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주 남혈사지
공주 남혈사지 (公州 南穴寺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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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명칭 | 공주 남혈사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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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公州 南穴寺址 |
주소 | 충청남도 공주시 금학동 93 |
문화재 지정번호 | 충청남도 기념물 제35호 |
문화재 지정일 | 1982년 12월 31일 |
관리자 | 공주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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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충청남도 공주시 금학동에 있는 절터.
내용
남혈사지(南穴寺址)는 서북쪽의 망월산에 있는 서혈사지(西穴寺址)와 마주 보고 있다. 서혈사와 함께 백제시대에 창건한 사찰로 추정하며, 고려의 고승 정진(靜眞)이 출가한 명찰(名刹)로 알려져 있다.[1]
석굴사원
주변에 석굴이 있어 공주 주미사지(舟尾寺址)·서혈사지, 정지사지·금학동 사지·웅진동 사지 등과 함께 석굴사원으로 추정된다. 석굴은 절터 동편에 위치해 있는데, 자연 동굴을 이용한 것으로 동서 길이 26m, 남북 너비 1.85m, 높이 2.35m이다. 굴 내부는 전실(前室)과 후실(後室)로 구분되는데 전실에서 금동보살입상이 발견되었다. 북쪽 벽에는 불상을 안치했던 것으로 보이는 층대가 있다.[2]
발굴 결과
절터에서는 연화문(蓮花文)기와·명문(銘文)기와와 육조(六朝)양식의 금동보살입상(金銅菩薩立像)의 동체(胴體)가 발견되었다. 또한 석탑의 지대석(地臺石)과 탑재(塔材), 원래 자리에서 옮겨진 것으로 보이는 주초(柱礎)와 우물터 등이 발견되었다.[3]
지대석은 화강암을 정제(精製)하여 만들었는데, 잔존 상태는 전면, 즉 남쪽에 길이 2m의 석재가 있고, 동쪽 면에도 동일한 재질과 형태를 지닌 2m 짜리의 지대석 2매가 있어 탑이 방형의 지대석을 놓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북쪽 석재는 외견상 보이지 않으며 서쪽에도 남아 있는 석재가 없다. 현존 사역의 범위로 미루어 탑 크기가 비교적 컸으며, 현존 지표 탑지의 환경으로 미루어 탑지가 약간 측면으로 치우쳐 있어 쌍탑이었던 것으로 추측하기도 한다.[4]
원래 절터 부근은 여러 단의 밭으로 개간되어 있었는데, 탑지를 중심으로 산 중턱에 동남향 하여 불사(佛寺)를 건립한 것으로 추정할 수 있는 환경이었다. 조사 전 이 남혈사지 사역은 서혈사지와 마찬가지로 3단의 대지(垈地)로 남아 있었다. 제1단의 범위는 너비 23m이고, 제2단은 20m, 제3단은 30m로 남아 있었는데, 제3대지 이후로 편년할 수 있는 각종 유물이 흩어져 있다.[5]
지식 관계망
- 정진대사 긍양의 지식관계망
관계정보
항목A | 항목B | 관계 | 비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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긍양 | 공주 남혈사 | A는 B에서 수행하였다 | |
공주 남혈사지 | 공주 남혈사 | A는 B의 터이다 | |
공주 남혈사지 | 공주 서혈사지 | A는 B와 관련이 있다 |
시간정보
시간정보 | 내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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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2년 | 공주 남혈사지가 충청남도 기념물 제35호로 지정되었다 |
시각자료
주석
- ↑ "공주 남혈사지", 문화재검색,
『문화유산정보』online , 문화재청. - ↑ "공주 남혈사지", 문화재검색,
『문화유산정보』online , 문화재청. - ↑ "공주 남혈사지", 문화재검색,
『문화유산정보』online , 문화재청. - ↑ 서오선, "공주남혈사지",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online , 한국학중앙연구원. - ↑ 서오선, "공주남혈사지",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online , 한국학중앙연구원.
참고문헌