다. 이는 구수왕 대 말의 왕실 교체가 당시의 광범위한 정치·사회적 변동과도 관련되었음을 뜻한다.

초고왕계의 재등장은 그 뒤 비류왕의 즉위로 이루어지는데, 그의 후손으로는 근구수왕이 있다. ‘근구수’는 ‘구수’와의 어떠한 관계를 표현한 왕명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